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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 독자는 어떻게 변화하고 무엇을 얻으며 책과 독자 상호간에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는가?
지난(至難)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의식의 변혁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 공간이 세계와 상호소통하는 그래서 열려 있는 기능의 행위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를 구성하는 일종의 창조적 활동이고 무엇보다 책을 통해 감정의 에너지를 얻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읽어주는 여자 마리 콩스탕스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망설이고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시작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책을 읽어주는 여자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책을 읽어주면 귀를 기울이고 열중해서 탐닉했다
세상엔 읽는다는 행위를 원초적인 에너지의 흡수로써 동경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많았다
그 사람들은 장애인이거나 노인이거나 어린아이이거나 이혼한 남자이거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책을 읽어주는 소리로 통해 생성되는 하나의 미지의 공간 속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청중들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특수한 문제들이 각기 존재하고 있다
하반신을 못쓰는 장애인이거나 80 고령에 혼자 남은 사회주의자이거나 아니면 부모가 모두 바빠 돌봐 줄 수 없는 아이이거나 이혼하고 혼자 고독하게 살고 있는 사업가이거나.....
이들의 각자 독특한 조건들을 모두 위무하고 치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리 콩스탕스의 책읽어주기는 치유의 읽기라는 한 기능을 보여주고 그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고객들은 모두 마리 코스탕스의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그녀의 책읽기로 인해 생의 기쁨을 얻게 된다 생의 기쁨과 에너지를 얻으며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고 좀 더 많은 욕망을 꿈꾸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꿈꾸게 된다
심지어 혼자 살고 있는 고독한 할아버지이면서도 사드의 엄청나게 반질서적이고 외설적인 저서를 읽어주는 것을 즐기는 그 노인에게서조차도 신생의 열망을 엿볼 수있을 정도이니까
자 그렇다면 마리 콩스탕스의 책읽기는 독자 즉 고객들에 대한 공급을 다한 그래서 창조적인 가치가 있는 행위이다
이 창조적인 행위로 인해 마리 콩스탕스는 자신도 함께 변화해가고 좀더 다양한 욕망을 가진 존재로 변화해 간다 고객들이 마리 때문에 변화했다면 마리 역시 고객들로 인해 함께 발맞추어 나가듯 변화한 것이다
상호 소통의 기능 안에서 하나의 동질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책읽어주기는 책을 읽어주는 마리나 그소리를 듣는 고객들이나 즉 책이나 책을 읽는 독자나 모두 의미있고 생의 비밀을 담지한 매우 은밀하면서도 아주 창조적인 욕망이 만들어지는 진정한 하나의 축제가 되는 것이다
마리의 이 책을 읽어주는 일은 굉장히 의미있는 그러니까 일상의 진부한 수면 위에 만들어지는 섬세하고 강력한 아름다운 무늬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주는 일을 마리가 끝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닥치고 만다
법원의 판사 출신이면서 아주 예의바르고 교양을 갖춘 상류계급의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그러나 의외로 아주 반사회적이고 무규범적이며 탈도덕적인 사드의 <소돔의 120일>을 읽어주길 원하는 노인은 마리의 책 읽어주는 행위를 매우 싫어하고 감시하던 형사와 역시 그녀의 책 읽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의사를 초청해 읽어주기를 요구한다
마리 콩스탕스의 책읽기는 사회의 질서를 담당하고 있는 축들인 법원장과 치안을 경비하는 형사 그리고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 이들의 시선앞에 유린될 지도 모르는 시험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마리는 이들 앞에서 책 읽기를 거부한다
이들 마지막 독자들은 모두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담당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들이지만 실상은 사드의 지독한 외설적인 책들을 들으려고 모인 부패하고 정의롭지 못한 지배계급들이다
결국 부패하고 위선적인 사회의 질서에 마리의 책 읽어주기는 유린당하고 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하며 붕괴하고 마는 것이다
마리의 책읽기....그것은 어떤 은밀한 변혁이고 자그마한 혁명이며 생활을 창조하던 축제였지만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보수적이고(사실은 더 부패한) 억압적인 지배 담론에 의해 결국 항해가 좌초되고 만다
이는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일까
책 읽어주는 것(책을 쓰기)과 책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것(책을 읽는 것)은 어떠한 행위보다도 지적이며 동시에 몹시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독자와 책 또는 독자와 저자의 상호 소통의 교류장이다
진정한 책은 아무리 잘 쓰여진 책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독자를 만나 음미되지 않으면 탄생하지 않는다
책 읽어주는 여자는 그점에서 독자와 책의 아름다운 관계 맺기를 성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