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정신의 지적 자극을 원한다면,그래서 논리의 엄밀하고 일관된 합리적 질서속에 과학의 공통되고 보편적인 원리로써의 지표가 구현되길 원한다면 이 소설을 집어들어야 한다.이책을 펼치고 단련해야 하는 지적 유희를,공대생이 아닌 나로써는 감당하기가 힘에 부치고 어려웠음도 나는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마련해둔 정신적 자극은 나의 우둔한 신피질을 청량하게 씻어줄 만큼 흥미롭고 정교한 과학적 장치들로 완전한 외양을 갖춘채 그 정연한 실체를 허용하고 있었다.명백하게 과학적 상상력을 구현하고 형상화하여 보편적 긍정으로써 진실을 완성해가는 작가의 긴밀한 걸음걸이는 어째서 sf 소설이 문학으로서의 특수한 개별성을 가진 하나의 쟝르로 기능하는지에 대하여 완전한 윤곽을 그리는데 일조한다.이 소설집의 하나 하나의 단편 소설이 마치 한권의 분량을 가진 소설을 독파하고 그 주제를 파악하는 것 만큼이나 쉽지 않은 경험을 선서했는데,관련되어 있는 인접 사상이나 학문들의 목록을 보면 어째서 그토록 가열찬 힘겨움을 겪어야만 했는지 자명한 수긍을 하게 된다.초월적 천문학의 세계관과 신화의 비리스러운 조응,의식과 신체를 통괄하는 신경의학과 인간정신의 상관관계,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수학적 증명과 그 학문적 고찰,문자 체계의 계통과 언어의 형식으로의 문자에 대한 숙고,유대교 카발리즘에 의한 언령신앙의 과학적 변용과 전성설로 이루어진 생체증식,메타인류의 과학적 업적과 그 균등한 사회적 재분배,기적이 일상화된 상태에서의 지옥의 의미론,미추에 대한 판단이 사라진 사회에서의 가치 판단등등.....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현란한 정신의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다.지각의 통점 위에서 과학을,또는 과학에서 변용한 신화와 판타지의 생성 가동을 통해 인식의 깊숙한 저변을 휘저으며 그 놀라운 메타이데아를 탐색한다.나는 테드창이 이들 소설을 집필하면서 현상 속의 과학적 접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서술해 나갔으리라고 생각한다.그 결과 특수한 경험으로써의 과학적 인식과 현실에서의 연구적 추론이 서로 충돌하고 접합되면서 아름다운 인식의 불꽃이 튀어 오르는 과학적 엑스터시가 유감없이 읽는 자의 뇌리를 꿰뚫고 지나간다.가령 의식이 특수한 약의 투입을 통해 정신 기능과 육체적 능력의 초월적 극대화를 통한 인간 능력의 한계치를 실험하는 '이해'의 경우,인간의 임계점은 어디인가를 의학적 범주속에서 마치 기계를 가동시키듯 신체의 변이를 시험해 보는데 나에겐 그 탐구 과정이 놀랍고 신기한 신념 즉 과학을 통한 유토피아의 실현이라는 너무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신천지의 풍경을 느끼게 하여 잠시 나는 아득한 황홀감을 느꼈다.비록 교훈적이고 계도성이 포함된 결말 부분의 충격을 작가가 의도했지만.만약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인공적인 시도로 극대화되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고도화된다면 그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된다면...나는 이런 상상만으로도 인간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개발지의 환영을 마음 가득 그리며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그외에도 많았다.유대교 랍비들이 문자의 배열법을 통해 생명을 창조했다는 골렘 전설을 모체로 개체의 전성(前成)을 통한 생명증식이라는 이론을 결합해 인류의 존망과 후손의 번식이라는 문제를 들여다 본 '일흔 두 글자' 역시 흥미로운 가정으로 지적인 호기심을 유발한다.문자의 특수한 배열을 통해 사물을 움직이고 생명을 불어넣으며 그 언령 신앙으로 생명 개체의 창조를 통해 증식을 도모한다는 기발한 설정에는 종교의 신화적 색채가 스며들어 있는 동시에 과학의 인접 분야로의 파급력이 적극 반영된 다변화된 현상적 결과로서의 과학적 시도가 응축되어 있었다.이런 광대한 범주의 사상적 전이는 다른 작품속에서도 계속 이어지는데 지옥의 의미를 묻는 '지옥은 신의 부재'를 읽으면 또 하나의 탐구하는 과제를 만나게 된다.신은 존재하는가 과연 존재한다면 죄없는 사람들의 고난은 어찌 설명되어야 하는가.그들은 신을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불행을 감수해야만 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섭리로 설명되어야 하는가.참으로 신학적인 주제와 맞닿아있는 과제라 할 수 있는데,이에 대해 테드 창은 지옥은 신의 부재이므로 그가 한 어떤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그것에는 아무 이유가 없고 고차원의 목적도 없다.즉 지옥은 신이 부재하기에 지옥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어려운 이 단편을 읽으며 논리적인 법칙으로 존재하는 신이 무조건적인 차원의 신앙에서만 존재할 뿐 신을 믿지않는 의식 너머의 인간에게는 부재하는 형태로 은총의 결여가 있다는 내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 보기도 했다.이 단편집의 단편들은 어느 것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작품을 내게 들라고 한다면 외계인의 언어와 문자표기를 연구하는 이야기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였다. 인류와 전혀 다른 언어와 표기수단으로써의 문자를 가진 헵타포드라는 외계인들의 통사구조와 그 계통적 표현 양식의 이질감은 나의 굳어 있던 상상력의 틈새를 뒤집고 솟아나온 새싹이었다.인간의 언어이외에도 이토록 다른 언어체계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기묘하고 차원이 다른 충격적인 문자표기체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 테드 창에 따르면 인류와 헵타포드가 접근하는방법은 정반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것을 뜻하는데,인간이 적분학을 써서 정의한 물리적 속성들을 헵타포드외계인들은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역으로 인간이 기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속성들을 헵타포드들은 대단히 해괴망측하게 정의한다고 한다.인류가 순차적인 의식양태를 발전시킨 데 비해 헵타포드외계인들은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고 한다.그래서 헵타포드들의 문자표기는 특별히 선호되는 어순이 없고 문장 어디에서 읽어도 마침내 다 뜻이 통하는 궁극의 이해법을 가진 도안과도 같은 체계라는 것이다.이것은 헵타포드외계인들의 의식의 기조가 지구인들과는 현격히 다른 물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한 의식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한다.일례를 들어 광선이 어떤 각도로 물을 만나고 굴절되는 현상이 있을 때 굴절류의 차이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꾸었다고 하면 인류의 관점이고 빛이 목적지에 도달한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면 헵타포드외계인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고 한다(아 어렵다!)완전히 다른 해석인데,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라고 한다.정말 놀랍지 않은가.우주를 둘러싼 세계관의 신세계적인 개벽이고 이 세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원리의 충격적인 파괴적 현현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테드 창의 이런 경이로운 지적 자극으로 나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진리의 또 다른 모습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은 현상학적으로밖에 경험할 수 없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인식을 가장 근원적이고 보편타당한 접근으로 가능하게 한다.그 인식의 명징한 선명함으로 인간은 자신의 의식에 덮인 무거운 장막을 걷어내고 비로소 자신이 속한 우주의 본질을 맛볼 수 있게 되는데.이 때의 인간은 신생의 존재로서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처음 비쳐본 어린아이처럼 경이에 휩싸여 존재계의 신비를 느낀다.내게 이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이감의 근원이었다.테드 창이 설계하고 축조한 이 거대하고 날카로운 사변의 건축물들 사이를 거닐면서 나는 내 오감의 통로가 열리고 미지의 신비,그 과학의 무한하고 불가사의한 깊이에 접촉하고 있음을 마치 전기에 감전되듯 지적인 전율로 떨었다.sf 소설은 어릴 적 초등학교 학급 문고를 읽고는 처음이었는데 테드 창이라는 놀랍도록 이지적이고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작가의 논리정연한 창조물에 매혹되어 숨을 죽인 채 그 현현의 일체를 절시했다.가장 지적이고 가장 학문적인 그 전시물들 앞에서 내 독서체험의 폭이 넓어졌음에 무한히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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