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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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것들을 기다린다 입학을 기다리고 방학을 기다리며 졸업을 고대하며 취직을 애타게 기대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며 낭보와 기쁜 소식을 기다리다 종내에는 두렵고 무섭기만한 죽음마저도 노인의 당연한 권리로 기다린다 어찌보면 인생이란 기다림의 연속이며 기다림을 생성하는 과정 속에 인생의 모든 일들이 진행되어 사건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기다림은 쓰라리고 비참한 눈물로 젖을 수도 있고,혹은 참혹한 절망으로 기다림이 귀결을 맺을 수도 있다 어찌 기다림이 인생의 하찮고 시시한 소사일수 있으랴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시인의 애잔한 토로가 아니더라도 기다림은 인간에게 공평하고 정대한 혜택을 주지 않는 매정한 집행자이다 이 기다림이 길면 길수록 그에 비례해 소망과 의지는 숭고한 옷이 덧씌워져 비상하거나 반대로 시간의 손길을 받아 결부된 욕망과 감정은 비천하고 남루한 기억의 저 편으로 방치되기 마련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쿵린은 18년 동안이나 아내와 이혼하는 날만을 기다려 왔다 아내와 이혼을 하고 연인인 만나와 재혼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18년 동안이라는 장구하고 머나 먼 시간의 기간은 그의 무기력함과 우유부단과 실속없이 선하기만 자신의 성격과 막상 그럼에도 아내와 헤어지려는 이기심이 충돌해 빚어낸 엉거주츰한 시간의 낭비일 뿐으로 실상은 오랜 시간 학수고대 기다려온 애절함이라든가 간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만나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헌신적인 아내를 버리려는 것에 대해 마음의 갈등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욕망을 따르자니 이혼에 회의적인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아내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며 그렇다고 자신의 간정을 바꾸어 결혼을 지속할 만한 용기나 희생정신이 없다 쿵린은 번민한다 부모님의 명으로 한 결혼을 깨자니 이혼허가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힘겹게 구속하고,사랑하는 만나를 포기하자니 결단력이 없어 사랑을 접지도 못한다 그저 쿵린은 18년이라는 별거 기간을 채우면 자동적인 이혼이 가능하기에 그 날만을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무력화된 욕망의 수동적인 저항이자  운명에의 체념처럼 반쯤은 투항 반쯤은 방관으로 이 기다림의 끝에는 종국의 해결이 멀리 아주 멀리 존재하는 듯하다 그리고 쿵린은 소극적이고 자포자기적인 기다림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모든 고민을 해결하려 한 듯하다 그러나 쿵린은 자신의 마음과 욕망을 스스로 인식하고 통제하는 주체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기다림을 통한 해결은 쿵린의 마음에 온전한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시간의 물결에 따라 연인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쿵린은 존재의 변화하는 습성에 따라 마음에 조금씩 변화를 겪기 시작하는데 이는 쿵린이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며 행동을 현실로 옮기지 못하는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아내와의 이혼과 만나와의 결혼을 이루었음에도 진정한 행복에 이르지 못한 쿵린 이제 쿵린은 사랑이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더구나 만나는 곧 죽는다 쿵린은 아이러니하게도 18년의 기다림으로 이혼을 얻자 이제는 사랑의 열정보다도 마음의 평화라는 가정의 울타리안의 일상의 행복을 얻고 싶어한다 비로소 아내가 얼마나 좋은 양처인지 후회하며 아내에게 사과를 하는 쿵린 . 인생의 행복을 찾아 사랑을 매개로 하여 얻으려 하였으나 결국은 평화로운 가정을 택하고픈 쿵린의 긴 여정 끝의 마음의 변화가 안타깝다 과연 사람은 자신의 인생 안에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평화와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 .....쿵린은 그 답을 구하기 위해 기나 긴 기다림으로 자신의 생을 소비했고 결국 사랑도 얻지 못하고 그토록 자신이 떠나려 했던 아내에게 되돌아가려 한다 이런 역설적이고 혼란스러운 이치가 인생의 단순하고도 자명한 법칙이라는 것인지 작가는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아내에 대한 귀환으로 사랑의 기쁨을 충족하던 세월을 대신하려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인생이란 그토록 원하는 것을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려 와도 결국은 허망하다는생각에 깊은 생각에 잠겨야 했다 이럴거라면 뭣때문에 18년동안 매해 이혼청원을 하며 고생을 해야 했단 말인가 손에 쥐어지지 않는 행복을 쫓아가며 겨우 손에 넣었더니 손에 넣기 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이 안타까운 역설 과연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그 긴 기다림은 쿵린에게 만나에게 그리고 또 쿵린의 아내 수위에게 무슨 의미를 띄고 무엇으로 대체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까운 결론이 아닐 수 없고 허망한 종국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랑은 쿵린에게 기쁨을 주었으나 기다림의 끝에 마주한 그 감정은 낡고 남루해졌고 진정한 행복은 아니었다 여기서 나는 상상해본다 쿵린이 아내를 버리려 하지 않고 아내와 잘 살았다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쿵린은 아내에게 만족하며 가정의 평화에 감사했을까?.......그것도 아닐 것이다 쿵린은 아마도 아내를 잃어버리고 연인 만나와의 결혼에 염증을 겪어야만 아내의 소중함을 통감했을 것이다 쿵린은 인생의 역설적인 함정을 몰랐고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에는 너무 성찰이 부족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쿵린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모두 쿵린처럼 아니 쿵린보다 더 이기적이고 욕망에 힘쓰며 자신의 안락을 꿈꾸지 않던가......

쿵린의 기나 긴 기다림은 그렇다면 허비된 무용한 시간이었을까?........아닐 것이다 오직 시간이 흘러 경험된 과거로써만이 쿵린의 감정과 고뇌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쿵린은 기다림의 끝에서만 자신의 감정의 실체를 알 수 있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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