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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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장영희의 영미 시 산책
생일


2009년 별세하신 서강대의 고 장영희 교수님.
이 분이 조선일보에 1년간 연재한 칼럼을 엮어 만든 책의 첫번째 권이 바로 이 생일이다.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다고 해서 책 제목도 생일 인가보다 :)

그리고 책에서 설명하는 첫 시의 제목도 Christina Rossetti의 Birthday이다.

My heart is like a singing bird
Whose nest is in a watered shoot;
My heart is like an apple-tree
Whose boughs are bent with thickset fruit;
My heart is like a rainbow shell
That paddles in a halcyon sea;
My heart is gladder than all these
Because the birthday of my life
Is come, my love is come to me

내 마음은 물가의 가지에 둥지를 튼
한 마리 노래하는 새입니다.
내 마음은 탐스런 열매로 가지가 휘어진
한 그루 사과나무입니다.
내 마음은 무지갯빛 조가비,
고요한 바다에서 춤추는 조가비입니다.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들보다 행복합니다.
이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내게 사랑이 찾아왔으니까요.
(장영희 번역)

 같 이 공모전 했던 세진씨가 나한테 어느 날 사랑에 관한 영시 좀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시를 배운 지 너무 오래돼서 생각나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충 아 기억나는 게 없네요 어쩌나 하고 얼버무리고는 집에 가는 동안 생각해봤다. 생각 나는게 딱히 없더라. 물론 가지 않은 길 뭐 이런 시같이 누구나 아는 그런 시들이야 나도 알지만, 수업 시간에 시험 공부 해 가면서 배웠던 것들은 많이 정도가 아니라 싹 까먹었구나 싶어서 부끄러운 마음에 한참 전에 접어뒀던 이 책을 다시 폈다. 아, 영미 시. 오랫만이다.
 
 책 은 중간까지만 읽고 한참 지나 또 읽어도 문제가 없는 그런 간단한 에세이의 모음이다. 그래서 부담없이 추천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장영희 교수는 꽤 유명한 작가라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조금의 설명을 더하자면, 서강대 영문과 교수이고, 소아마비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늘 목발에 의지해야 했고, 이후엔 암으로 투병생활을 한 사람이다. 결혼도 하지 않았었고, 결국 암으로 57세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누군가를 설명할 때 장애가 있고 미혼이며, 라고 말하는 게 실례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소개할 때는 그런 부분을 보통 따로 언급하지 않지만, 이 분의 에세이에는 삶이 묻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예 책 제목이 생일 -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고, 사랑에 대한 길지 않은 시들이 한글 번역과 함께 작가의 한 페이지 정도의 코멘트와 김점선씨의 그림과 함께 버무려져 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책을 읽다 보니 작가가 이야기하는 사랑이 마음 한 켠을 아프게 하더라. 왜일까 생각해보니 작가의 삶에 대해서 내가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게 문학이란 작가가 쓰는 펜과 같다. 혹은 요즘의 발전하는 컴퓨터 기술에 비유하자면 타이핑하는 행위 정도? 결국 문학은 작가의 생각과 사상을 표현하고, 당대를 재치있게 에둘러 풍자하는 것처럼, 작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흔적을 결코 지울 수 없는 그런 것? 그래서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과거를 뒤집어 보여주어야 한다. 상징적으로든, 비유를 통해서든, 아니면 아예 직접적으로든지간에. 이 분이 시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 뒤에 덧붙인 글에서 말하는 사랑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해 열 일곱 소녀가 설명하듯, 보송 보송 아름답다.마치 사랑의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부분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어떤 서평은 유치하다고 별 한개만 줬던데, 나는 오히려 그 사랑에 대한 정의들이 너무 뽀얗고 보송보송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내가 아는 사랑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렇지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그런 갈망이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 인용하고 싶은 시가 있는데
새러 티즈데일의 선물(gift).

I gave my first love laughter,
I gave my second tears,
I gave my third love silence
Thru all the years.

My first love gave me singing,
My second eyes to see,
But oh, it was my third love
Who gave my soul to me.

나는 한평생 살면서
내 첫사랑에게는 웃음을,
두 번째 사랑에게는 눈물을,
세 번째 사랑에게는 침묵을 선사했다

첫사랑은 내게 노래를 주었고
두 번째 사랑은 내 눈을 뜨게 했고
아, 그러나 내게 영혼을 준 것은
세 번째 사랑이었어라.
(장영희 번역)

 사랑이 오는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침 대에 앉아 잠들기 전 이 시들을 쭉 읽으면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사랑을 나는 해 본적이 있을까, 보송보송 햇병아리 털 같은 첫사랑 말고, 눈물을 주었던 두 번째 사랑 말고 내게 영혼을 주는 세번째 사랑이 내게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사랑, 하고 있을 때 말고 끝나고 나서 나는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사랑을 했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이 아깝지 않겠지.

따뜻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영문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 읽어봄직한, 질 좋은 시를 두루 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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