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에로스 - 탈산업 시대의 육체와 욕망
클라우디아 스프링거 지음, 정준영 옮김 / 한나래 / 199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테크놀로지와 에로티시즘이 어떻게 결합되어 나타나는가를 탐색한다. 에로티시즘은 그러나 낭만적이거나 관능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남성과 여성의 성차 위에서, 남성의 권력이 관통하는 장소로서 이야기된다. 그리고 근대 및 후기 근대의 기계와 결합되 생각되는 에로티시즘도 역시 이 남성의 권력이 어떻게 여성을 규정짓고 배제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페미니즘 관점에서, 특히 후기 자본주의의 전자 문명이 어떻게 에로틱한 상상력과 결합되며, 그 상상력엔 어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가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밝히려 한다.

저자는 컴퓨터 전자 매체나 가상 현실 그 자체는 여성적 은유가 가능한 공간으로 보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자 매체 속의 공간은 이전 기계의 외시적인 양태와는 달리 감추어진 양태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속의 공간, 그것은 무궁무진하며 어떤 것인지 확실히 모른다. 하지만 기계는 작고 아담하다. 그러나 이런 것이 여성적인 것이란 생각도 사회적 성차의 관념에서 생겨났다고 반박한다면, 이 공간을 무성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컴퓨터 속의 사이버 공간을 다루는 문화들, 즉 사이버 펑크 소설, 만화, 영화들은 이 무성적 공간을 여성화시킨다고 그는 비판한다. 예를 들면 어떤 소설에서는 컴퓨터 조작자를 카우보이로 묘사하고 사이버 공간과의 접속을 카우보이의 질주로 나타내며, 그 공간으로의 삽입할 때의 속도에서 그 카우보이는 쾌감을 느낀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만화에서는 매트릭스 장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추상적 도상들의 세계에서 최고의 쾌락을 느끼면서 장미로 표상된 여성적인 것과 육체적 쾌락을 즐긴다. 하지만 곧 그 장미와 결투를 벌이게 되고 남성 주인공은 곧 로보캅과 같은 강철 갑옷을 입고 나타나며 결국 장미를 무찌른다. 여성은 정복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강철 갑옷을 입는다는 데에 저자는 또한 주목하여, SF 영화에서 사이보그가 왜 근육질 남성으로 나타나는가를 연결해 분석한다. 그것은 여성적 유동성에 위협을 느껴 남성이 원파시스트 병사, 살인기계로 변모하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여성 혐오론자들인 원파시스트 병사는 여성적인 것에 맞서 자신을 갑각류 동물처럼 딱딱하게 무장한다. 전자 매체의 유동성, 여성성과 접속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컴퓨터가 곧 인간의 눈과 같은 하나의 신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기계와 결합된 신체는 바로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제 순수 인간이 아니라 사이보그이다! 하지만 그 사이보그 이미지는 근육질 남성의 이미지가 아니라 유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다. 이 위협적인 이미지에 맞서 사이보그를 근육질 남성으로 변환시켜 이미지화하여 파시스트적 가부장적 남성상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렇게 컴퓨터라는 무성적 기계에 대한 해석 및 문화적 이미지화에도 가부장적 권력이 침투하고 그럼으로써 그 매체를 권력 도구화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 내용인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요약한 내용보다 다른 많은 내용이 이 책에 들어 있다. 인공 지능과 육체의 소멸 문제, 이와 연관하여 사이버 상의 성적 쾌락의 문제와 가상 공간에서의 섹스 문제 등도 다루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제와 관련된 만화, 영화, 소설에 대한 분석이 이 책의 흥미와 가치를 지탱한다고 하겠다. 이론적인 부분에선 너무 다른 이론가들의 견해들에 의지하고 있는 듯이 보여 한계가 있다고 생각됐다. 구체적 분석에도 아쉬움이 있다면, 관점을 돋보이려니까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떻게 여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취급하는가에 분석이 한정된다는 생각이다. 다른 피억압자의 시각과 관련을 맺어 더 풍부한 현실을 드러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 들었다. 그러나 컴퓨터와 사이버 접속이 생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화에 대해 진보적이며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분석서가 그리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그 문화에 대한 사유에 적절한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