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 테오에세이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테오씨

당신이 머물렀던 소금사막에는 비가 옵니까?

혹은 비가 온 적이 있는가요?

여기는 비가 안 내립니다

비가 내렸던 기억은 먼 선사의 꿈으로만 간직되는 듯 저 먼 중생대의 어느 우기에나 내렸을법한 더위로 이곳은 무척이나 답답합니다

처음 당신의 책을 읽으면서 저는 어떤 어렴풋한 의심을 했습니다

서점에도 돌고 도는 유행의 주기가 있게 마련이죠

지금은 해외로 왕성하게 떠나고 보는 여행의 욕구를 트렌드로 추종하는 그런 책들이 돌고 있는 때가 아닌가 하고 말이죠

볼리비아라는 나라는 사실 그렇게 인지도가 선명한 나라는 아니지요

아마도 남미의 나라가 거개가 그렇듯이 그다지 잘 사는 나라가 아닌 스페인어를 쓰는 미지의 나라가 아니던가요

그렇게 한국보다도 못사는 나라라고 하여도 우선은 이국이라는 점에,그리고 여행이라는 점에서 그런 곳이라 할지라도 여행기를 내고 보는게 지금의 트렌드가 아닌가하고 저는 그렇게 당신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박혀 있는 페이지들을 넘기며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억측은 일종의 의심이며 동시에 횡포지요

아무렴 유행이면 어떻습니까

유행할 때 입는 옷은 추위를 안 막아주던가요 유행하는 옷이라고 해서 아름답지 않던가요?

저는 당신에 대한 이런 의심쩍은 낯선 눈길을 거두었습니다

그저 당신을 따라 볼리비아라는 낯선 풍경을 조용히 둘러 보았습니다

볼리비아라는 나라는 조금은 뒤떨어지고 낡은 나라입니다

시간이 퇴적된 나라이죠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이 글로벌의 시대에 어딘가 지구 한 쪽에는 아직도 정답고 오래 되고 그리고 못사는 그런 나라들이 있는가 봅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나라들이 더 많은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섹스 앤더시티나 마놀로 블라닉 구두나 육성급 호텔이나 광랜 컴퓨터나 아카데미 영화제 같은 것이 한 번도 상륙하지 못한 그 이름없고 조금은 쓸쓸한 그 거리들을 라마와 같이 걷는 테오씨 그리고 저도 당신의 그 뒤를 함께 따라갔습니다

좋더군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도시의 사막이 아니라 소금 사막은 사막인데도 목이 타는 갈증이 없었습니다

쓸쓸하고 조용하여 마치 우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한낮의 무료함이 있고 그리고 가난하여 선량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아마 진정한 사막은 이 황량하고 번화한 그래서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이 도시의 사막인지도 모르지요

그럴 수밖에요 이 도시에서는 모두가 모둘를 모르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는 참으로 이상한 밀림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밀림을 살아내기 위하여 날마다 술을 마시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면서 그 고독을 값싼 감상에 팔아치우고 있는가 봅니다

사진으로 본 볼리비아는 또 다른 의미에서 고독한 곳 같았습니다

돈이 잘 돌지 않아 사람들은 낡고 망가진 의식주 속에서 무료하게 그저 시간을 때우며 하루 하루를 보내는 곳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막화가 진행이 안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지나친 사람과의 거리로 인해 고생을 하는 일도 없고 군중 속의 고립이라는 희한한 병에 신음하는 일도 없는 자유롭고 따스한 그래서 완만한 속도로 시간을 따라가는 일종의 평화가 볼리비아에는 있었습니다

마치 오래 된 사진을 다시 펼쳐 보는 것 같은 그런 편안함

그런 데쟈뷔가 있었습니다

잊고 지내던 친구를 다시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것같은 그런 반가움 그런 익숙함에 저는 아름다운 사진들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삶이란 이렇게도 다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어느 한 각도에서는 놀랄만큼 닮은 피사체가 성립되기도 하는구나 하고 저는 당신의 볼리비아를 보면서 그 익숙한 오래된 시간이 퇴적에 왠지 안심했습니다

그건 마치 잃어버린 옛 거리를 우연히 영화 속에서 장소 헌팅하는 사람이 어렵사리 발견해서 구현한 어느 지방의 모습들 속에서  다시금 느끼면서 알 수 없는 향수에 몸을 떨면서 감격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볼리비아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있을까요?

제가 책을 본 순간이 지나고 나서도 오래 오래 그렇게 그 모습으로만 있을까요?

그건 안 되는 일이겠죠 저의 욕심에 볼리비아의 내일을 막는 것은 안 되는 일이죠

그러나 볼리비아가 앞으로도 그런 쓸쓸하고 낡은 모습으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에서 본 볼리비아는 분명 '이곳' 과는 달리 어떤 가능성과 환상으로 채워진 나라였으니까요

당신의 책을 읽으며 볼리비아라는 이국의 한 장소에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어떤 가능성이냐구요

현실과는 다른 그러나 또 다른 현실이기도 한 그런 장소의 매혹같은 걸 말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의 또 다른 여행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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