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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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를 좋아하게 된 건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후부터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이제 돈을 벌고 직장에 다니고 일을 해야 한다는 자각이 생기고 난 뒤부터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더 이상 난 어린이가 아니라는 그 상실감에서부터 나는 하루키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루키는 청춘이 읽는 소설이라고 생각되었는데 그런데 내가 더 이상 놀고 먹는 청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 부터 하루키가 좋아졌으니 아이러니다  

하루키는 그 매력적인 외피 안에 상실되어 결락된 원초적인 그 무엇에 대한 동경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로 조금 앞에서 반짝이고 있는 빛처럼 언제나 바라보면서도 붙잡을 수 없는 애틋한 아쉬움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인 하루키에게는 그것이 연인이고 젊은 날의 추억이고 과거이며 사람의 몸에 들어온 양이며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100%의 여자아이일 것이고 그것은 독자들에게 다시 변용되어 제각각의 메타포로 변전한다 

각설하고 하루키를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갓 구워낸 빵처럼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향긋한 그의 문체를 열심히 오물거리며 씹어가다보면 상큼하고 톡 톡 튀는 감성과 은근하면서도 오랬동안 여운이 남는 비어 있는 결락감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드보일드하고 터프하면서도 억센 곳이지만 반면에 동시에 몹시도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우며 맑은 곳이라는 이율배반아닌 이율배반과 모순이 기묘하게 하루키 안에는 공존한다 그 공존의 긴장 관계에서 오는 배리감이 하루키의 문학을 흐르는 주된 동력 중의 하나다 기억하는가 하루키의 문학을 읽으면서 그 아름답고 재미있는 비유와 풍부한 묘사에 감동하고 감탄하면서 동시에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차가운 위협과 단단한 증오 그리고 끝내 어쩔 수 없는 죽음에 절망하고 굴복했던 그 모순된 체험의 순간들을 

이 간극에서 빚어지는 불합리한 불협화음이 하루키의 심중에 간직된 신념 내지는 세계관과 일치되면 그 순간 아름다운 작품들이 피어난다 태엽 감는 새나 댄스 댄스 댄스나 1Q84나...모두 다 아름다운 부조화를 바탕으로 섬세한 인식이 만들어낸 하루키표 사상의 집적체이다 요컨데 하루키는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가리지 못하는 세상의 불합리에 주목하고 있고 죽음을 들여다 보면서 에로스의 선명한 유혹에 저항하지 못하는 생의 감각자이다 그래서 그가 묘사하는 사물들은 시종 아름답고 풍부하며 제 모습을 자족하고 있고 그 사물들이 속해 있는 세계와 불화를 빚고 있다 이 불화가 처연할 때 그때 하루키의 묘사는 가장 빛난다    

하루키의 작품은 그 매력적인 외피에 싸인 달콤한 속살에도 불구하고 하드보일드한 비정한 세계가 스며들어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속 죽고 그리고 고립되어 있어 소통을 원한다 이 세계는 정말이지 터프한 세계인 것이다 그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계속 상실하고 그리고 그것을 애틋하게 그리워해야만 한다 이런 비정하고 거친 세계에서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슬퍼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마침내 결단하고 그리고 고독하다 

독일TV의 문학토론프로그램에서 하루키의 작품을 놓고 난상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하루키의 작품은 문학적 패스트푸드에 불과하며 이런 가벼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하루키를 옹호하는 논지의 주장을 했는데 패널로 출연하는 문학평론가가 하루키를 심하게 공격했다고 한다 사회자가 그에 맞서 옹호하는 주장을 계속 하자 말다툼이 벌어졌고 그 말다툼에 격분한 문학평론가가 생방송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화를 부리는 것으로 그 토론이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하루키의 세계는 깊어졌고 단단하고 육중해졌다  

태엽 감는 새에서 보여준 현실 인식과 참여의 조짐은 해변의 카프카를 거치며 조심스럽게 중요한 쟁점이 되었고 마침내 1Q84에 이르러 현실 속으로 완전히 깊숙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키는 이제 역사와 현실을 이야기하는 참여적이고 진지한 작가이다 비록 시작은 개인주의적이고 고립되어 있으며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비판적으로 혹은 냉소적으로 보는 사소한 개인으로 출발하였지만 이제는 현실이라는 판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참여적인 묵직한 의식을 가진 중후한 작가가 되었다 그의 인식과 시선은 깊어졌고 본격적으로 사회의 환부를 응시하고 있으며 그의 손길은 이 사회가 갖는 그림자를 해부해 그 병리 현상에 대한 심층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라는 명작을 쓰는 데에는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연들의 실제 주인공들과의 추억과 체험이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연이 없는 허구로 된 태엽 감는 새와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1Q84를 보면 하루키의 파괴력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알 수 있다 

 

하루키의 시작은 미미했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두고 이런 건 나도 쓰겠다는 소리를 주위에서 여기 저기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하루키는 시간이 지남과 함께 점 점 진화했고 이제 하루키 월드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키는 이제 거대한 작가가 되었다 누가 뭐래도 하루키는 분명 뚜렷한 개성을 가진 변별력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하루키를 읽으며 그가 숨겨놓은 기호들을 해독하는 일은 마치 지난 내 추억을 꺼내 들여다 보는 것처럼 즐겁다 이제 하루키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고 세대를 엮는 기나긴 증후군이 되었다 내가 하루키를 처음 읽던 때 그 때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는 하루키를 같이 읽는다 그리고 말한다 하루키는 독창적인 화법이 있어서 참 좋아요...그래 하루키는 이 지구에서 가장 재미있게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 쓰는 작가란다 

나는 하루키를 읽으면서 어른이 되었다 10대 후반에 읽었던 하루키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성한 그늘을 이루고 울창한 잎이 우거져 이제는 우람하고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는 한 그루 거대한 수목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하루키를 내일도 다시 반복해 읽으며 내 안의 빈 구멍을 메운다 
 

 

하루키의 작품 세계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점점 현실참여적인 능동적이고 현실적이며 역사적으로 변모하였다 초기의 세상을 부유하는 듯한 가볍고 경쾌하지만 일관되게 소외 혹은 거부하는 몸짓은 점 점 그의 작품에서 사라지고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궁극적인 구원을 갈구하는 기도와 의도로 대체되고 있다 이를 단지 하루키의 물리적 나이의 퇴적으로만 한정짓는 것은 한 소설가의 지난한 작업 세계와 숙성되어 가는 중후한 세계관을 일거에 부정하는 비이성적이고 무례한 짓일 뿐이다 하루키의 작품 세계가 그렇게 변했다는 것은 개인에서 전체로 소외 혹은 외면에서 참여로 현실의 이탈에서 역사의 현장으로 방향이 전환되고 심화되며 확장되어 그 의미망속에 좀 더 큰 것들을 영입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이제 '나'를 넘어 '너'에게 스며들어 '우리'의 공통된 슬픔을 이야기한다 전체에서 떨어져 나간 개인에 관심을 보였다가 이제는 공동체에 대한 사색을 시도하고 있다 

 

달이 두개가 뜨는 그 현실의 부재 부재의 현실 속에서 영혼의 무게와 상처의 무게에 압사당하지 않고 고독하고 용감한 투쟁을 끈기있게 끝까지 한 아오마메와 덴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아오마메를 만나기 위해 덴고를 찾기 위해 그토록 긴 오랜 여정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그들의 집념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자 이제 달이 하나인 세상으로 돌아오자 그리고 우리 모두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 사랑하자 마치 내일 죽을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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