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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펼쳤다.
여자를 얻기 위해 이 사람. 허삼관이 피를 판다. 아 그래서 허삼관이 피를 판 이야기로구나. 오호.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집을 떠나서 율도국의 왕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주인공이 피를 팔면서 사는 이야기.
우선, 흥미를 끄는구나.
피를 팔아 결혼한 ‘아이야’를 잘 외치는 허옥란은 오년동안 아들 셋을 낳았는데, 일락, 이락, 삼락이라고 지었다.
“내가 아이를 낳을 때, 당신은 바깥에서 희희낙락했겠다?”
“난 웃은 적 없어. 그저 좀 히죽댔을 뿐이지. 소리를 내서 웃지는 않았다구.”
“아이야.”
이렇게 기뻐하던 그에게 ‘자라대가리’가 된 사건이 있었으니. 첫째인 일락이가 알고 보니 하소용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이럴수가. 나의 장남이 남의 씨라니. 살면서 억울한 일을 겪어서도 이건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그런 일락이에게 피를 판 돈으로 나름대로 복수를 한다고 일락이를 빼고 국수를 먹으러 간다. 일락이는 고구마 하나로 때우지만 국수가 먹고 싶어 아무에게나 국수를 사주면 아버지한다고 울면서 걷는다. 그런 일락이를 찾으러 가고 결국에 일락이를 업고 국수를 먹으러 가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또한, 옥수수죽만 먹어 배고파 하는 식구들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게 한 후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장면.
“자, 우선 고기를 끓는 물에 넣고 익히는데 너무 많이 익히면 안 돼. 고기가 다 익으면 꺼내서 식힌 다음 기름에 한 번 튀겨서 간장을 넣고, 오향을 뿌리고, 황주도 살짝 넣고, 다시 물을 넣은 다음 약한 불로 천천히 곤다 이거야.”
허삼관은 아이들의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침이 한 번 꼴깍!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홍사오러우’라는 음식이 입안에 가득 맴도는 느낌. 행복해졌을 가족들의 마음. 까르르 웃고 침 흘리며 자는 허삼관네 식구들 모습이 눈에 떠오른다.
이 작품은 매우 잘 읽힌다. 투명하리만큼 허삼관의 삶이 잘 보이면서 동시에 내가 허삼관 옆에 있는 듯한 그와 함께 어느새 웃고 먹고 안타까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과 함께 하면서 <시네마 천국>영화가 생각이 난다. 끝부분에서 주인공이 잘려졌던 키스장면들을 보면서 우는 모습.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코믹하면서도 왜 그리 슬픈지. 또 하나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삶은 물 흐르듯 무심하게 흘러가고 너무나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려는 주인공. 그 속에 슬픔. 그리고 슬퍼서 아름다운 삶의 모습.
우리네 삶도 허삼관이 피를 판 이야기처럼 때로는 구 년 동안 키운 자기 자식이 남의 씨라는 것을 알아서 국수조차 사 주기 싫었지만, 그런 아들을 위해 몇 번씩 피를 팔아 병원비를 마련하는 일임을 알았을 때.
하지만, 나중에는 그 피조차 팔지 못하고 모욕까지 당해서 울고 있는 그에게 허옥란이 사준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고 “그런 걸 두고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구”라고 너스레를 떨어야 하는 것도 삶이라면.
중국의 거대한 역사를 이렇게 담백하게 표현할 수도 있을까. 문화혁명을 옥수수으로, ‘기생 허옥란’으로 이야기한다. 힘이 들고 고단한 그 삶속에 얼굴을 파묻고 물어본다.
“삼관씨, 그래도 살아야겠죠?” 허삼관은 말한다. “일이 힘들어 견디기 어려울 때면 동산에 올라가 아버지와 엄마를 생각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