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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완득아
세상엔 마음대로 안되는 일들이 너무 많구나
아직 어린 너이기에 그러나 그런 너이기에 이런 말들을 넋두리라도 하구 싶구나
세상엔 수많은 고통이 있고 수많은 불행이 있으며 만사여의치 않은 일들이 도처에 매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느 것이 인생이야
그런 인생의 강적들을 향해 하이킥이라도 날려주고 싶지만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헤비급 무에타이 복서같은 무섭고 상대가 안되는 그런 선수와의 경기처럼 무기력하고 갑갑하며 맥빠지는 일방적인 TKO패 경기 같은 것이 인생이야
너도 서서히 그런 인생의 불행에 대해 눈을 떠가는 나이라고 생각해
완득아
너의 두 어깨에 걸린 짐이 너무 무겁구나
날 때부터 남들보다 왜소하여 어린아이들이 난장이라고 부르기 딱 좋은 장애인 아버지와 한국에서 천대받고 소외당하기 가장 쉬운 동남아시아 근로여성을 어머니로 둔 너의 인생이 그냥 지켜 보기엔 너무나 안타깝고 우울한 그림이야
세상의 불행이란 말이야 누구도 청하지 않는데도 그냥 저절로 찾아가는 불청객같이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고 그냥 무작정 무단점거 시위를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공격의사를 갖지
그런 불행이 너의 집에도 인정 사정 가릴 것 없이 찾아갔구나
그러나 다행히 너는 우울함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너의 운명에 로우킥 하이킥 원투 쓰리 차차차 투 쓰리 차차차 3단 콤보에 풋워킹에 보디 블로를 날리는 강인한 유쾌함을 가진 아이더구나
그런 너의 해맑은 청춘의 폭주를 보면서 나는 가슴 한 편이 안도하듯 편안해짐을 느꼈고 동시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들더구나
그 감정을 쪼개어 보면 20%의 웃음과 30%의 슬픔과 50%의 부러움이었어
나는 너 나이 때 그렇게 당당하게 세상의 시선과 편견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대항해 싸우는 방법을 몰랐거든
그저 음울하게 바라보며 하루 하루 답답하게 자신을 죽이며 어두운 자포자기의 시간들을 보냈던 게 다 였거든
그런데 너는 결손 가정에 여러 가지 아픈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밝고 씩씩하게 자신의 전존재를 던지며 불확실하지만 전진하는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자신의 하루를 설계해 가는 그런 겨울 소나무 같은 아이였거든
참으로 비교가 되었지
어쨌든 현실이란 것은 참으로 팍팍하며 매정하고 불가항력이거든
그런 현실에 어퍼 컷을 먹이는 너의 훈훈한 푸르름에 눈물이 핑 돌다가도 웃음이 나와 너의 얼굴엔 바로 이 세상의 소외되고 차별받는 자의 쓰라린 고뇌보다는 티없이 맑고 건강한 생의 의지가 아로새겨져 있으니까
완득아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자신의 슬픔을 끌고 가는 것이 있고,반대로 자신의 슬픔에 파묻혀 그속에 침몰하는 유형이 있어
너는 자신의 슬픔을 짊어지고 게다가 그 슬픔을 웃음으로 감추고 세상을 향해 힘차게 뛰어 달려들어가는 그런 풋풋하고 패기있는 부숴지지 않는 자아가 있어 좋아
나는 바로 그런 너의 건강한 완강함이 좋은 거야
완득아
이 세상에 그 많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슬픔의 바다 고통의 바다 고해가 형성되고 그 고해의 바다속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허우적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인생이라고 할 때 우리의 삶은 너무나 고달프고 초라해지며 슬픔으로 변하지 그런데 너는 그런 중생의 사바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웃음이란 커다란 가르침을 주었어
그랬어 이 세상이란 슬프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워 눈물이란 것이 저절로 흐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서 그런 자신의 장매물과 업보도 얼마든지 웃음과 유머의 대상이 되고 극복가능한 것이란 것을 뜨거운 눈물로 가르쳐 주었지 그래서 너를 생각하면 슬며시 미소가 감돌아
세상은 살기엔 편하지 않은 것이 확실한데 그런데 왜 너를 보면 힘이 나고 용기가 솟으며 웃음이 절로 나는지 모를 일이야 푸훗
삶이란 정말 만만치가 않은 상대선수거든
그 선수와의 시합에서 나는 지금까지 상대전적 56전 56패야
앞으로 어떤 삶과의 승부가 어떻게 몇 번이나 남았는지는 알 수가 없어
그러나 지금은 그다지 두렵지는 않아
너를 보면서 동류의 사람들이 느끼는 위로의 안도를 얻었거든
까짓 거 져서 넘어지면 어때 다시 일어나서 원투 차차차 원투 쓰리 차차차 하이킥을 날리면 되지
세상은 그렇게 살벌하고 차가운 곳이지만 둘러 보면 아직도 몸 붙일 따뜻한 곳도 얼마 쯤은 있잖아
너의 그 입이 험하고 날라리선생인 똥주같은 그런 마음 따뜻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야
그러니 힘을 내서 살아갈거야 비록 이 세상이 험하고 무서운 곳이라고 해도 나만의 무에타이 콤보를 익혀서 정정당당하고 깨끗하게 이 세상과의 정식시합을 신청할 거야
세상은 웃는 자의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