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cm로 싸우는 사람 -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 50년 이야기
박영춘.김정윤 지음 / 몽스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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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0.1cm로 싸우는사람 소개 시켜 드리도록 할게요 ~ ♡

중고등학교 때 사용했던 바른손 팬시의 문구들과 손글씨로 많이 썼던 바른손카드의 추억을 떠올리며, 바른손카드의 탄생 스토리부터 ~ 2세대가 경영하고 있는 바른 컴퍼니, 아트프린팅 기업 비핸즈, 중국 상하이 법인 위시메이드 이야기 등 ~

책 한 권 속에 50년 긴 세월 속~ 기업경영을 하며 파란만장했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순 없었겠지만 ~ 이 책 한 권을 통해 바른손 창업주 박영춘 회장의 열정을 다한 50년 경영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던 거 같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 창업주 박영춘.

1939년 강원도 춘천 출생으로 올해 80세,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1968년 을지로에서 사물실 한 귀퉁이를 빌려 금속으로 조각하는 일을 시작으로 디자인 카드를 선보이며 시장을 석권했으나, 두 번의 부도를 맞고도 끊임없는 도약을 시도한다. 현재는 박 회장의 자녀들에게 경영을 모두 물려주고, 강원도 인제의 산속에 집을 짓고 자연과 호흡하며 조용히 살고 있는 박영춘 회장.

생생한 바른손 50년 스토리를 듣기 위해 박영춘 회장와 수십 시간의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이 책의 저자 김정윤. '디자인 중심 경영'에 대한 이슈가 전 세계적으로 부각될 무렵, 국내 최초의 디자인 기업 바른손 박영춘 회장의 스토리를 접하고 1세대 경영자 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기에 디자인 창업스토리와 50년 경영 철학은 기록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 인터뷰 외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책 속내용.

 

 

Prologue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당신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 이런 기술을 사용했어요" '소비자 경험이 기술을 우선한다'라는 새로운 경향은 IT업계에 전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바로 디자이너 창업자의 대두이다.

국내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정보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에 이미지와 함

께 유통되면서 디자인을 중시하는 경향은 더욱 강화됐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 카카오 조수용 공동 대표이사, 뱅크 샐러드 박지수 등 미적 경험을 이해한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느덧 경영자가 미적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기업 성패의 결정적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바른손의 광고 포스터를 살펴보면 바른손이 디자인을 어떻게 다뤘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 포스터에는 '21세기 아이들은 디자인을 먹고 삽니다'라는 헤드 카피와 함께 팬톤사의 컬러 칩을 스푼으로 떠먹는 장면이 담겨 있다.

1974년 일본의 팬시 업체인 산리오의 '헬로키티'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세계 곳곳의 문구 산업을 장악해 갔지만 일본과 바로 이웃한 우리나라에는 진입하지 못했던 것은 바른손을 필두로 한국의 문구 산업이 이미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바른손 신화의 한가운데에는 창업주인 박영춘 회장이 있다. 파킨슨 증후군으로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동안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바른손과 함께한 50년 모험 이야기를 들려줬다.

 

 

"꿈같이 했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 처하며 자기 자신을 열정적으로 쏟아부었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Ⅰ최초의 입체 디자인 카드, 1970년의 바른손카드

 

 

남다른 시도로 업계의 입소문을 타라

박영춘 회장이 카드 업계 데뷔 첫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게 된 비결은 남다른 금속 조각 기술 덕분이었다. 예술과 기술의 조합은 실리콘 밸리에서도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지 『앙트레프레너』에서 세계 100대 부자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트렌드를 남들보다 일찍 파악했다는 것이다. 박영춘 회장은 디자인 카드로 사람ㄷ르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성공 데이터를 풍부히 가지고 있었기에 발 빠르게 방향을 전환해 새로운 비전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디자인'으로 미래 사업 비전을 정한 그는 기존 바른손카드와 함께 새로운 사업 부서인 바른손팬시를 구상하고 본격적으로 산업 디자이너들을 영입해 디자인 파트를 보강하기 시작했다. 전혀 새로운 분야, 전혀 새로운 시스템, 전혀 새로운 목적으로 무장한 바른손 팬시는 1983년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 Interview1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 1993년 대전엑스포 꿈돌이를 디자인한 대한민국 대표 산업 디자이너 겸 바른손의 디자인 컨설팅 파트너로써 바른손 박영춘 회자와 40여 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김현은 바른손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체 디자인을 가지고 제작에서 유통까지 총괄했기 때문이며, 마감뿐만 아니라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 경영자로서의 자질까지 갖추었던 박 회장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Ⅱ 최초의 디자인 벤처, 1983년의 바른손

 

 

박영춘 회장은 자사 디자이너들이 더 발전된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경험한 것들이 바른손팬시 디자인 상품의 경쟁력이 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조수용 대표는 "멋진 브랜드는 내가 깊이 좋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다. 결국 내가 좋았던 경험이 브랜드의 지향점이 된다는 것이다. 박영춘 회장은 스스로도 경험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런 경험의 결과물로 사람들이 열광하는 상품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 바가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다양한 경험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다.

카카오의 조수용 공동 대표는 크리에이티브 한 사람이란 "나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사업을 시작할까 고민된다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일 것이다. 내가 가슴 뛰는 일,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 열광할 것이다.

박영춘 회장은 트렌드를 감지하는 능력이 거의 동물적으로 발달해서 다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실무자보다도 제일 정확하게 알았다. 프로디자이너보다 더 예리하고 정확하게 디자인을 짚어내고, 섬세하게 수정을 지시하는 감각이 놀라운 수준이었다고 한다. '어떤 디자인의 상품을 얼마에 팔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박 회장은 디자인과 가격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박 회장은 늘 지금 당장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다음을 준비했다. 늘 지금 내 삶에서 가슴 뛰게 하는 것을 기준점으로 삼고 그 범위 안에서 차곡차곡 새로운 시도를 해나갔다.

새로운 계획은 새로운 경험과 배움에서 나온다. 일등 기업일수록 끊임 업신 새롭게 배우고 경험해야 하는 이유다. 자신은 물론이고 바른손의 디자이너, 영업인력까지 끊임없이 해외 출장을 다니며 박람회에서 산업계의 최신 경향을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영감을 얻도록 했다.

박 회장 스스로도 감각을 기르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주일 한 번씩 이대 앞 스튜디오에서 사내 디자이너들과 함께 크로키를 직접 그렸다. 책을 많이 읽고 독서모임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는 일을 꾸준히 했다. 관심 있는 저자의 강의도 챙겨서 들으며 항상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는 박영춘 회장을 '0,1cm로 싸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과 집념이 남달랐던 그는 일반인은 쉽게 지나칠 작은 실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박영춘 회장 그리고 바른손 120여 명의 디자이너는 20년 가까이 그런 꾸준함과 완벽주의로 대한민국 대중의 디자인 기준을 한 단계 높이는데 성공했다.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는 "박영춘 회장은 1980년대 보기 드문 '파티 메이커'였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기획한 시퀀스대로 다른 사람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를 즐겼다. 내가 하는 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도구로 삼지 않고 만남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박 회장의 행보는 스스로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했다.

박영춘 회장은 특히 최초의 한국 전통 캐릭터인 '금다래 신머루'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품고 있던 그는 한국적인 동양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민화를 수집해 왔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박 회장의 자부심은 곧 한국적인 캐릭터, 한국적인 색채, 한국적인 선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상품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 Interview2

 

 

『월간 디자인』,『행복이 가득한 집』,『맘&앙팡』등을 발행하는 매거진 기업 디자인하우스의 수장이면서 지난 40년간 한국 디자인 역사의 중심에 있어온 인물인 이영혜 대표는 1980년 『월간디자인』창간 초기에 바른손 박영춘 회장과 인터뷰하면서 인연을 맺어 평생 친구가 되었다. 그는 박 회장이 집요하게 다니고, 사보고 써본 사람이며, 그런 풍부한 경험 덕분에 남다른 안목을 가지게 됐다고 말하며, 살면서 많이 다니고 써보고 사보고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Ⅲ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에어비앤비의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조 게비아는 실패를 '멋진 배움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하버드대 경영학과에는 '실패 101'이라는 수업이 있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학기 중에 세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세 번의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들은 매번 실패를 통해 미래 성공의 씨앗이 되는 교훈을 배우도록 교육받는다.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성공이란 한 번 실패를 하더라도 열정을 잃지 않고 다른 실패를 무릅쓸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바른손의 박영춘 회장 역시 50년간 사업을 해오면서 많은 역경과 위기를 맞았지만, 그에게 실패는 반드시 새로운 성공의 열쇠가 되곤 했다.

바른손이 가장 활황이었던 1997년 즈음에는 직원 규모가 300명에 이르고 꼬마또래, 팬시 가든, 크리아트, 컨츄리하우스, 실용선언 등 자체 브랜드 대여섯 개가 사랑받고 있었다. 방배동에 신축한 바른손 사옥은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김수근 문화상을 탔고, 건축학도의 필수 답사 코스가 될 정도 유명해졌으나, 1997년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1998년 바른손팬시는 1981년 바른손 카드 첫 번째 부도 이후, 두 번째 부도를 맞는다.

세계적인 트렌드를 먼저 캐치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겨냥한 시장의 니즈가 얼마나 무르익었는가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시장의 니즈와 반보 앞선 트렌드 사이를 오가는 타이밍 게임이 기업 경영의 핵심이다. 결국 사업의 성패는 내가 다른 업체보다 얼마나 잘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시장의 흐름을 탔느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장의 변화에 맞춰서 얼마나 나를 기민하게 바꾸느냐가 관건인다. ​

♥ Interview3

 

 

공채 1기로 입사해 11년간 영업, 총무, 마케팅 등 여러 부서를 거치며 명실상부 '바른손팬시의 에이스'로 박 회장으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현재 박병순 홈스마일 대표는 박 회장님은 참 기업가였고, 좋은 생각이 좋은 사업을 만든다는 경영 철학을 그대로 실천하신 분이라고 회상한다.

Ⅳ 중국 진출,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

버티는 자가 이기는 자

누구나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중국의 경영 환경. 박영춘 회장은 그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최근 바른손카드 상하이 법인을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말처럼, 중국 시장에 진출한 지 17년 만에 비로소 바른손카드 상하이 법인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카드와 생활용품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사람들의 일상을 더욱 다채롭게 했던 박영춘 회장이 내놓은 현업에서의 마지막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아트 프린팅 사업으로 귀결됐다. 카드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미술 작품을 좀 더 가깝게 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하는 일이다. 지금은 박 회장의 장녀인 박소연 대표가 아트 프린트를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사이트 그림닷컴, 한정판 에디션 작품을 판매하는 아트앤에디션을 운영하는 비핸즈의 수장으로 아트 프린팅 사업을 이끌고 있다.

카카오, NHN, 삼성전자 등 IT기업의 컨설턴트 김창준 대표는 저서 『함께 자라기 』에서 21세기 전문가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는 커뮤니케이션과 협업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디자인, IT 기술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기업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회장은 가업을 이어 바른 컴퍼니와 비핸즈를 이끌고 있는 자녀들이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나가길 바란다.

요즘 그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챙기며 순간을 사는 것도 가치 있는 인생일 수 있었겠다고 말한다.

올해 80세. 산수 傘壽 그는 여전히 새로워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 Interview4

 

 

바른손팬시에서 디자인 책임자로 14년간 일했던 신순규 이사는 박 회장의 단호한 트레이닝을 버텨낸 신 이사는 긴 세월 동안 호된 질책을 견디며 더욱 강해졌고 박 회장을 닮아갔다.

"회장님한테 많이 혼나면서 기획을 배웠어요. 어떤 가격에 대해 어떤 상품을 만들 것인가 기획하는 것,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거든요. 가르칠 때는 정말 단호하고 인정사정이 없으세요. 또 각자 그린 디자인 시안을 프레젠테이션 하면 팀원들이 너무나 솔직하게 피드백 하는 문화가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깨고 성장하길 바라셨어요. 어린 판다가 나무에 올라가면 엄마 판다가 밑에서 나무를 흔드는 것처럼 말이죠. 10명 중 9명이 다 떨어지는데 살아남은 한 사람만 올리셨어요. 독특한 방법으로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을 키워내셨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회장님의 의도를 점차 이해하게 됐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점점 그분을 닮아갔어요."

이 책을 통해 전직 월간지 기자답게 바른손과 인연이 있는 네 명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서도 박 회장의 경영철학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을뿐더러, 사업을 함에 있어 시장의 니즈와 반보 앞선 트렌드 사이를 오가는 타이밍 게임이라는 기업경영 핵심과 시장의 변화, 트렌드를 읽어내는 힘, 그리고 좋은 생각이 좋은 사업을 만든다는 경영철학, 무엇보다도 경험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삶은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요즘 일본 경제보복으로 일본 불매운동이 확산되는 시점에서 0.1cm로 싸우는 사람 바른손 '50년 이야기'가 는 우리 국민들이 꼭 기억해야할 이야기로, 일본산 문구류가 아닌 Made in Korea 우리 나라 문구류를 더욱 사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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