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

아버지를 발음할 때 나에게는 특별히 떠오르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없다

아버지는,나의 아버지이시고,그리고 말이 별로 없으며,나와는 데면데면한 그저 그런 사이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나와의 거리는 가까우나 멀고,경원하면서 소원했다

나는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무관심했고,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위치로 나와 거리를 유지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가장 까깝고 살가운 지정학적 위치는 그렇게 가족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껍질로 허울만 좋게 덮여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 것은

그날은 아버지가 밤이 늦도록 돌아 오시지 않았다

나는 그저 술이 또 취하셔서 늦게 돌아오시는구나 하며 별다른 신경조차 쓰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밤이 으슥하게 넘어가며 시계가 무겁게 움직이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들어 오시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 방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고 나를 보셨다

"아직 안 자냐?"

아버지의 얼굴은 붉게 술에 물들어 있었고 왠일인지 웃는 얼굴이었다

"너 좋아하는 치킨 사 가지고 왔다.어여 먹어라 ."

아버지는 다 식어 마늘 냄새가 연하고 어렴풋이 풍기는 양념 치킨 통닭을 내밀며 빙그레 웃으셨다

나는 당황했다

아버지가 양념치킨을 사오신 사실이 놀라웠던 것이다 사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치킨이든 족발이든 빈대떡이든 먹을 것을 사 가지고 오신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나 양념치킨은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기 양념치킨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나는 아버지에게 양념치킨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고 또 아버지와는 같이 치킨을 먹은 적도 없었다 아버지는 치킨이 싫다고 하시면서 내가 먹을 때마다 같이 드시지 않으셨던 것이다.그런 아버지가 어느샌가 나의 입맛을 알고 계셨고 기억까지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아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까지도 알고 계셨구나

나는 생각해보았다.'그런데 반대로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에 대해 알고 있는게 있나?아버지는 뭘 좋아하시지?'

이모 저모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아도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지 못했다.나는 아버지의 식성조차도 파악 못하는 말하자면 불효자식이었다.반면에 아버지는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을 손수 술이 취해서도 사 가지고 와 주시는 분이셨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뭔가 소화되지 않는 것이 목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것 같은 심정으로 아버지를 ,달리,그리고 찬찬히,조금은 유심히 관찰했다.아버지는 그러나 그 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여전히 말이 없는 사람이었고 적당히 어렵고 왠지 무덤덤한 사람이었다

별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한 내 시선이 특별한 점을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그 치킨일을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바라보던 나는 아버지의 숨겨져 있던 다른 면들을 하나 둘씩 발견하기 시작했다.아버지는 말이 없는 가운데 가족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잇었고 담백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중을 짐작해서 그 앞뒤를 미리 헤아리고 계셨다

이럴 수가.아버지의 재발견이었다

그랬다.아버지는 무덤덤한 거리를 둔 와중에도 남몰래 가족을 살피고 관찰하며 보이지 않는 애정의 손길로 가족들을 보살피고 계셨다

 

 

 

 

이런 아버지의 보이지 않고 소리없는 그러나 따뜻하고 두터운 애정을 나는 또 다시 한 번 목격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허삼관매혈기라는 소설을 읽을 때였다

허삼관매혈기는 내게 즐거운 책읽기라는 아주 오래전 즐거움을 서슴없이 선사한 책이었다

삶과 삶을 지탱하는 요소와의 관계가 과연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물으면서 그 독법의 하나로 자신의 존엄성의 정신적 등가물인 피를 파는 한 남자의 일생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인간은 무엇을 담보로 할 수 있는가?

과연 그 생존은 존엄성을 유지한 채로 인간다운 얼굴을 할 수 있는가?

허섬관은 피를 판다.허삼관이 가진 것은 붉은 주먹과 맨 몸과 이 세상과 맞서 싸울 용기뿐.그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허삼관은 몸의 붉고도 싱싱한 피를 뽑는다.그리고 그 붉고도 단 피는 허삼관이 이 풍진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화폐요 밥이 되어 허삼관을 살찌운다

난 허삼관이 피를 팔 때 '그래,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사는 거야.누구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전설 속 미녀와 연애도 했는데 피 좀 팔아서 결혼도 하고 그러는게 뭐가 나쁘겠어'하고 조금은 동정도 하고 약간은 동조도 하며 그의 매혈을 축하했다.

그러나 자꾸만 그의 피를 팔아 이어가는 삶이 계속되고 급기야 아들 일락이를 위해 피를 팔다가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는 혼미한 증세를 보이자 나는 이성복 시인이 말한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비릿하고 아리는 감정과 직면해야 했다.코 끝이 지끈하고 알싸한 슬픔으로 물들며 나는 허삼관이라는 사내의 넓고도 깊은 속내를 어느 새 느끼게 되었다

자신의 씨가 아니라서 아내를 제쳐두고 외도까지 난생 처음으로 하게 만들었던 남의 아들 일락.그 일락이를 위해서 허삼관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일락이의 목숨을 구할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그러나 일락이는 허삼관의 피가 아니다.그러나 허삼관은 친아들도 아닌 일락이를 위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피를 팔고 있는 것이다.누가 허삼관을 일락이의 의붓아버지라고 할 것인가? 읽으며 가슴에 더운 기운이 퍼져 나갔다.자신의 얼굴을 닮지 않고 아내의 옛 남자친구의 얼굴을 날이 갈수록 자꾸만 닮아가던 자신의 아들 아닌 아들을 보면서 급기야는 아내에 대한 복수심 비슷한 마음에 외도까지 하게 부추겼던 그 아들이 병으로 쓰러지게 되자 자신의 유일한 무기요 생존 보장의 능력 같던 절대물질인 피를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연거푸 뽑는 애끓는 기른 아버지로써의 부정을 보며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눈물겨운 인간미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화끈한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브라보 허삼관!허삼관 짱!!허삼관의 이런 따스하고 눈물나는 인간애가 바로 중국의 서민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었고 중국의 그 격랑같은 현대사의 묵직한 중압감을 버티고 짊어져 온 진정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섣부른 추측까지 하게 되었다.정녕 허삼관은 우리 이웃집의 아저씨였고 누군가의 아버지였다.허삼관이 존재하는 한 중국과 한국은 언어의 격차와 지리적 역사적 환경의 이질감에 상관없이 하나였고 동질한 느낌을 갖는 같은 나라였다

중국의 현대사는 질곡과 격동 파란과 변동으로 뒤범벅이 된 혼돈 그 자체였다.그런 시기를 인민의 보잘 것 없는 신분으로 아내와 자식들의 굳건한 방파제가 되어 지켜왔던 허삼관.허삼관은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었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이었으며 또 무엇보다 바람보다 먼저 피를 뽑아 자신의 생을 보존하는 풀이었다.웃느라 복통이 따를 정도로 재미있고 절묘한 그의 반생의 이야기가 어찌도 순박한 강인함으로 다가오는지 이 책의 탁월한 구성의 묘에 감동하게 된다

허삼관은 내가 아는 가장 순박한 민중이고 가장 평범한 시민이며 동시에 이것들을 합친 것보다 더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이라고 불릴 만한,미세하지만 특별하고 사소하지만 굉장한 존재이다.한 집의 가장으로 그리고 한 사람의 아버지로.

허삼관을 보면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된다.아버지들은 참으로 위대하구라고.

허삼관의 피를 판 부정을 보면서 피보다 더 진한 그 이름붙이기 어려운 그 무엇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있구나 하는 것을 공감했다.

그 곳엔 허삼관이라는 아버지가 있었다.못 먹고 못 배우고 못 살면서도 그러나 끝내 인간의 얼굴을 잃지 않는 허삼관.허삼관에게는 피라는 비밀 병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아름다운 재보를 가지고 있었다.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버지와 나를 생각해 보았다.

나의 아버지도 역시 허삼관 같은 아버지일까?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장차 앞으로 허삼관 같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아버지는 아마도 허삼관 같은,평범한 그러나 사람좋은 아버지일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 방식으로 삶을 완성할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고 그 길은 여러 길로 뻗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길이든 그 길은 인간이란 목표를 향해 가야 하고 인간의 마을을 경유해서 가야 하리라.

인간의,인간에 의한,인간을 위한 삶만이 다른 인간을 구원하는 한 줄기 빛살이 될 것이다.인간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빛 이 아름다운 가능성을 끄집어 내야 하고 살려야 인간의 사회는 존재의 당위성과 그 효용성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그 빛을 허삼관은 아들 아닌 아들 일락에게 단지 자신이 죽을 때 눈물이나 조금 흘려주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인간다운 양심을 가지고 살 것이라는 짤막한 당부로 가르쳐주었다.

 

 

 

피같은 세상에 피같은 웃음과 눈물같은 피를 먹여라!!! 누가 세상이 따스하고 아름다운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했는가! 자신의 존엄을 위해 자신의 생명의 일부인 피를 돈과 맞바꾸어야만 하는 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눈물나는 그래서 피같은 세상 !! 이 작품은 도처에 지뢰처럼 웃음을 매복시키고 불행한 삶을 애잔하게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초라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 들임으로 몸소 실감케 한다.누가 허삼관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인가!! 이 사회라는 곳에서 누구든지 소중한 것을 조금씩 혹은 많이,자주 또는 가끔씩이라는 차이가 있어도 다 자신의 몸 속 피 같은 가치들을 자발적 혹은 강요로 팔면서 생존하는 것이 이미 오래인 지금,허삼관의 이 유쾌 처량 황당한 매판인생담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 자신의 대체된 처지로 침투해왔다.눈물같은 인생 웃음같은 세상 피눈물같은 인간 사회에 즐거운 피를 수혈하라!!!허삼관에겐 아직도 150병의 싱싱하고 풍부한 피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