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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재다
다니엘 켈만 지음, 박계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다니엘 켈만,
아주 낯선 독일 작가.
요즘 나는 낯선 작가들에게 굉장히 호의적이다. 모험심이 강한 것도 아닌데, 성큼 집어서 잘도 읽는다.
작가 소개 보다가 멍해졌다. 이 사람 같은 세대 사람이다. 이름 뒤에 붙어있는 이력이 그저 화려할 뿐이다.
지구촌에서 어떤 사람은 캉디드상, 아데나우어 기금문학상, 클라이스트상, 또 다른 문학상 이제는 상 이름도 어려워서 적기가 귀찮네. 거기다 2005년에는 올해의 작가, 올해의 책, 타임지가 선정한 2006년 전 세계 10대 소설이란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전 세계인이 읽어야 할 소설의 기준은 뭘까. 그래서 책이 더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그 세계인 무리에 든 나도 읽어야 하는 책인지.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구성이다.
두 주인공 가우스와 홈볼트 의 만남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과거로의 여행을 출발한다. 각 장마다 따로 이야기가 묶여지고 이 두 사람이 첫 만남을 가지는 부분은 5번째 [수]이다. [수]는 가우스 이야기로 이때 둘은 잡지를 통해서 연결점을 갖는다. 재밌고 독특하다.
이런 구성은 배워볼 만 해. 장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뀌는 거지.
문체도 특이하고. 따옴표라는 것이 없다. 그냥 줄글. 이런 대화체는 처음이다. 그런 신선함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간접화법이 우리 글에서도 가능한 건가. 따라해보고 싶기도 했다. 개성 넘치는 문체와 독특한 구성을 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지구의 발전과정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수 83 페이지 - 사람들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사람들은 생각 자체를 닫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가우스의 눈으로 보여준다.
나도 그런걸까. 변화하려고, 진화하려고, 지금과 다른 나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걸까.
가우스보다 몇 백 년 뒤에 사는 내 일상은 가우스가 그토록 바랬던 일상이다.
가우스는 언제나 말했다. 그런 날이 올거라고. 그는 의사가 있는 시대에 태어날 수 있다면 영혼도 바꾸고 싶다고 했던 거 같은데. 치통의 고통 속에서 그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훔볼트.
정말 독일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치만 이런 평가는 너무 감상적으로 치우친 면이다. 내가 독일사람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특성을 알만큼 연구자료를 찾아본 것도 아니니. 일반화의 오류로 빠지고 싶지는 않다.
그치만 아, 일식을 보지 않고 육분의를 붙잡고 있던 그를 보며 딱 독일인라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같이 다닌 봉플랑이 그랬다.
'그렇게 항상 독일 사람답게만 행동해야 되는 겁니까?'
아, 내 입에서도 같은 말이 튕겨나왔다.
하지만 그의 원칙과 절제가 무서우리만치 존경스럽다.
독일작가인 게 맘에 들었고. 탐험가이면서 수학자이면서 물리학자이면서 모든 학문에 정말 미친 두 기인이 맘에 들었다.
수학과 물리라.
아마 글로 써놓으면 절대로 이해 못할 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이 책을 펼쳤다.
이해 못할 공식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들은 여전히 많았다.
정말 재밌다.
하지만 이 재미는 보통 때 내가 느끼는 책의 즐거움과는 조금 다르다. 아마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 텐데.
이 책 서평에 유머가 빠지지 않는 것을 봤다. 하지만 이 유머가 유럽식인가 싶더라. 웃긴데 웃기지 않는 특이한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구성!!!
참신하고 개성적인 매력이 아주 뛰어났다.
노년의 두 학자가 만나는 시점을 시작으로 그들의 과거를 장별로 구성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렇게 다시 노년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시간적 구성으로 친절히 해놓은 것은 아니다. 구성에서도 비약이 많았고. 그런 면이 지루함을 덜 주었다고 여긴다.
천재적인 탐험가와 수학자를 모델로 삼아 하나씩 잠자고 있던 원리와 법칙으로 변화와 발전을 이루는 족적들이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있다. 아, 뫼비우스도 책 속에 나왔다. 유명한 사람은 한 사람씩 다 나오더라. 낯익은 이름의 재미도 좋았다.
지적이 호기심, 지적인 허영심을 묘하게 묶어주는 듯 보인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나의 모습일까. 하지만 내 인내력 테스트도 무지 많이 시킨 책이다.
별들 - 가우스
이 편에서 가우스는 외교관이자 언어학자인 홈볼트의 형을 만난다. 언어학을 확 무시해 그를 있는 대로 기분 나쁘게 만들지만. 수학자의 이 오만함에 나도 코웃음을 한번 날려줬다.
언어학이 뭐라고?
'언어학은 수학에 필요한 꼼꼼함을 갖추었지만 지능은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논리라도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내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요.' 라고 했다.
그리고 아내 요하나가 죽었다.
아, 사람에게 이성만이 아니라 감정이 있음을 감사하라.
슬픔도 수학 속에 있는 이 사람 - 공감은 안 가도 한편으론 가엾기도 하다.
훔볼트는 독특하고 기이한 남자였고, 가우스는 특이한데 이기적인 남자의 전형성이 많았다.
가우스는 훌륭한 수학자이자 천재이긴 하지만 인간으로는 매력없다. 하지만 그의 열기와 끈기는 이래서 학자구나 싶은 집착이 있다. 그랬기에 그가 가고자 한 길에서 결과를 얻었을 수 있었다.
두 학자의 공통점은 포기와 집착이다. 즉 포기는 없고 집착만 있다.
자신의 길에 대한 어마어마한 열정과 탐험심과 호기심과 꿋꿋함이 포기를 생각지도 않게 한다. 집착이란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성향이 아니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접착제 처럼 집착은 두 학자가 자신의 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었다.
집착이 없었다면 이 길이 가능했을까.
훔볼트가 형에게 했던 말!
- 운명이란 건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어떤 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결정하면 언젠가는 그것이 정말 운명이었다고 믿게 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일들도 많아서 억지로 운명이라고 믿었던 것에 끼워 맞춰어야만 하지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결국 운명이란 말도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고 개인이 원하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이다.
훔볼트와 가우스의 대화
그렇다면 학문은 도대체 뭡니까? 가우스는 파이프를 빨았다. 홀로 책상에 앉은 한 남자.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때에 따라서는 망원경을 가지고 맑은 하늘이 보이는 창문의 앞에 서는 남자. 이 남자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마도 학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