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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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의 만화를 나는 좋아한다

그의 기발하면서도 현실에 밀접하게 발붙인 창의력이 좋고,언더나 비주류를 연상시키는 궁핍한 현실에서 날카롭게 세상을 보는 안목이 좋고 그러면서도 가장 약하고 별 볼일 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세상의 불의를 인식하는 양심 같은 것이 느껴져서 나는 최규석을 좋아한다

 

그의 새 만화책을 읽었다

기존의 창의적인 재치나 예리한 유머는 좀 적다

아무래도 연대기적인 현실의 일들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데 유의한 '대한민국 60년' 소사(小史)라서 그럴 것이다

 

그의 성장 과정은 도시의 안락하고 빈곤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경제개발 계획 이후의 삶들과는 좀 다르다

많이 다르다

그는 1977년 출생인데도 마치 19세기의 한국을 보는 듯한 그런 날것 그대로의 고생으로 채워진 삶을 살았다

역시 세계는 동일한 온도에서 동일하게 운영되는 하나의 단일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각자의 세계들이 한데 모여 각자 독자적으로 움직이는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의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는 체험들은 모두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아마 거의 변형이 없는 원형 그대로의 결을 지닌 사실로써의 이야기에 충실하다

 

거기에는 가부장제의 악습을 그대로 유지한 아버지의 술주정이 있고 무식하고 못살았지만 자식을 위해 그렇게 애쓰던 우리의 어머니가 있었고 동생의 미술학원비를 적금을 깨서 주던 누나의 온정이 있었고 육이오 때 인민군과 함께 산으로 들어갔던 고모부가 있었고 미국의 비행기 폭격으로 숨진 소 여물 주던 소년이 있었고.......무엇보다 숨가쁘게 미칠 듯한 속도로 전근대 농촌사회라는 과거와 결별하고 신흥개발도상국으로 숨가쁘게 진입한 대한민국의 어제가 있었다

 

티브이가 없어 깨금발로 창문 넘어 이웃집의 티브이를 같이 보던 시절의 그 코끝이 찡한 가난이 있었다

그 모습을 자존심이 상해서 못 보던 장남인 작가의 큰 형은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기능대회 동메달을 따서 돌아오고

작가는 이제 추억이 된 낡은 앨범 속에서 그 시절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 반추한다

 

대한민국은 정치가와 관료와 재벌만이 만든 나라는 아니다

오히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저임금 저곡가의 고통을 묵묵히 안고 노력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이다

그런 대한민국의 어쩌면 잊혀질 뻔한 ,그러나 생생하고 아쉬운 그래서 한번쯤은 기억해줬으면 하는 일들을 작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사실적인 그림으로 그려냈다

거기엔 가난하여 텔레비젼도 없던 소년의 회고가 그림처럼 생생하다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은 과연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그 잊혀질 뻔한 개인들의 후락하고 촌티나는 옛 이야기들은 그러나 우리의 시원이기에 가슴이 아리고 절절하다

대한민국의 원주민들은 과연 누구였는가

못 먹고 못 입고 못 살던 사회의 가장 낮은 자들이 울고 웃으며 살아가던 그 모습들에서 이제는 세계속의 한국이 된 그 나라의 가장 오래 된시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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