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기억의 시간은 점점 줄어만 간다. 어젯밤 아파트 주차장 어디 구역에 내 차를 모셨는지 잠시 생각해야 기억이 날 정도인 요즘엔 옛날 일 들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스토리가 입혀지고 감정이 이입되어 재미나게 풀어내면 우리는 그들을 이야기 꾼 이라고도 부른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삶 속에서 겪어냈던 일들을 글로 말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 글을 생업으로 하시는 분답게 듣는 것 이상으로 훨씬 입체감이 있다. 즐겨 들었던 음악 속에서 읽었던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영화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살았던 달 동네의 풍경과, 출근하면서 보았던 장면들처럼 아주 사소 한 것들 마저도 이분의 손을 거치니 재미난 이야기가 되고 스토리가 된다. 글로 쓰여지니 아름답기까지 하다.

멋진 책과 영화를 보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책 집사로 살고 싶은 건 나 자신인지도 모르겠어요. 피로한 얼굴로 찾아온 누군가에게 높은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 먼지 쌓인 책 한 권을 꺼내 주며 ' 자, 여기 267페이지. 말씀하신 호숫가 벤치에서 한나절 쉬었다 가시기 바랍니다.'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책을 읽지 않고 살아도 아무런 무리가 없고 어떤 이들은 소설을 읽는 건 시간 낭비 같다고도 말하지만, 저는 소설을 읽지 않으면 한 겹의 인생을, 읽으면 여러 겹의 인생을 살게 될 것만 같습니다. 여러 겹의 생을 살아보는 일. 그건 세상에 나그네처럼 머물렀다 갈 사람들이 저마다 가질 수 있는 '나의 부피' 일 겁니다 p326

단편적인 일상사를 글로서 3차원의 세계로 안내한다고나 할까? 저자보다는 살아온 인생이 더 많고 경험치 또한 많을 텐데 내게는 왜 스토리를 엮어낼 재주가 없는 것인가...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든다. ^^ 글을 쓰는 사람이니 당연히 그렇겠지라고 치부하기엔 기억의 파편들이 너무나 세밀하고 미려하다. 짐작하건대 저자는 지독한 메모광이거나 사색가이다. 반복적이고 무의미하기까지 한 우리네 일상을 세세히 기억하고 다시 돌아보며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오늘의 부피가 한 사람에게 포개지는 날짜의 순환이라면, 그날 다들 어디 있었을까 하는 질문은 곳곳에 흩어져 사는 이들이 겪은 시간의 총합적 부피일 거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떤 부피를 쌓아간다고 생각하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이번 생이 조금은 덜 외롭다. p76

작가는 대학 졸업 뒤 10여 년간 쪽잠 자며 문장 노동자 생활을 했다. 라디오 작가와 출판 편집자, 카피라이터…등 평범치 않았던 세월의 무게 속에서 그녀만의 문장과 사색이 훈련됐을듯하다. 홀로 쪽잠 자며 지새웠던 10여 년의 밤이 오늘의 밤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라고. 그녀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밤"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어렵고 힘든 세상 살이지만 살아갈 이유가 보입니다.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네 인생은 한 겹의 생이 아닌 두 겹 세 겹의 인생임을 확인하실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