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꽃 한 송이 심고 - 온몸으로 쓰고 그린 40년의 일기
이한순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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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순 할머니 세상엔 참으로 많은 삶의 형태가 존재하죠 그들은 모두 다 각기 사연이 다르고 사연이 다른 만큼 그 종류가 다른 삶을 살아가죠 할머니의 사연을 처음 서울 방송의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에서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한 쪽 팔 전체와 한 쪽 다리 전체와 손 하나가 없는 중장애인이셨습니다 사지 가운데 온전한 것은 다리 하나였고 그나마 오른팔은 팔뚝만 겨우 있는 정도였고요..저는 멍하니 화면을 보았습니다 그 상황이 이상하게도 이심전심으로 저에게 상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남의 고통과 상황을 제 일처럼 여기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흔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무감각한 기분으로 풍경을 보듯 할머니의 사연과 일상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른팔과 얼굴 사이에 펜을 끼워 40년 동안이나 일기를 써 왔다는 대목에선 어떤 종류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내가 저렇게 손과 팔이 없었더라면 과연 나도 일기를 쓸 수 있을까? 한페이지 쓰는데도 저렇게 긴 시간과 큰 고통이 있는데도 40 년동안이나 질긴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니 저는 숙연해졌습니다 삶은 어느 순간에도 엄숙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존엄하다는 생각이 저의 뇌리를 지나갔습니다 삶의 궤도에서 보면 정상인과 크게 다른 할머니의 삶은 그러나 그 한계의 끄트머리에서도 자신의 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단단하고 치열한 삶의의지로 스스로의 궤도를 분명하고 신성하게 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지난 삶의 무게가 얼마나 지중하고도 압도적이었을지 저는 상상이 잘 안갑니다 아무리 제가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눈물이 흐를 정도로 공감을 한다고 하여도 정상인으로서의 알량한 동정심과 얕은 생각의 섣부른 건방짐에 가까울 테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할머니의 삶이 우리와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삶이 일반인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자체적으로 존엄하고 소중하듯이 우리의 삶도 장애와 그다지 떨어진 바 없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누구라도 만약 불행한 사고를 겪는다면 같은 처지가 될 거라는 하나의 생각이 저의 마음을 채웠습니다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장애인이 될 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장애인도 인간이듯 우리도 장애인입니다 언제든 그렇게 될 위험성이 잠재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같은 거지요

 

할머니의 지난했으리라 생각되는 삶을 저에게 살아가라고 한다면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아마 저 같으면 자살을 했겠지요 삶은 가끔 무서울 정도로 매정하여 돌팔매를 던집니다 그 돌팔매를 맞고 어떤 사람들은 쓰러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일어납니다 할머니에게도 어떤 운명의 돌팔매질이 가해진 것이 아닐까요 그 돌팔매질에 가슴을 온통 도려내셨을 할머니의 깊은 마음이 생각해보면 아득합니다 할머니의 심중을 가득 채웠던 그 어둡고 무거웠던 슬픔의 무게를 헤아릴 방법은 없겠지요 다만 자기 앞에 놓인 십자가는 오직 자기만이 짊어져야 한다는 자명하고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할머니와 다른 저 자신을 또 다시 돌아보며 과연 삶이란 또 고난과 고통이란 어떤 의미로 사람을 인도하고 위로하려 하는지 생각에 잠겨볼 뿐입니다 할머니 그 동안 얼마나 서러운 아픔을 꾹 꾹 담아 누르고 살아 오셨습니까 인생이란 이렇게 뜻하지 않는 슬픔을 겨우 참아가며 인내하는 것이라고 마음에 새겨 봅니다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것이 인생의 본래 목적은 아닐진대 어찌하여 삶의 고통은 이렇게도 길고 큰 것일까요

 

할머니가 차곡차곡 기록한 일기장 속에는 그 모든 슬픔과 기쁨 아픔과 고통이 고요히 숨을 쉬고 있겠지요 할머니의 지난 생애가 눈물 속에 깃들어 있는 일기장을 읽으며 저는 운명 속에 던져진 한 개인의 결단과 선택을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어느 상황 아래에서도 스스로의 독자적 고유함을 잃지 않는 한 아름답다고 말입니다 언젠가 저에게도 팔 다리를 잃은 것과 같은 아픔과 고토ㅇ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때 저도 할머니처럼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주체적 용기가 있을까요 할머니의 진솔하고 가식없는 일기장을 덮으며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 하나를 심사 숙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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