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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198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분신,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친구들에게 당부하며 죽어간 전태일에 대한 감동적인 평전. 조정래 변호사가 수배 당해 경찰에 쫓겨다니고 있을 때 이 평전은 쓰여졌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에 의해 쫓기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급박한 심정을 가지고 써서 그런지, 이 책은 가슴 벅찬 뜨거운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저자가 전태일이 남긴 글과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극도의 가난 속에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를 뜨겁게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문체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 평전 안엔 고등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전태일의 글이 적재적소에 인용되는데, 우리는 그의 열정어린 삶에 대한 고민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15년 전, 이 책이 금서였을 때 읽었던 이 평전엔 막바지 부분에 전태일의 유서가 실려 있는데 이전에 느꼈던 전기 맞은 듯한 전율과 감동이 아직도 느껴진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평전을 보면 전태일이 얼마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알 수 있다. 가령, 죽으면서 안타깝게 자신의 죽음이 헛되면 안된다고 당부하는 모습은 그는 더 살고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죽음이 헛되게 된다면 그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20대의 청춘을 접는다는 결단은 그만큼 삶에 대한 사랑 속에서 힘들게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래서 헛되지 않게 되었다. 전태일은 친구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억압과 착취를 그대로 인고하며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뜨거운 상징으로 여전히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상징을 구체적으로 마음 속에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아직 부당한 과잉 노동과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사람들은 삶을 지탱해주는 힘을 얻기 위해 이 책을 펼쳐들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인이라면, 이 세상을 좀 더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나도 15년 전, 이 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교과서적 교육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고 고통에 찬 세상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체험에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