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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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라는 유럽적사고와 우리라는 미국적 사고 하지만 한국은 역행한다.

광장의 논리는 우리였지만 결국은 개인이다.

세계의 정서의 공감은 우리로 향하고 있음에도 분명 우리에 너무나도 익숙함에 개인에 편중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로 드러나기에 우리로 표출되기에 집단이기주의로 전락하고 만다


동네 재개발로 아파트가 드러선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몇집으로 인하여 여전히 소란하다.

법에 준한 데시빌로 음악을 틀어놓고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과 그 소음에 민원을 넣는 사람들 그 소음의 진앙지의 기준 데시빌과 확인하는 경찰 그렇게 꼬리잡기는 진원지는 소음이었다.


p169

나는 사기꾼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라는 존재는 잉여 인간과 같은 처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어떤 것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덜미를 잡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물론 크게 한번 도약해서 도망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누군가에게 강요받은 복수 자아 하지만 근거와 배경이 부족했다고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일인칭 자아로 치닫는 것이 더 문제다. 현재가 문제이기에 자신의 껍데기로 숨어 들어간다는 것이다.

부임을 찾으렆미국에 왔지만 그는 충분히 여지를 난드는 것이었다. 그 문제 그 소음으로 회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은 다시 찾아간다.



춘천으로 가는 ITX에서 책을 본다. 

주인공이 찾는 것이 아내였을까? 자신이였을까? 가족이라는 끈일까?


그렇게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이별을 빙자한 만남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찾는 것은 항상 한계가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된 나의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자아인 것이다. 사람이 혼자살기에는 항상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라는 소음이 걷혀질 때 비로서야 소중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실제라는 것이다. 홀로의 여행속에서 발견하는 보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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