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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부채 - 문학아카데미시선 138
박남주 지음 / 문학아카데미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박남주는 어떤 대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변화하기 위한 힘이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탐구한다. 가령, '부채의 무게중심을 생각해 보았다/ 힘은 뱃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 시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연속무늬가/ 한가운데 힘을 끌어모으고 있다가/ 밖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보인다'([단오부채] 중에서)라고 말하는데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어떤 점에서 시작해 부챗살로 뻗어나가는 단오 부채의 모습에서 그 뻗음의 힘을 생각해보고 있다.
시인은 부채에서 '뱃속에서부터', '한가운데 힘을 끌어모으고 있다가/ 밖으로 내보내는' 것, 힘의 응집에서 터져 나오는 힘을 발견한다. 그 힘의 확산은 '끝도 없어 보이는 연속 무늬'를 만들어낸다. 시인은 '뱃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부채를 동물, 인간의 차원으로 변환시켜 부챗살이 표현해주고 있는 힘의 모습이 바로 삶 속에서 우리들의 힘을 만드는 방법을 나타내준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우리 삶의 무늬를 펼쳐 내기 위해선 힘을 뱃속으로 끌어 모으고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이 무늬 피워내기가 바로 삶의 변화, '--로 되기'를 말하는 것일게다.
이 다른 존재로 '되기'의 힘이 바로 부챗살 을 펼치는 '뱃속의 힘'일 것인데, 힘 자체는 주체와 무관한 하나의 객관적인 물질 같은 것으로 시인 자신이 만드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자장선을 따라간다/ 몸 속에 간직한 천연 자성물질/ 자철광이 끄는 대로 움직인다//...//...파닥이며 지구의 자장선을 따라가는/ 나는 본래 한 마리 제중왕나비였다/ 몸속에 흐르는 이 뜨거운 빛줄기/ N극과 S극이 나의 몸안에서/ 팽팽히 서로 줄을 끌어당기고 있는 한.'([내 몸 안에 지구가 들어와 있어] 중에서)이라고 시인이 말하고 있듯이 시인을 이끄는 힘은 지구 자체, 지구의 자철광이다.
자력을 몸 속에 받아들여 모으고 부챗살이 퍼지듯 힘을 발산시킬 때 지구의 자장선을 따라 날아갈 수 있다. 그런데 지구의 자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몸 안에 '긴장'을 발생시킨다. N극과 S극이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이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힘의 장을 시인은 '물'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더욱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물의 표면은 팽팽하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서로 밀고 당기고 있는 힘의 균형
중심을 향하여 가슴을 맞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고요한 물의 표면
몸을 안으로 끌어당겨 둥글게 말아쥔
내 무게 중심은
어느 누구도
감히 흐트러뜨리지 못한다.
평온한 물의 상태에서 팽팽한 힘의 균형을 시인은 발견하는데, 그 힘의 팽팽함은 바로 '뱃 속으로 끌어 모은' '무게중심'을 만들어준다. 갖가지 방향의 힘을 몸 안으로 받아들여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는 것, 그것이 고요한 물이며 바로 '단오부채'다. 고요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 팽팽한 긴장 상태를 내장한 물의 힘은, 물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엄청난 힘을 보여줄 수 있게 되는데, '부드러운 물의 힘이/ 쇳덩이로 만든 배의 몸체를 떠받치고 있다/ 물은 잠시도 제 움직임을 그치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액체도 힘을 만들어낸다] 중에서)리는 모습이 그 모습이다.
부드러운 물이 강철 배를 떠올리고 흔들리게 하는 힘. 하지만 그 힘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마치 팽팽한 긴장이 고요를 만들어내는 역설처럼 딱딱한 것을 부드러움은 떠받치고 흔들리게 한다는 역설. 물의 '긴장의 줄을 당기는 소리로 팽팽한/ 그 가운데 내가 서 있'([바람-바다] 중에서)을 때 나의 삶은 변환될 수 있다. 물의 힘을 나의 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부챗살의 무늬를 피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의 힘을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물과 같이 흘러다닐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 흐름의 존재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변환의 존재가 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