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 인상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길주 옮김 / 푸른숲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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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세기 러시아와 20세기의 한국은 한국이 식민지 경험을 거쳤다는 점에서 식민지 경험이 없는 러시아와 큰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 서구를 바라보며 따라가려는 후진 사회라는 점이 그 하나요, 서구를 따라잡으려다 보니 문화적으로는 서구 자유주의의 물결에 영향을 받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전제정치의 강압에 지식인들을 포함, 민중들이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는 점이 또 하나다. 도스또예프스키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서 글을 썼다.

도스또예프스키로서는 러시아 지식인들이 모두 바라보고 있는 서구의 실체를 알아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젊었을 때부터 갈구했던 유럽여행길에 도스또예프스키의 정치적 문제(그는 사형수였다!) 때문에 오르지 못하다가 4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여행길에 올랐다. 이때의 여행기가 바로 이 책이다.

그런데 유럽은 도스또예프스키의 기대와는 달리 많은 문제들로 뒤덮여 있었다는 점을 이 책은 작가적인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하여 보여준다. 이른바 근대성의 문제에 서구가 병을 앓고 있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서구는 따라가야 할 모범이 아니었다. 서구의 길은 러시아가 앞으로 피해가야 할 부정의 케이스였다.

그가 주목한 것 중에 흥미로운 점은 바로 군중의 발견이었다. '상류층 사람들에 의해 지하의 암흑 속에 버려진 이들'이라고 도스또예프스키는 표현하고 있거니와 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동-물질의 위력을 바알신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바알신은 사람들을 물질의 노예로, 술과 방탕에서만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박에 없는 무기력한 자들로 만든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폐해를 도스또예프스키는 선진제국 속에서 추출해낸다.

선진 자본주의를 쫓아가려는 후발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도스또예프스키의 비판적 시각은 교훈적이다. 우리는 선진 자본주의를 찬양만 하고 뒤쫓으려고만 하지 않는가? 어쩌면 후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의 문제점들을 도스또예프스키처럼 더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선진국의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의 그들의 생활이 일상적인 것이 되었기에 버려 문제들을 문제로서 바라보기 힘들다. 그 사회와 다른 사회에 사는 도스또예프스키와 같은 처지의 동양의 우리들이 선진국의 문제점들을 더 많이 파악하고 그들에게 역으로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의 3부는 도박꾼이었던 도스또예프스키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 3부는 도박꾼의 강박관념이 솔직하게 표현된 편지글 모음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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