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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과 사이버스페이스
산드라 헬셀 / 세종대학교출판부 / 1994년 12월
평점 :
절판
가상 현실의 그 이론, 응용, 전망을 탐색한 책. 이 책의 이점은 가상 현실 개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쓴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가상 현실의 가능성과 응용 영역을 쉽고 간결하게 보여주는 글들이기에 나같은 초심자한테도 도리어 가상 현실에 대한 실제적인 접근이 쉬울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관심을 갖은 부분은 이론보다는 응용과 전망 파트였다. 가상 현실에 대해 '가상에 미혹되어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든다'라는 비판을 가하기 쉽지만(나 역시 막연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이 가상 현실 프로그램이 다양한 분야에서 바람직하고 생산적일 수 있는 전망을 가지고 실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상 전시나 가상 극장을 만든다는 아이디어 부분을 읽으면서 예술 분야에 새로운 공연 전시 개념을 불어 넣어주면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했고, 가상 현실 프로그램이 군사적 목적이나 상업적 목적이 아닌 교육적 목적으로 쓰인다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예술이나 교육에서 가상 현실 프로그램이 이전 프로그램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는 점은 제공자/수용자의 분리선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가령 연극 분야에서는 배우들이 특정 공간 안을 배경으로 만들어 상황을 재연하면 관객은 이를 수동적으로 수용해야 했다. 하지만 가상 연극에서 관객은 직접 연극 구성에 참여하기 때문에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다. 그의 선택으로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사건이 벌어진다. 이 연극 개념은 그대로 교육에 응용될 수 있다. 이 책의 공저자 중 한명인 데이비드 트라우브는 교육 도구로서 가상 현실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살피는 글에서 역사 교육을 예로 들고 있다. 어떤 특정 역사적 상황으로 가상 현실을 만들어 놓고 이 상황에서 피교육자가 여러 선택을 통해 상황변화를 불러오면서 스스로 그 역사적 상황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체험을 통해 인식의 깊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할 때, 가상 체험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가상 현실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여러 가능성들이 나를 놀라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면서도 역시 지울 수 없는 의심이 있다. 그것은 프로그램의 작성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관객이나 피교육자가 스스로 상황을 만들어나간다고 하지만, 이 역시 일정한 틀, 프로그램 하에서의 선택이며 상황 전개이다. 어쩌면 스스로 상황을 만들어간다고 하는 착각을 가상 현실은 심어주는 것이기에 더욱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노파심일까. 딱딱한 역사 교과서를 외는 것보다, 비록 가상적이지만 얼마나 다채롭고 경이적인 체험을 가상 현실은 가져다주는가? 이전 교육에 비교하면 교육의 질은 천양지차가 될 수 있을 것 아닐까. 다시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 자신이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