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속, 발기하는 사물들 - 미술과 철학의 공통먹이, 사물 이야기
조광제 지음 / 안티쿠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간혹 첫 느낌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책들을 만난다. 내게는 대개 미술의 영역에 있는 도서들에 그런 매력을 느끼는데, 부제인 ‘미술과 철학의 공동먹이, 사물이야기’를 통해 연상되는 담론은 시작부터 상상의 영역을 한 층 넓게 만든다. 더불어 그 담론의 영역에서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만들어가는 관계성은 이 책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력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미술과 철학이 사물을 통해 바라보는 서로 다른 방식을 적절히 배합한다. 미술은 감각적 행위를 통해, 철학은 개념적 사유를 통해 말이다.

그 대표주자로서 필자는 다섯 명의 미술가들(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칼 안드레, 앤디 워홀)과 그들과 관계성을 지니고 있는 철학자들(모리스 메를로-퐁티, 질 들뢰즈)을 필두로 내세운다.

필자가 이들의 감각과 개념적 사유를 엮어내는 솜씨는 꽤 치열하고, 단단하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가는 관계성과 연계성은 철학과 미술을 공유하는 한편 각각의 반대편에서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느낌을 준다. 즉, 미술 간의 관계 혹은 미술과 철학과의 관계를 삶의 실제인 사물을 통해서 잇는 모습은 어떤 하나의 치우침도 없이 실제를 반영하고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필자는 메를로-퐁티의 ‘살 존재론’을 통해 사물과 감각이 혼융된 화가 세잔의 예술 세계를 읽고 사물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이어 세잔과 메를로-퐁티를 통해 만나는 감각적인 사물의 세계를 만나다보면 세잔의 제자이자 그를 독보적인 스승으로 여겼던 파블로 피카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이어진 감각적인 사물의 의미는 해제와 동시에 응축되고 반복됨으로서 하나의 율동을 자아낸다. 그의 이러한 작품 세계는 ‘사물 자체는 결코 의미가 고정된 것이 아닌, 자생적으로 어떤 다른 것으로 생성, 변화해갈 수 있는 가소성과 다산성을 지닌 것’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사물에 대한 본질적인 특징은 마스셀 뒤샹에 이르러 신랄하게 표현된다.

사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뒤샹의 예술 세계의 사물과의 관계를 접목한 부분인데, 뒤샹과 미니멀리즘의 관계, 원본과 복제본의 관계 등 그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생각은 현재 삶의 실제적인 부표로서 본질적인 사상을 드러낸다. 더불어 대량 생산을 바탕으로 한 현대의 현실, 복제본 체계의 바탕으로 형상이 되고 있는 그의 감각적인 사유는 앤디워홀로 이어진다. 그의 ‘독보적인 예술 장치’인 사물의 반복은 스스로 물질성을 획득해나가며 감각을 선회한다.

기실 이러한 반복성은 사물을 통해 실제 삶 속에 투영되고, 미술과 철학 - 즉, 감각과 개념의 경계를 넘어선다. 이른바 필자가 서두에서 언급한 “미술과 철학, 철학과 미술이 서로에서 ‘몸을 녹여’ 삼투해 들어가는 장면을 연출해보고 싶었다는” 그의 집필 의도는 현재 분명 그 관계 속에 섞여있는 나의 내부를 한 층 더 이끌어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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