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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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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었다 모호하고 혼돈스러운 기분 나쁜 복잡함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며 의미의 무를 형성한다 이책이 말할려고 하던 종국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알 수가 없다 다만 작가의 의도대로 독자들이 공감해 줄까 하는 의문만이 남는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내가 비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밝힌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니 다만 이 소설을 읽는데 있어 성서와의 연관성을 강하게 의식해야 했으므로 기독교에 대해 구원에 대해 그리고 종말론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함이 기능적으로 불편하게 작용했으므로 그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이 글이 기독교인들이 혹시 보게 되었을 때 빈약한 논거와 부실한 논리를 가지게 될까봐 그것이 걱정된다


이 책의 구성은 단조롭다 못해 황량하다 정말 텅 비워 걸릴 것이 없는 묵시록의 세계이다
세계는 멸망했고 사람이라고는 두 사람 아버지와 아들 뿐이다 그 세계속에서 존재하는 것은 단지 이 두 사람뿐이다 아내이자 어머니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타인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인간 뿐이랴 이 묵시록의 세계에는 너무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많다 심지어 당연히 존재해야 할 세계 파멸의 원인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묵시록의 종말이라는 상태를 설명할 뿐이고 암시할 뿐이다 그래서 종말이란 하나의 실현된 상황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설정한 허구이고 하나의 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강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왜 이런 관념적인 종말의 상황 설정이 필부득이하게 당위성을 가져야 하느냐는 물음이 고개를 쳐들게 된다 어째서 왜 인간은 종말을 겪어야 하나 어째서 여기 지금의 세계가 멸망하고 묵시의 세계가 현전으로 이 셰계를 대신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종말의 원인은 무엇이며 종말을 실행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하나님인가 이 종말은 요한계시록에 실린 대로 거행된 것인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 예정돼 있던 종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든 것이 의문이고 모든 것이 그 답이 부재하며 모든 것이 고요한 침묵속에 빠져 있을 뿐이다 이제 살아남은 인간은 그 의미의 부재를 벗어나 새로운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비록 사상의 새로운 변혁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들은 새롭게 도전해야 한다 이 종말을 견디어 낼 것인가 아니면 이 종말에서 포기해야 할 것인가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가도 가도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는 길을 가듯이 전망은 애초부터 부재한다 부재와 어딘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대한 어렴풋한 희미한 예감 그러나 그 희미한 예감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공허 이세계는 정말 파멸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그 파멸의 징후앞에 두 사람 아버지와 아들은 실존적으로 완전히 차단되고 고립되어 있다 이는 인류의 모습일까 과연 그렇게도 인류의 전망에는 암울한 절망만이 있을까


이 소설이 작동하는 방식은 모든 것의 생략과 비움과 차단과 가리기로 극도의 비좁은 전망(이걸 전망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지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세계는 파멸의 어두운 예감으로 침몰하고 있고 살아남은 자들은 아무 것도 행동을 취하지 못하며 오직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작은 몸짓이 그들의 최선의 대안이라는 걸 생각할 때 작가의 비극적 세계관은 절정을 이룬다
세계는 그토록 치명적으로 위협적인 불안을 두 사람에게 가하는데도 살아남은 인류는 도무지 생존의 근거와 방법을 찾지 못한다
과연 구원이란 것은 존재하는가 이 두 사람에게 구원이 찾아올까
찾아오지 못할 구원이라면 두 사람이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스스로 찾을 수는 있는가 그 구원을 말이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없이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그저 존재하고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 구원은 없다 다만 살아남아 동물적으로 존재하고만 있을 뿐이다 이 소설이 해체하고 있는 것은 비단 소설의 구성요소들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조건들과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요소들까지 모조리 완전히 부숴버리고 있다 과연 엄청난 소설이긴 하다
이토록 지루하고 또 이토록 공허하며 또 이토록 엄청나게 세상을 부수어 버리고 작가는 그 비통의 절대공간에서 과연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 절대적 상황에서 희망 대신 교훈을 얻으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인간정신의 승리이자 고귀한 인간의 정신에 대한 헌사라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거꾸로 가장 비참하게 리메이크하여 가장 지독한 비인간적인 모독의 노래를 만든다면 바로 이 소설이 될 것같다
온통 생략된 채 암시되어 있는 기조를 분석해 볼 때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가장 극심하고 가장 심오한 모욕이 될 것 같다 아주 점잖고 또 예의바르게 그러나 신랄하기로는 절대적일 정도로 작가는 이 세상에 대한 페시미즘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구? 인간이란 존재할 희망이 없어서 인류 자체가 절멸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상황들에 면면히 배어 흥건하게 흘러 넘치고 있으니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두렵다기 보다는 도저한 그 절망에 감염되어 세상이 싫어진다 도대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뒤의 세상에 무슨 호감이 가겠는가
작가의 의도가 인간이란 절멸해야할 존재들이고 그 심판의 날이 가까와졌다는 것이라고 제멋대로 단정해 본다면 이 책을 읽은 값은 되리라 그러나 작가양반 이 세상이 그렇게 전체가 사라지고 난다면 신이 보시기에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릇 창조된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비록 인간이 더러운 존재이긴 하나 묵시록의 현실은 고통스럽기만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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