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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재다
다니엘 켈만 지음, 박계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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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켈만,
아주 낯선 독일 작가.
요즘 나는 낯선 작가들에게 굉장히 호의적이다. 모험심이 강한 것도 아닌데, 성큼 집어서 잘도 읽는다.
작가 소개 보다가 멍해졌다. 이 사람 같은 세대 사람이다. 이름 뒤에 붙어있는 이력이 그저 화려할 뿐이다.
지구촌에서 어떤 사람은 캉디드상, 아데나우어 기금문학상, 클라이스트상, 또 다른 문학상 이제는 상 이름도 어려워서 적기가 귀찮네. 거기다 2005년에는 올해의 작가, 올해의 책, 타임지가 선정한 2006년 전 세계 10대 소설이란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전 세계인이 읽어야 할 소설의 기준은 뭘까. 그래서 책이 더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그 세계인 무리에 든 나도 읽어야 하는 책인지.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구성이다.

 


두 주인공 가우스와 홈볼트 의 만남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과거로의 여행을 출발한다. 각 장마다 따로 이야기가 묶여지고 이 두 사람이 첫 만남을 가지는 부분은 5번째 [수]이다. [수]는 가우스 이야기로 이때 둘은 잡지를 통해서 연결점을 갖는다. 재밌고 독특하다.

이런 구성은 배워볼 만 해. 장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뀌는 거지.
문체도 특이하고. 따옴표라는 것이 없다. 그냥 줄글. 이런 대화체는 처음이다. 그런 신선함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간접화법이 우리 글에서도 가능한 건가. 따라해보고 싶기도 했다. 개성 넘치는 문체와 독특한 구성을 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지구의 발전과정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수 83 페이지 -  사람들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사람들은 생각 자체를 닫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가우스의 눈으로 보여준다.

나도 그런걸까. 변화하려고, 진화하려고, 지금과 다른 나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걸까.

가우스보다 몇 백 년 뒤에 사는 내 일상은 가우스가 그토록 바랬던 일상이다.
가우스는 언제나 말했다. 그런 날이 올거라고. 그는 의사가 있는 시대에 태어날 수 있다면 영혼도 바꾸고 싶다고 했던 거 같은데. 치통의 고통 속에서 그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훔볼트.
정말 독일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치만 이런 평가는 너무 감상적으로 치우친 면이다. 내가 독일사람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특성을 알만큼 연구자료를 찾아본 것도 아니니. 일반화의 오류로 빠지고 싶지는 않다.
그치만 아, 일식을 보지 않고 육분의를 붙잡고 있던 그를 보며 딱 독일인라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같이 다닌 봉플랑이 그랬다.
'그렇게 항상 독일 사람답게만 행동해야 되는 겁니까?'
아, 내 입에서도 같은 말이 튕겨나왔다.
하지만 그의 원칙과 절제가 무서우리만치 존경스럽다.  

독일작가인 게 맘에 들었고. 탐험가이면서 수학자이면서 물리학자이면서 모든 학문에 정말 미친 두 기인이 맘에 들었다.
수학과 물리라.

아마 글로 써놓으면 절대로 이해 못할 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이 책을 펼쳤다.
이해 못할 공식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들은 여전히 많았다.

정말 재밌다.
하지만 이 재미는 보통 때 내가 느끼는 책의 즐거움과는 조금 다르다. 아마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 텐데.
이 책 서평에 유머가 빠지지 않는 것을 봤다. 하지만 이 유머가 유럽식인가 싶더라. 웃긴데 웃기지 않는 특이한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구성!!!
참신하고 개성적인 매력이 아주 뛰어났다.

노년의 두 학자가 만나는 시점을 시작으로 그들의 과거를 장별로 구성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렇게 다시 노년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시간적 구성으로 친절히 해놓은 것은 아니다. 구성에서도 비약이 많았고. 그런 면이 지루함을 덜 주었다고 여긴다.

천재적인 탐험가와 수학자를 모델로 삼아 하나씩 잠자고 있던 원리와 법칙으로 변화와 발전을 이루는 족적들이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있다. 아, 뫼비우스도 책 속에 나왔다. 유명한 사람은 한 사람씩 다 나오더라. 낯익은 이름의 재미도 좋았다.

지적이 호기심, 지적인 허영심을 묘하게 묶어주는 듯 보인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나의 모습일까. 하지만 내 인내력 테스트도 무지 많이 시킨 책이다.

별들 - 가우스
이 편에서 가우스는 외교관이자 언어학자인 홈볼트의 형을 만난다. 언어학을 확 무시해 그를 있는 대로 기분 나쁘게 만들지만. 수학자의 이 오만함에 나도 코웃음을 한번 날려줬다.
언어학이 뭐라고?
'언어학은 수학에 필요한 꼼꼼함을 갖추었지만 지능은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논리라도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내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요.' 라고 했다. 
그리고 아내 요하나가 죽었다.
아, 사람에게 이성만이 아니라 감정이 있음을 감사하라.
슬픔도 수학 속에 있는 이 사람 - 공감은 안 가도 한편으론 가엾기도 하다. 

훔볼트는 독특하고 기이한 남자였고, 가우스는 특이한데 이기적인 남자의 전형성이 많았다.
가우스는 훌륭한 수학자이자 천재이긴 하지만 인간으로는 매력없다. 하지만 그의 열기와 끈기는 이래서 학자구나 싶은 집착이 있다. 그랬기에 그가 가고자 한 길에서 결과를 얻었을 수 있었다.

두 학자의 공통점은 포기와 집착이다. 즉 포기는 없고 집착만 있다.

자신의 길에 대한 어마어마한 열정과 탐험심과 호기심과 꿋꿋함이 포기를 생각지도 않게 한다. 집착이란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성향이 아니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접착제 처럼 집착은 두 학자가 자신의 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었다.

집착이 없었다면 이 길이 가능했을까.

훔볼트가 형에게 했던 말!
- 운명이란 건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어떤 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결정하면 언젠가는 그것이 정말 운명이었다고 믿게 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일들도 많아서 억지로 운명이라고 믿었던 것에 끼워 맞춰어야만 하지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결국 운명이란 말도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고 개인이 원하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이다.

훔볼트와 가우스의 대화

그렇다면 학문은 도대체 뭡니까? 가우스는 파이프를 빨았다. 홀로 책상에 앉은 한 남자.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때에 따라서는 망원경을 가지고 맑은 하늘이 보이는 창문의 앞에 서는 남자. 이 남자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마도 학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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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고려왕조실록 -상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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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조실록을 책으로 완독한 것은 두 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의 주인공인 왕들이 낯설지가 않다. 그렇지만 세세한 내용은 언제나 그렇듯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이 책 덕분에 고려시대 여행을 잘 마치고 왔다. 

각 시대의 왕들이 어떤 시기에 살았으며, 그들이 행했던 정치적 선택은 뭐였는지, [고려]라는 국명 아래에서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해하며 읽었다.

역사를 좋아한다. 그 거대한 시간의 기록을 좋아한다.
옛 일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들, 옛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좋아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언제나 한 길이었다. 지구가 돌고 도는 원칙을 버리지 않는 한은 과거에서 걸어온 길이 현재가 되는 것이다.

소소한 일상상에 묻혀 그 고단함에 지칠 때는 길고도 긴 역사의 흐름이 위로가 될 때도 있다. 한 달, 1 년, 10 년, 하물며 우리에게 아주 긴 백 년도 역사 앞에서는 한 토막의 나무조각 정도일 테니까. 

이 책은 내가 교과서에나 봤던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그와 관련된 부분은 앞쪽에 부록으로 설명되어 있어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고려왕실 세계도, 고려 34대 왕들의 기록, 고려시대 능의 위치까지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책보다 많은 정보를 준다.
본문 내용은 각 왕들과 주요 사건 그리고 왕실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제목에 맞춰 단락별로 서술되어 있어 읽는 사람에게 부담이 없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부록이다.
각 왕들의 시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노력을 했었는지, 어떻게 쇠약해지는 지도 충분히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부록이다.

상-하권은 한국사와 주변정세가 잘 정리되어있다. 
이제껏 역사서를 볼 때 우리나라 역사의 정세는 알 수 있지만 그 시대에 세계의 흐름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궁금했지만 혼자서 각 시대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는데 이 책이 그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권은 우리나라의 연호, 고려시대의 관작 변천, 고려 시대 관직, 관청, 군사제도, 지명변천 등 표로 정리했다.

이제껏 왕조에 대한 정보는 많았지만 기타 다양한 문헌 자료들은 만나기 어려운데, 이 책은 그런 부분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
그래서 좀 더 넓게 고려를 보고 온 기분이다.

표지도 깔끔하고 속지도 좋아 넘기기에 참 부드럽다.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누구나 읽도록 준비된 책이다.

역사라는 단어가 딱딱하고 지루하고 어려울 거라 오해를 가끔 받지만 이 책에서 만큼은 그런 말들은 불필요하다. 
또다른 고려를 즐겁게 만나고 온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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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
수산나 타마로 지음, 최정화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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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면서 큰 고개를 넘을 때가 있다.
익숙하지 않는 변화에 놀라고 고통스러워하며 그 길을 걸어야 할 때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긴 이별은 대지진 같은 충격을 준다.
마치 내 인생에 새 지도가 하나 생기는 듯한 그런 기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서 대륙의 지도가 바뀌듯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 앞에서 사람의 지도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과 죽음.

예전에는 그저 글자에 지나지 않을 원론적인 지식이 지금은 생생하게 그 의미의 무게를 안다.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지는 인간사의 순리를 알고 난 후부터 부쩍 마지막 인사를 많이 듣고 보고 느낀다.
마지막 앞에서 전해주는 순백의 진실에 기대고 싶은 모양이다.

이 책은 갈등이라는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누구나 겪는 인생의 어려운 단면들.
서로의 마음과는 달리 우리는 참 쉽게 가족에게 생채기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그렇지만 또 끊어지지 않는 고리 또한 만난다.
할머니가 쓰기 시작한 글. 그건 사랑이다.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고, 잊는다고 잊혀지지 않는 게 가족이니까.
그러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왜 싸우느냐가 아니라, 싸우고 난 후 어떻게 화해하는냐 이다.

죽음 앞에 둔 사람들의 내면은 어떤 곳일까.
천천히 읽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11월 17일
나는 지금 부엌에 앉아 네가 쓰던 낡은 연습장을 펼친다.
유언장을 쓰는 거냐고? 그건 아니야.
내가 필요할 때마다 네가 꺼낼 볼 수 있는,
몇 년이 지나도 네 곁에 머물 수 있는 글을 쓰려 한단다.
 
11월 18일
난 시간은 낭비해도 상관없다고,
인생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라 활쏘기 게임 같은 거라고
대답해 주었지. 중요한 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과녁의 중앙을 맞힐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11월 20일
성모 마리아 승천 축일날 밤,
바다 위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갔던 일 생각나니?
내가 아는 많은 여자들의 삶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그런 거란다. 하늘 높이 올라가지도 못하고
낮은 데서 칙 하며 꺼져버리는 불꽃.

11월 21일
'뱀 사다리' 게임 알지? 주사위를 던져서
뱀 자리에 가면 내려가야 하고, 사다리 자리에 가면 올라가는 게임 말이다.
인생도 그와 비슷하게 전개된단다.
올라가기도 했다가 다시 밑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뭔가를 이루기도 했다가 다 잃어버리기도 하고
 
11월 22일
강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돼.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하지.
남들이 전혀 모르는 깊숙한 비밀까지도.
하지만 삶은 온갖 사건들의 연속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거기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강해질 수 있다는 걸까. 

11월 29일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일상 속에 있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복잡한 생각들을 버리고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부터 출발하면 돼.
진정한 내 것이 아닌 것들, 외부에서 들어온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면 넌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11월 30일
그 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 아주 따뜻하고 행복 가득한 웃음이었지.
그래. 한 번이라도 행복했던 적이 있다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어.
그 어린아이에서부터 다시 한 번 삶을 시작해 보는 거야.
 
12월 1일
과거의 잘못이나 거짓말로부터 완전히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해.
한동한 피할 순 있지만 언젠가 다시 튀어나오게 마련이고
그땐 손을 쓸 수도 없이 큰 해를 입게 되지.
우리가 피하고 있는 동안,
과거의 거짓말들은 흉포한 괴물로 변해 버리거든.

12월 4일
운명은 때로 우리 자신보다 상상력이 풍부하지.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다고 생각될 때, 가장 깊이 절망했다고 느낄 때,
모든 것이 동상처럼 빠르게 변해 버리거든.
모든 것이 뒤집히고, 우리 앞엔 새로운 삶이 펼쳐진단다.
 
12월 10일
난 내 몸과 마음 사이에 무수히 작은 창문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단다.
그 창문들이 열리면 감정들이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고,
창문이 닫히면 감정들이 더 이상 흐르지 못하지.
사랑만이 그 문들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어.
거세게 부는 바람처럼 말이야.
 
12월 12일
그노티 세아우톤,
소녀 시절, 그리스어 공책 첫 페이지에 이런 말을 써 놓았었지.
내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그 말이 갑자기 생각났어.
너 자신을 알라.
아, 이 공기.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어.
 
12월 16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저마다 의미가 있어.
우연한 만남들. 사소한 사건들까지도 말이야.
계절이 바뀌면 허물을 벗는 도마뱀처럼 과감히
변신할 수도 있어야지. 그래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단단.
 
12월 20일
어떤 날은 인간이 그저  뛰어난 원숭이에 불과해 보이지.
그런데 어떤 날에는 이제 좋지 않은 날들은 다 지나고,
마침내 고귀한 인간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어느 쪽이 맞는 걸까? 글쎄. 둘 다 틀렸을 수도 있지.
 
12월 21일
물론 내가 너보다 먼저 세상을 뜨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 없다고 해도, 난 네 안에서,
네 행복한 기억 안에서 살아 있을 거야.
넌 나무랑 채소들이랑 꽃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 수 있을 거야.
내 안락의자에 앉을 때도 그렇겠지. 

12월 22일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
의심하지 말고 깊은 심호흡을 해 봐.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또 기다려. 네 마음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 말을 하거든,
그때 일어나 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할머니가 손녀에게 해주는 이야기이고, 우리에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나중에 나이를 들어 할머니가 된다면 내가 남길 이야기는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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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나에게 -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희망편지
매트 슬라이.재이 패트리키오스 엮음, 김인숙 옮김 / 스타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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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의 나가 미래의 나에게 편지!
과거의 나가 지금의 나에게 편지!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아직 써보진 않아서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것 하나는 정말 좋을 거 같다.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편하고 솔직하게 쓸 수 있다는 거.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희망 그리고 기대.
뭐니뭐니 해도 어떻게 변해있는지 많이들 궁금해한다. 

읽다보면 참 비슷함을 많이 느낀다. 특별한 사건이나 특이한 이력이 있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이다.
나와도 그렇게 다른 거 같지도 않고.
내가 생각했던 것들, 내가 고민했던 내용들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서 같이 흘러나온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나보다.

개개별의 특별하고 개성적인 존재인데도 또 그만큼 공통점도 많은 게 사람이니까.
특히나 '미래'는 누구나가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

지금 내가 한 선택, 그 결과의 미래. 두려움이 없을 수가 없구나. 그러면서도 언제나 기대가 따라오지.

미래의 나는 어떨지, 지금과는 뭐가 다를 지, 뭘 먹고 사는 지, 누구와 사는 지, 어디서 사는 지 등등등 정말 알고 싶은 이야기 투성이다.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 - 나도 써봐야겠다고 마음 먹았다.
올해 안에 받든, 몇 년 후에 받든 그것도 아님 몇 십년 후에 받든 내가 나에게  쓴 편지를 받을 때의 기분은 어떨지 상상해본다.
아마도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을 테니, 황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그리고 시간 속의 묘한 떨림도 느끼겠지.
짜릿하면서도 많이 떨릴 거 같다. 그리고 어서 보고 싶을 거고.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했었던걸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편지를 열어보겠지.
나는 아직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지만 곧 그리고 꼭 쓸 예정이다. 미래에 나에게 정말 좋은 선물이 되겠지.

재미있는 이벤트도 되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좋은 중심점도 만들어줄 수 있는 듯 하다.
미래의 나에게 무언가ㅡ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지금의 나니까 말이다.
자신의 지금을 한 번 돌아보게 해주고, 생각하게 하고, 더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여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고민들, 질문들, 일상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십 년 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이벤트가 좋은 이유는 선물이다.
이 세상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나'가 '나'에게 보내는 선물. 누구도 해줄 수 없는 나만의 것.
상상만으로도 정말 특별한 일이다.

이 사이트 개설한 두 사람에게 박수를!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실행하고, 결국은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한 곳으로 모았다.
어쩜 아이디어 이리 좋을 수 있을까. 아님, 내 머리가 너무 굳은 걸까.
너무 대단해서 꼭 얘기해주고 싶었다. 


읽고 서평을 썼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른 거 같다.
이 책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서평은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아, 나는 묻고 싶은 목록부터 정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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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은 말한다 -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
구본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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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았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삶에는 참 길이 많은 거 같다.
내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수록 '길은 하나다'라는 어린 시각에서 많이 벗어난다. 
어릴 적에는 하나밖에 없었다.

가야할 곳 한 곳, 되어야할 목표도 오직 하나였다. 그것만이 전부인 세상이었는데 진짜 세상은 그렇지 않다.
길은 사방으로 뻗어있었다.

이 저자도 본업은 검사인데 지금은 책의 저자다. 이력이 재미있고 그 열정이 멋지다.
수집이라는 게 본문에 나온 말처럼 사치, 돈, 투자 이런 선입견을 갖게 하지만 저자에게는 '의미를 창조하는 일'이다.
수집을 좋아해서 글씨, 즉 간찰 수집가가 되었고 많은 작품들을 소장하였다. 하지만 소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 스스로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진품여부의 판별, 작품의 가치를 가늠하는 안목 등 전문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삼고 자료를 읽고 연구한다. 글씨 수집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싶은 대목이었다. 이런 열정과 노력은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유묵은 말한다'는 말처럼 유묵의 종이, 인장, 글씨체, 내용, 작성연대, 출처, 함께 나온 물건 등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진품여부를 알아야 하기에 공부는 말 그대로 기본바탕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여기서도 만난다.
저자는 초서를 해독하기 위해 [칠제대자전]을 보고 전각 사전 [ 오체전서자전]을 본다.
정말 웬만한 전문가보다 나은 전문가로 보인다. 전반적인 지식인은 많은데 뼛속까지 전문가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라는 내용이 본문에 보이다. 정확한 감식안을 위해서는 '실력'을 키울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간찰은 일상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현대인들보다 훨씬 가난하고 지식도 부족하고 소일거리도 많지 않았지만, 옛 사람들의 감성만은 주옥같이 아름답다.
삶의 희로애락을 잔잔히 써 내려간 글들은 그야말로 일상의 철학을 담고 있다. - p ,190


간찰은 선인들의 정신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선인들이 주고받던 편지로서 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이야기와 문장들, 전쟁 중의 비밀서신 등이 담겨있다. 간찰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도 흡족할 만큼 마음에 들었다.
서예 작품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이지만 간찰에서 보여주는 삶의 향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글씨를 볼 줄 모르는데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글씨'를 좋아하는 걸  깨달았다. 전혀 기준도 없는데 본문에 삽입된 글씨들을 보며 마음에 드는 글씨를 찍기도 했다. 그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이 '안중근' 선생님과 '김구' 선생님의 글이었다.

글씨는 곧 사람이다. 필적은 뇌의 흔적이다. 그래서 습관화되어 무의식 중에 나타난다는 것과 사람마다 특유의 패턴이 있다고 한다.
필적학이란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글씨 쓸 때의 기분, 의도, 지능지수, 나이 등을 알아내는 학문분야이다. 범죄수사에도 활용하는 것이 필적학이다. 필적을 분석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필적학에서는 글자의 크기, 형태, 압력, 속도, 기울기, 정돈성, 전체적인 인상, 자연스러움, 조화, 리듬 등을 살핀다. 미국에서는 필적심리학이 광범위하게 수사에 활용된다.
저자는 글씨 공부를 했다. 좋은 글씨를 수집하고, 제대로 감상하고,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필체를 구분하기 위해서 필적학과 필적 심리에 대해 공부했다.
저자 덕분에 나도 필적학에 대한 개념과 의미를 배웠다. 더욱이 글씨체의 중요성까지 말이다. 글씨를 보면 성격이 보인다는데, 그럼 내가 쓴 글씨로 내 내면이 보인다는 걸까. 전문가가 있다면 한번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아니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아, 기회가 꼭 닿기를. 그동안 난 글씨 연습이나 해야겠다.

이런 정보 등을 통해 글씨 크기, 글씨 형태, 곧은 글씨와 굽은 글씨, 글자 간격,


행 간격, 규칙성, 글씨 속도, 정돈성 등에 따라 필적이 말해주는 인물의 유형을 나누었다. 그 결과가 항일운동가와 친일파다.
글씨체로 항일운동가와 친일파가 이렇게 유형이 나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또 다른 학문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더불어 내가 쓰는 서명, 글씨체에도 더 관심이 많아졌다.

 

"필적은 말한다" 



 

제목이 좋고. 내용과 구성 또한 아주 만족한다.

내용의 신선도가 아주 크다. 글씨체를 통해 항일운동가와 친일파를 구별한다.
글씨는 말 그래도 개성인데 이것이 유형화가 되고 변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내 궁금증을 잘 풀어주었다.
역사 속의 인물들을 다시 한번 만나게 해줘서 고마웠고 나를 돌아보게 계기가 되어 좋았다.

나는 연필을 아주 좋아한다. 지금도 4B연필은 미리미리 사놓을 정도이다. 그렇게 종이에 대고 쓰는 것을 즐기는 나도 자판을 이용하는 횟수가 훨씬 많고 높다. 오늘은 부쩍 연필과 종이가 애틋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았다. 특히나 역사적 지식에서는 더 큰 수확이었다.

그림은 전성기 때 작품을 최고로 치지만 글씨는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글씨를 최고로 친다는 것. 이를 '절필'이라고 한다.

사람의 인격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해서 높은 가치를 매긴다.

천초는 다른 사람에게 대필시키는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글이다.
그 시대 속에서 온몸을 불사르며 자신을 태우며 살다간 항일지사와 남을 불사지르며 살아간 친일파의 글.
글귀 속에 살아 숨쉬는 그때의 영혼들의 울림이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 내 안에서 울려온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잊고 살지만 가끔은 우리의 지금을 있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기억해줘야한다.
그것이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지 않을까 한다.

의병장 의암 유인석이 면암 최익현에게 보낸 간찰 내용은 절절함 그 자체다. 살아서 돌아올 것으로 충심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다. 면암은 이 편지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간찰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눈물 겨운 삶의 행로가 가득 담겨있다. 더불어 세상의 아이러니도 한껏 보여준다.
조선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켜 전쟁터나 형무소에서 무참히 죽어가던 시기에 한편에서는 만찬을 벌인 자들도 있다.
여규형은 일본간부 방야옥을 만찬을 빛내달라고 초대하고 있다. 한 사람만 초대장을 보낸 게 아니었다. 많은 선비들이 자결로 일제 침탈을 항거하던 시기에 한쪽에서는 놀자먹자판이었다.
친일에도 나름의 고뇌가 있었을까 면죄부를 주려는 마음이 일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편에서 처절하게 저항하고 죽어간 항일지사를 보면 그런 마음은 싹 가신다.

황현 선생이 [매천야록]에 서술했다.
여규형과 정만조를 "제주와 학문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인데, 개화 이후 외세에 아부하며 쫓아다니기를 미처 따르지 못할까 걱정하는 듯이 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이들을 침 뱉고 욕하였다"
서슬 퍼런 지적이 너무나 시원하다.

항일지사 이종혁의 옥중 편지. 읽으면서 진심으로 웃었다. 그 호방함이 그 암울한 상황에서도 놀랍고 대단하다.

이준 열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검사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준 열사는 헤이트 특사로 파견되었으나 결국 무산되어 네델란드 한 호텔에서 병사했다. 특히나 이 분의 글씨는 검사인 저자에게는 아주 특별한 일이었을 거라 짐작이 된다.
웃긴 건 을사오적 중 하나인 권중현의 간찰에서 '이준열사의 가족들을 염탐하라는 내용'이 보인다.

을사오적은 죽어서 도대체 어디를 갔을까.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간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그 죄값을 죽어서라도 받아야하는 거 아닐까.

이외에도 참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책이라 이것저것 적어두고 싶은데 - 짧은 내 기억력을 믿을 수 없으니 - 그럼 너무 길고, 이야기가 많으니 내가 더 하지 못한 말들은 책 속에서 꼭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면 한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공부했던 '혈의누'의 이인직. 이 인물이 이완용의 비서인 줄 진정 몰랐었다.
막후에서 일제의 조선 강점(경술국치)에 큰 공을 세운 친일지식인임을 제대로 확인했다.
친일파인 줄은 알았지만 이완용의 비서였다니. 세상에나.
이인직은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이거 소문 좀 많이 냈으면 좋겠다. 이완용만큼이나 나쁜 놈인데. 모른다는 게 억울하다.

내게도 공부가 많이 된 책이었다. 잘 읽었고 저는 기쁜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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