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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 (詩魔) ㅣ 시작시인선 115
김영산 지음 / 천년의시작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죽은 시인의 사회
1. 그가 사는 세상- 그 곳에서는 평생 처절한 전쟁이 계속된다.
누구나 도망 갈 자리 하나 쯤은 마련해 두고 산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건 나름의 도피처가 있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그게 책이건, 술이건, 잠이건 간에 사람들은 나름대로 세상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길 만한 뭔가를 하나 쯤은 마련해 두고 산다. ‘게임광’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바로 떠오른 것은 바로 ‘도피처’라는 단어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감당 못 할 만큼 슬픈 일이 있을 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무작정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의 내용에 집중하다보면 내게 벌어졌던 일이 책 속의 내용인지, 아니면 정말 나에게 있었던 일인지 헷갈렸다. 그렇게 시간을 벌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내가 감당을 해야 한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을 기르기 위해 잠시 책 속으로 도망을 가는 것이다. 그렇게 책은 잠시지만 나를 먼 곳으로 데려다 주는 아주 좋은 도피처 역할을 해 주었다. 제목만 접했을 때 게임도 김영산에게 이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누구보다도 든든한 친구가 게임이라니 참 시인 답지 않게 귀엽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시집을 찬찬히 읽고 난 뒤 게임은 시인에게 현실을 피해 도망 갈 자리를 내어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영산에게 있어 게임 속 세상은 현실만큼이나 숨 막히는 전쟁의 공간이다. 게다가 게임 속 세상은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현실의 잔인하고 치열한 모습을 보다 명확하고 극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다시 말해 김영산이 보여주는 게임 속 세상은 실제 현실과는 관련 없는 가상의 놀이 공간이 아니라 사실은 좀 더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현실의 어두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고요함의 갈대밭과 속삭임의 갈대밭
더 이상 갈대는 속으로 울지 않는다
이제 갈대는 갈 데가 있다
이 지구 어두운 아이들아
너희 애비들은 죽었다(게임맹이다)
그러니 살아만다오
항상 생사의 갈대밭, 사냥터에서
-「게임광2 -리니지Ⅱ」 일부
아무리 강한 자도 죽음이란 게 있지
전투 수행 도중
또는 사고로 캐릭터 생명력이 0이 되면
죽음을 맞게 되지
하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임 세계에서 죽음은 영구적인 게 아니지
묘지에 있는 영혼 치유사에게 소생을 부탁하면
일정한 경험치를 잃고 부활할 수 있지
(중략)
전사 성기사 마법사 도적 사제 사냥꾼 흑마법사 주술사 드루이드는 평생 전쟁을 할 수 있지
-「게임광5 -게임의 진화」 일부
게임광은 세상의 게임에선 진 자들이지
게임 속에서 전사이지만 게임을 빠져나오면 어리둥절하듯
(중략)
게임광은 게임에서 자꾸 지는 자들이지
-「게임광6 -여자의 육체」 일부
위 시들에서 김영산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김영산에게 있어 현실은 게임맹인 아버지가 지구의 어린 아이들을 두고 죽어버린, 매순간 생사의 기로에 놓이는 사냥터와 같은 공간이다. 이는 아무리 강한 자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게임 속의 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현실과 달리 죽은 자가 묘지에 있는 영혼 치유사에게 소생을 부탁 해 일정한 경험치를 잃고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이렇게 부활한 게임광들은 게임에서는 전사이지만 게임에서 빠져나오면 어리둥절하게 되고, 게임에서 빠져나와 만난 현실 속의 게임에서는 자꾸 지게 된다.
그가 보기에 우리는 현실에서도, 게임 속에서도 ‘처절한 전장’(「게임광3-뮤 공상전」)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결국엔 탄환이 스쳐 젊은 얼굴은 반쪽이 되고, 팔다리가 덜렁거리는 마네킹들이 누워 있는 이 세상에서 화자는 마음 속의 증오를 키우게 된다. 그런데 그 증오를 채 키우기도 전에 살인마들이 넘쳐난다.(「게임광9」)
이쯤 되니 김영산 시인에게 문득 궁금한 점이 생긴다. 그가 이러한 어두운 현실을 나타내기 위해 끌어온 세계가 왜 굳이 게임일까? 게임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나는 『게임광』내의 게임에 대한 시를 읽을 때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았다. 문학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게임이라는 요소를 시와 접목시킨 것은 신선했지만, 몇몇 시들은 단지 게임을 소개하고 있는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임이라는 고유의 장르가 지닌 의미를 현실과 더욱 깊이 있게 접목시켰다면 좀더 많은 독자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가 사는 세상에서는 평생 처절한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 아무리 강한 자도 죽는 그 곳에서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슬쩍 궁금해진다.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삶을 도저히 놓을 수 없어 계속 살아가는, 어떤 의미로는 모두 ‘광’적인 존재들이 아닌가. 도저히 게임을 멈출 수 없는 게임광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그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삶을 그가 앞으로 어떻게 설계할지 기대해 본다.
2. 詩魔
‘詩魔’란 사전적 의미로 ‘시를 지을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을 뜻한다. 김영산의 시집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접한 단어였기 때문에 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어떤 시인은 자신이 시를 쓰는 이유를 ‘고통에 대한 탐구’라고 했다. 그 글을 보고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했던 숱한 밤이 있었다. 나에겐 필연적인 무엇이 필요했다. 언젠가 작가는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선택되는 직업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선택 받은 사람, 그래서 언젠가 시작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랜 성찰 끝에 글을 쓰고자 하는 나름의 이유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하고’, ‘선택받고’의 그 중간에서 여전히 헤매는 날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집을 읽는 내내 김영산 시인의 ‘시마에 걸린’ 시인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에 십분 공감했다.
『詩魔』는 총 여섯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여섯 편의 제목이 모두 시마이고, 각각 ‘흑비’, ‘백비’, ‘문비’, ‘생비’, ‘게임의 비’, ‘우주게임’라는 부재가 붙어 있다.
인간의 생은 입을 다물라, 죽음이 말하게 하라!
(중략)
대답 없이 묘비가 서 있다. 나는 쓸쓸하여 참배도 잊었다. 또 밤마다 무덤을 보는 것이다.
(중략)
계속 물어야 한다, 죽은 시인을 위해!
(중략)
나는 날마다 무덤의 음악을 듣는다,
(중략)
모든 시는 처음이려 하지만, 첫 구절은 무덤 속에 있다. 時論은 없다, 시가 나를 무덤에 데려다 주리라! 시가 나를 무덤에서 데려다 주리라!
2
시는 죽은 시인의 생전이라 믿지만, 비로소 죽은 후에야 써진다.
(중략)
너무 잘 맞는 구두, 너무 잘 맞는 시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중략)
아 시가 나를 쓰는구나,
3
“시가 내 상처를 찢고, 깁는다!”
6
광기 어린 내 시가 내 얼룩인지 모른다
시가 내 얼룩이야,
(중략)
시는 쓰면 쓸수록 갇히게 된다
-「詩魔 -우주게임」 일부
시인에게 있어서 시란 인간의 생은 입을 다물고 죽음이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시는 비로소 죽은 후에야 써진다.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무덤을 보고, 날마다 무덤의 음악을 들으며 죽음과 항상 가까이 있다. 진정한 시를 쓰기 위해 너무 잘 맞는 구두, 너무 잘 맞는 시로부터 그는 자유롭고 싶은 것이고, 결국엔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시인을 쓴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자신의 얼룩과도 같다. 세상의 모든 광기 어린 것들, 그렇게 자신을 들볶는 것들은 얼룩이 되는데, 시인의 얼룩인 시는 불면의 밤에 그를 찾아 온다. 그는 시를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시는 쓰면 쓸수록 갇히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시를 놓지 못하고 다다를 수 없는 별이 시(時)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시의 탄생
지구의 문법에는 태어나면서 죽음의 문법을 배워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중략)
구역질나게 아름다운 이름이여
인제 안녕!
시의 젊음과 늙음
恐慌
죽음은, 죽을 것 같은데 절대 죽지 않는다. 미칠 것 같은데 절대 미치치 않는다.
(중략)
시인은 바람의 비밀을 들여다보려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자이다.
시의 병듦
시는 千手千眼觀音이지만
시인은 한 개 눈으로밖에 보지 못한다
(중략)
시를 해체하랴, 모든 시편마다 병들었구나
(중략)
나는 부둣가에서 얼마나 서성거렸는지 모른다.
시의 죽음
또 다른 시인 하나도 천천히 자기를 죽여 갔으니, 자살을 해가며 시를 썼다.
(중략)
그 시인은 말했다, 기억이 없어야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기억이 있으면 나밖에 될 수 없다. 기억이 있으면 아무나 될 수도 있고, 아무도 될 수 없다.
(중략)
기억이 없어질 때까지 죽음의 시는 써질 것이다.
시의 부활
시의 귀환은 언제나 쓸쓸하다,
(중략)
내 뜻대로 시가 써지는 게 아니다.
(중략)
고통의 축복, 헛소리, 완성의 시는 없다. 모든 시는 실험에 불과했다. 가장 쓰고 싶은 시는 이 세상에 없는 시다. 내 시가 원하는 대로 나는 돼 버렸다.
(중략)
내 시가 나를 배반할 것을 안다.
(중략)
나는 인제 착하게, 착하게만 살아도 되겠구나.
-「詩魔 -黑碑」 일부
「詩魔 -黑碑」에서는 시의 탄생부터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라기보다는 시인의 개인적인 의견을 나름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진정한 시는 죽음으로써 써진다는 그의 생각은 이 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태어나면서 죽음의 문법을 함께 배워가야 하는 지구에서 시는 구역질나게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런데 죽음의 문법을 배운 시는 좀처럼 죽어지지 않는다. 죽을 것 같은데 절대 죽지 않고, 미칠 것 같은데 절대 미치치 않는 ‘恐慌’에 시달린다. 이러한 ‘恐慌’은 ‘冬至’와 ‘同志’, 그리고 ‘性女’와 ‘聖女’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게 하고 ‘그래서 부족한 것이 시라는 물질!’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시인은 그 비밀을 들여다보기 위해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자인 것이다.(「詩魔-黑碑」) 시는 천수천안관음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그를 쓰는 시인은 눈이 한 개 밖에 없어 시가 보는 세상을 보지 못한다. 이처럼 시인의 태생적인 부족함은 모든 시편을 병들게 하고, 그 때문에 시인은 여전히 부둣가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결국 시로써 자신을 염하고 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자살을 해가며 시를 쓰고, 그렇게 자신을 버림으로써 더 이상 자신을 기억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기억이 없어질 때까지 죽음의 시는 써질 것이므로. 이렇게 시는 죽었다. 하지만 시는 다시 부활한다. 그런데 시의 부활은 영광스러운, 그래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를 맞이하려 열어줄 대분이 없는, 쓸쓸한 부활이다. 죽음을 경험했건만 여전히 뜻대로 시가 써지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완성의 시는 없고, 모든 시는 실험에 불과했다. 시인은 이 세상에 없는 시를 쓰고 싶어했지만 반대로 그 자신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돼 버렸다. 그렇게 시가 시인을 배신할 것임을 스스로 안다. 하지만 시는 시인을 기억할 것이고, 그렇게 시인은 시와 함께 인제 착하게, 착하게만 살아도 되겠다고 말한다.
『게임광』과 『詩魔』를 읽으면서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어렵다고 느꼈고, 답답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새롭게 밝혀지는 그의 시들에는 그만큼 오랜 그의 고민이 묻어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걸로 예상됐던 『詩魔』의 시들이 마지막 우주게임에서 하나로 어우러진다는 생각에 미쳤을 때, 『詩魔』 전체는 바로 한 편의 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인이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서일지 모르는 이 많은 글자를 남긴 이유는? 답은 각자에게 있다는 비겁하고도, 당찬 생각이 해본다. 김영산의 시들이 어려운 것은 ‘시’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시와 함께 태어나고, 젊고, 늙고, 병들고, 죽고, 다시 부활했듯이 그렇게 ‘늘 함께’ 였듯이 나도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한다. ‘詩魔’라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러한 결심이 내 삶의 곳곳에까지 작용하도록 스스로를 끊임없이 깨우는 힘이 아닐까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혼불을 쓴 최명희 작가는 일필휘지 보다 천필만필의 다듬어진 힘을 믿는다 했다. 내 가능성은 이것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를 내보일 수 있는 길은 이것 뿐이므로, 천필만필의 숙고와 진중과 그 힘을, 그 의미를 내 스스로에게 보이는 것, 그것이 내 ‘詩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