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비범하고 독창적인 그래서 좆같은 불행이 나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영혼을 무차별하게 갉아먹을 때 그 때 나는 지옥이 내 발 밑에서 검은 끝없는 공간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지옥의 순간이여 잠깐만 기다리라.온 몸이 부서진 자는 파괴의 그 끔찍한 고통이 무엇을 은유하고 있는지 알고 있음과 동시에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도 정확하게 측정하여 인식하고 있음으로 하여 지옥의 황홀하고 기괴한 고통의 단련을 기꺼이 받아들이므로.검고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얼굴의 시간의 구두 아래 으깨어지는 나의 수형의 참혹한 아름다움이여.다시 없을 매혹의 펼쳐짐이로다.나는 아마도 가장 깊은 곳의 은밀한 인간 정신을 들여다 볼 것도 같다.나는 향기로 이 세상을 지배하여 나의 증오 가득한 어린 시절의 원한을 갚고 이 지루하고 기쁨없는 세상을 나의 의지대로 마음껏 조롱할 것이다

아마도 장 그루누이가 살아 있는 인물이고 만약 일기를 썼더라면 이런 정도의 지독한 중얼거림을 끄적이지 않았을까? 장 그루누이에게 태생적으로 주어진 지독한 삶의 외면을 세 번 나는 애도한다 장 그루누이 악마의 영혼으로 지상의 지고순결한 최상의 매혹적인 향기를 천재적으로 채집한 그러나 영혼없는 사내.그리고 장 그루누이에게는 마치 어떤 종류의 인간들에게 인간의 핵심인 영혼이 없는 것처럼 육체의 향기가 없었다 그러나 반면에 장 그루누이에게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비범한 향기에 대한 능력이 있었고 이 비상한 후각의 감각으로 그루누이는 세상을 파악하고 있다  곧 그루누이에게는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의 원초적 질료가 향기였고 이 세상과의 모든 현상과의 매개체가 향기였으며 모든 비의의 핵심에는 향기가 있었으며 타자와의 소통하는 통로가 향기였다 그런 향기의 감각만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그루누이는 향기가 없었다 그루누이는 타자와 사물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마주하고 섞이어 교류하고 소통하는 매개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사실인지 나는 읽으면서 그 이율배반의 알 수 없는 섭리에 골몰해야 했다 지상최고의 천재 후각의 소유자,그 섬세하고 복잡하며 황홀한 지순한 아름다움의 향기를 온갖 방법으로 창조하고 지배하며 마법처럼 간단히 제조해 내는 향기의 마술적 장인인 그루누이가 정작 체취가 없다니! 그루누이는 태어난 자체가 불행하고 삶 자체도 불행하고 더군다나 영혼에 있어서도 도무지 인간적인 구석이 없었다.혹여 인간미의 감동이 향기로 치환될 수 있다면 그루누이의 삶 전체에서는 향기가 그 매혹적인 모든 향기가 일체의 통일적인 거세로만 그 살풍경한 황량한 무향으로만 남는다 이것이 나는 내내 작품을 읽으며 의문스럽게 느낀 점이었고 이것이 내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독해법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왜 장 그루누이에게는 삶에서 인간적인 것이 모조리 거세된 것일까? 어째서 삶의 정신적인 영혼의 측면에서 향기가 몽땅 제거된 것일까? 그의 삶을 하나의 인생으로 볼 때 향기 없는 삶은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아 그루누이 그루누이 그루누이 이 물질 세계의 구성의 원리를 장악한 비밀의 지배자여 그루누이가 보기에는 향기없는 삶은 곧 인간미가 참혹하게 말살된 결여의 삶이었을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루누이는 자기 자신 스스로 이 세계에 소통되지 않는 무취의 영혼으로 태어난 사람이었으니 그가 이 세상에 대항하여 가졌을 아웃사이더로의 감정과 뭉쳐진 증오의 감정을 알 것도 같다.하지만 나는 그루누이의 무서운 점이 악취보다도 더 무서운 무취라는 것을 알았다.온갖 악덕한 악의 향기를 뿜어내면서도 이 세상의 모든 인간적인 향기를 소비하는 데 열중하는 악한 인간들보다 차라리 더 무서운 극악한 인간으로 그런 모든 악덕조차도 마치 탈취되어 무향무취인 것처럼 삶에 대해 일말의 애정도 애착도 어떠한 긍정의 가치인식도 없는 인간이 바로 그루누이였다 ! 이것이 더 무서운 것이었다 삶에 대한 지독한 악취 나는 행동들도 결국에는 삶에 대한 비뚤어진 것이긴 해도 열망과 욕망 애정등에서 나온 것이니까.그러나 그루누이는 육체에서 전혀 냄새가 없었던 것처럼 일체의 세상사에 아무런 희노애락도 없었다.욕망도 도덕도 감동도 의지도.이 기묘하면서도 섬?한 작가의 그루누이에 대한 메타포에서 나는 작가의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정말 놀랐다

 

그루누이가 세상에 대한 열망을 모든 사람들처럼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이 세상의 향기로서의 지배자이고 삶의 비밀의 소유자인 그는 향기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군중을 사교의 광신도처럼 만들어 통제하고 군림했을까? 아니면 그 향기로 기적의 향기를 만들어 순결하고 마술같은 아름다운 매혹의 선물로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나는 작가가 아니니.이 책으로 나는 정신적인 후각세포가 존재하지 않아 육체의 체취처럼 정신의 드높은 향기의 교류 소통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의 그 섬뜩하고 무서운 유해함을 얼핏 들여다 본듯도 싶다 누가 아는가 범죄자들이 사실은 특정한 정신적인 향기를 인간미 가운데의 그 풍요로운 아름다운 어느 향기를 못 느끼는 그런 정신상의 후각세포가 없는 사람들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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