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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소개된 신간 서적중에는 유난히 호기심을 끄는 책이 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내 놓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당신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습니까?'
라는 호전적인 질문에 끌려 가제본 서평단에 응모했다.
올해들어 넷플릭스를 볼 여유가 없어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을 썼다는 새라 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나 1권을 숨가쁘게 읽어내고 나서 지금, 현재를 날카롭게 헤집는 필력이 넷플릭스의 속도감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엠마는 사우스 햄프셔 칼리지의 심화역사 강사로 가난한 제자들의 삶을 바꿔보고자 정계에 입문했다. 그녀가 속한 정당은 페미니스트 캠페인을 벌이는 노동당이다. 십대 딸을 둔 엠마는 삼수 정도는 해야 의원 뱃지를 달거란 예상과 달리 비교적 빠르게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력을 쥔 대가는 갈수록 참혹할 예정이다.
일단 바쁜 그녀의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둥지를 채간 캐럴라인.
한때 그녀의 친구였고 딸 플로라의 피아노 교사었던 캐럴라인은 엠마의 자리를 꿰차고 딸 플로라에게는 엄마보다 더 가까운 자리에 도달했다.
소설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어쩌면 냉혹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특성을 잘 포착한다.
엠메와 딸 플로라의 인생을 굴곡지게 만든 잡지 <가디어 위캔드.>의 에디터가 표지로 내세운 엠마의 사진은 평소 그녀답지 않게 '섹스와 권력 명백한 야망'의 심벌처럼 나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다. 영악한 에디터 같으니라고.
그녀는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들의 익명성 보장 법안을 발의하기 위한 전술로 응했지만, 그 사진으로 인해 딸 플로라는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거리가 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레아는 우정 부스러기만으로도 만족해하며 관계를 이어갈 의사가 있는 에비, 케이트와 대화를 더 많이 나눴고, 플로라는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움을, 곧 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갈 것임을 인정했다.'
아마도 이 부분에 공감할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겉으로는 평온해보이지만, 어른들이 모르는 세계에서 소녀들의 세계는 이와 같은 정글이다.
결국 코너에 몰린 딸 플로라는 자신과 엄마의 명예를 끌어내릴 거대한 실수를 하게 된다.
우리는 세간의 입방아가 뭐가 중요해. 나만 떳떳하면 되지 뭐.
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리벤지 포르노나 진실이 잘못 부풀려진 소문들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사회적 평판을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나를 무한히 지지해줄 단 한 사람의 타인(가족말고)이 있다면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오랫동안 나락에 있는 이를 끝까지 지켜줄 사람 하나 만드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1권을 덮으면서 하게 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도움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놓칠지도 모르다는 점 외에도-이 소음 속에서 진짜 위협들을 가려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따. - P29
"살면서 사이번 벡스터 같은 자들을 셀 수 없이 만났어요. 자신이 만난 모든 여성에게서 실존적인 위협을 느끼는 남성들을요." 교사 시설 학과장도, 여당 원내 총무도, 심지어-생각도 하기 싫지만-전 여인도 그런 사람이었다. - P45
요즘 10대애들이 어떤지 엄마는 모른다. 툭 던지는 댓글과 날 선 농담은 치익 하고 그어지는 성냥불과 같았다. 순식간에 삶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 P91
훗날 나는, 아이가 다른 여자아이의 명예를 훼손한 일이, 그리하여 자신의 명예까지 위험하게 만든 일이 내 명예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불러온 또 하나의 결정적 사건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이크와의 하룻밤처럼, 모두 연결된 사슬 속 한 고리였다. 하지만 나는 내면에서 울리는 비판적 목소리를, 위선의 속삭임이 더해진 그 목소리를 잠재웠다. - P159
품격을 잃으면 도대체 내게 무엇이 남겠는가?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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