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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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인디언 속담에서  친구를 의미한다. 쓸쓸할 때 보고 싶고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생각하는 사람이 친구다. 외롭고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을 때 누군가에 전화를 하려고 해본 적 있는가. 수십 개의 전화번호 중에서 지금 당장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줄 사람이 몇 명이 있는지 떠올려본다. 조금 더 슬퍼진다. 나보다 더 바쁠 것 같고  나보다 더 불행할 것 같고 때로는 혹시 거절당하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이 번호 누르기를 망설이게 한다. 마음먹은 대로 아무 때나  만날 수 있고 연락할 수 있는 사람,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할지 상상만으로도 뿌듯해진다.

 

    

 

두 가족이 나온다. 피가 섞이지 않은 이들이 산골마을에 모여 이룬 단란한 가족과 거칠고 막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끈끈한 가족애를 품은 조폭들 말이다. 그러니까 여기 모여서 사는 우리들,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가족같이, 식구처럼 정답게 살아왔잖아. 서로 화합하고 좋게 해주고, 응? 사랑하고 말이야.(p75)  조폭들의 가족애라고 해서 우습게 보면 안된다. 그안에 그들만의 법도가 있고 작은 행동하나가 계기가 되어 폭삭 무너져버릴 수도 있지만 그들은 애정과 사랑으로 똘똘 뭉쳐있다. 비록 돈과 명예와 권력이 엉켜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도 사랑은 사랑이고 그들은 가족이다.   DNA를 따지고 몸속에 흐르는 혈액의 정통성을 중시하는 가족의 시대는 점점 흐릿해진다. 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데려다 친자식 이상으로 돌봐주고 사랑해주며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이국의 며느리를 맞아 새로운 혈통을 받아들여야 하는 집안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전히 내 피가 흐르는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이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아무튼 세상이 변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피의 정통성만 따지고 있으면 얼마나 구닥다리 같은 생각인가.

 

저질 변태같은 남편에게 두들겨 맞으며 살다 결국 소중한 아이까지 잃게 된 이령, 스물 전까지 도련님 대접을 받으면서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오다 어느날 갑자기 부모를 잃고 재산도 잃고 친척들에게 배신까지 당한 영필, 끊임없이 새아버지를 맞으며 추악하고 더러운 세상의 맛을 먼저 봐야했던 예쁜 새미,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만나 인생을 허비했다고 자탄하는 소희.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상처로 얼룩진 그들이 뭉쳤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죽음 말고는 생각나는 것도 없었던 시간들을 함께 견뎌낸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다 자기 가족한테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상처입은 사람들이야. 상처를 줬을 수도 있지.어쨌든 옛날 가족과는 다들 남남이 되었어. 그리고 여기 이 마을에 어찌어찌 와서 다시 한식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우리는 서로를 가족으로 선택했다. 너희도 이제는 우리 식구가 되었어. 새미야, 이리 온. 어서 와, 어서. 나는 너를, 너희를 정말정말 사랑한단다. (p164) 

 

공개적으로 아이를 입양해서 행복하게 키우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너무 낯설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훌륭해 보인다. 그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용기 내어 했던 행동과 실천들이 그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기 위해서 찾아오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을 더이상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면 안 될 것이다.  엄마 아빠 내 동생 내 언니 내 오빠 내 자식도 중요하지만 생각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소중하다. 일 년에 한 두번 만나는 피가 섞인 친척보다 매일 만나는 이웃이 더 정답고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해야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마주 앉기만 하면 술술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사람이 필요하다. 오늘 실컷 수다를 떨고도 내일 또 만나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 그것을 갖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용기, 함께 있기 위해 참을 줄 아는 용기, 서로의 다른 점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용기.

 

 "형님!" "아저씨!" "여산씨" "여산이!" "아빠!" "와뿌이!" (p220)

서로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그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간절할 것이다. 비록 다른 곳에서 태어나 모른 채 오랜 시간 살아왔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함께 사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서로를 챙겨줄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 또한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다른 사람을 위해 힘껏 싸우면서 위로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가족이 아니라면 절대 용기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부끄러운 일을 당했다고 울분을 토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나서서 주먹을 휘둘러 줄 사람이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상처가 아무리 깊다해도 살아갈 힘이 불끈 생길 것이다.

 

 성석제의 소설을 익살스러운 문학의 결정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구수한 입담에 혼자 얼굴이 벌게지기도 하고 그냥 웃기도 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슬픔과 절망과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은 꼭 필요하고 내 곁에 있어야 하는 존재지만 피와 혈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사랑을 채우기 부족한 시대가 와버렸다. 내 것만 찾고 내 씨앗을 주장하기에 너무 다양한 사회가 된 것이다. 알고 있었던 가족의 의미를 다르게 써야한다. 사람들이 달라지고 있으니 나도 변해야 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내가 믿고 있었던 것이 더이상 보편적인 정서가 아니라는 충격을 매일 겪고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시간들이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들으면 씨알도 안 먹히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더이상 낯설고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세상이 왔다. 내 슬픔을 나눠줄 수 있는 친구, 그들이 가족처럼 느껴지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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