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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어려서 부터 바리데기 설화를 많이 듣고 자랐다. 내가 자란 고향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화였고, 나는 딸 부잣집의 막내이며, 우리 엄마는 이야기꾼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예전부터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우면 이야기를 시작하시곤 하였다. 여름이면 <장화홍련전>그 어떤 이야기보다 무서웠고, 엄마의 연기에 우리 딸들은 이불속에서 벌벌 떨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엄마 심부름을 하기 싫어하면 "어떤 애는 엄마가 겨울에 산딸기 먹고 싶다고 하니깐, 눈 속을 헤치고 죽을 고비를 넘겨 산딸기를 따 왔다던데..."이러시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그리고는 이 <바...리...데....기> 는 "있잖아. 신데렐라를 우리나라 식으로 이야기하면 될 것 같아. 부엌데기 이러잖아.......버려진 여자....뭐...그건 그렇고.."이러면서 시작을 하신다.
그러면 나는, 이 주인공이 할머니께 이야기를 들을때처럼 질문도 하고 그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내가 여자라서, 또한 아들이 없는 울엄마는 내가 낳았을 때도 버리고 싶었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 "너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는 주위 어른들의 농담에도 나는 굉장히 심각했었다. 결국 바리데기가 생명수로 부모님을 살렸다는 이야기로 갈 때는 "엄마, 나도 그럴게...걱정하지마...그지?"하고 웃으면 울엄마는 "그럼. 누구 딸인데"하며 꼭 안아주시곤 했다.
현재 엄마는 연세가 있어서 일을 안 하시지만, 몇년전까지만 해도 쉬지 않고 일했다. 바깥일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거의 엄마의 몫이었다. 바리데기...여자의 일생... 여하튼 내가 알고 있는 바리데기는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도 참 슬프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작품은 역시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작품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손님><심청><바리데기>로 이어지는 작품은 황석영씨가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 <인간다움>에 대한 내용이다. 우선 바리데기라는 버려진 여자를 소재로 하고 있고, 그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다움과 인간다움을 거부하는 사회와의 거대한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황석영 작가의 힘찬 필체와 함께 끝까지 인간다움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바리가 헤쳐나가야 하는 누더기를 걸친 난민들과 굶어죽고 일하다 죽고 맞아죽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 무기를 들고, 목 떨어지고 피묻은 군복을 입고 대체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 피로 물든 사람들이 있는 세상, 딸이나 누이나 며느리에게 형벌을 가한 아버지 오라비 남편 가족들이 함께 타고 있는 세상, 여자를 팔아먹는 놈들, 돈놀이꾼들, 가족을 산산이 흩어놓는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보다 더한 세상이다.
그 지옥보다 더한 세상에서도 바리는 인간다운 사람들을 만나 때론 행복하기도 한다. 바리가 영국에 가서 여러 인종의 사람들과 살아가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다. 인종차별이니 남녀차별이니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사회가 만들어간 것일 뿐. 바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 홀리야순이도 얻게 된다. 하지만, 전쟁속에 남자가 행방불명되고 샹언니의 무심속에 아기가 죽게 되고 인간다움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역시 끈질기게 버텨온 인간다움이 살아나면서 남편이 돌아오게 되고 바리는 힘을 내려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테러로 인해 또 한번 울지만......그 뒤에도 바리는 일어날 것이다. 다음에 어떤 내용으로 바리가 탄생할지 작가의 작품에 주목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