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


 <도쿄기담집>은 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게 된 작품이다. 얇은 한 권의 책 속에 들어있는 다섯 가지의 이야기는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가장 하루키다운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이 책은 나를 하루키의 매력에 푹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모를, 제목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들을 담담한 어투로 서술해나간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겨, 단편소설임에도 꽤 긴 여운에 빠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나를 끌어들인 이야기는 바로 첫 번째 이야기인 "우연 여행자"이다.


하루키 자신이 직접 이야기의 서술자가 되어 풀어놓는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주변에도 있을법한 이야기들로 시작한다. 재즈 공연을 관람하던 하루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를 연달아 듣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가끔 음악을 들을 때 랜덤 재생을 해놓았음에도 내가 마침 듣고 싶었던 음악이 재생되는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목 그대로, 마침 그 노래가 재생되는 것은 '우연'일 뿐이지만 우리에겐 반갑고도 신기한 일들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루키의 지인인 피아노 조율사이다. 우연히 만난 한 여자와 오랫동안 인연을 끊었던 누나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이야기는 읽다보니 자연스레 결말에 대해 예측이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만큼 흔히 들어왔고, 어쩌면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렇게 스치듯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그만큼 마음 속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연의 일치라는 건 어쩌면 매우 흔한 현상이 아닐까라고요. 즉 그런 류의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하지만 그 대부분은 우리 눈에 띄는 일도 없이 그대로 흘러가버리죠. 마치 한낮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희미하게 소리는 나지만 하늘을 올려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우리 시야에 일종의 메시지로서 스르륵 떠올리는 거예요. (중략)" - 도쿄기담집, 우연 여행자 중에서


우연 여행자를 시작으로 뒤의 이야기들은 모두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상어에게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인 <하나레이 해변>, 사라진 남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한 남자의 이야기인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 헤어진 여자가 자신의 의미 있는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준페이의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시나가와 원숭이>까지.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상실을 겪은 이들이다. 그리고 우연하고도 기묘한 일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수용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나가고 있다. 


다섯 이야기들은 각각 다른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연 여행자는 그야말로 모든 이야기들의 주제를 아우르면서도 하루키의 생각이 가장 잘 반영된 소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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