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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이해인 수녀의 사모곡
이해인 지음 / 샘터사 / 2008년 8월
평점 :
이해인 수녀님을 처음 만난 것이 내 나이 20대 초반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였습니다.
수녀님의 외모만큼이나 정갈하며 소박한 문체가 오히려 마음을 설레게 했었지요.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나 40의 문턱을 지나온 오늘에 내 손에 들려진 ‘엄마’라는 시집은
내 마음속에 들어와 박혀 버렸습니다.
책갈피에 고이고이 말려 둔 꽃잎을 편지에 담을 줄 아셨던 수녀님의 어머니
살아오신 삶 그 한순간 한순간이 자식들에게 특히 이해인 수녀님에게 무언으로의 가르침과
모델이 되어 오셨다는 것이 시 한편 한편에 고스란히 담겨져 나왔습니다.
이해인 님의 그 정갈함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뵙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어느 엄마인들 자식에게 애틋하지 않을까 만은 그 애틋함을 헤아릴 줄 아는 자식이 몇이나
될까요? 수녀님 또한 엄마의 커다란 사랑 앞에서는 늘 부족한 자식일 뿐인가 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부터 엄마의 손 때 묻은 유품들에 대해, 엄마와 함께한 시간들로의
되새김질을 통해 뼈 속 깊이 파고든 그리움들을 절제된 언어 속에 숨을 죽이며 아주 조금씩꺼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그리울 적마다
눈물을 모아 둔 항아리가 있네
들키지 않으려고
고이고이 가슴에만 키워 온
둥글고 고운 항아리
이 항아리에서
시가 피어나고 기도가 익어 가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빛으로 감싸 안는 지혜가 빚어지네
이 눈물 항아리는
어머니가 내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네
이해인 수녀님은 이 시를 통해 엄마와 딸이라는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서 기도와 기도로
이어진 또 하나의 관계를 바라봅니다.
엄마 라는 이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 신앙 하나만을 무기로 또한 사명으로 알고 시집오셔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그 기나긴 길을 묵묵히 기도로 걸어오신 우리 엄마.
삼년전 아빠가 쓰러지셔서 반신이 마비되셨을 때도 그 가냘픈 몸으로 그 수발을 다 감당하시면서도 아빠와 함께 하루 세 번 예배 드림을 통해 결국은 아빠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이끌어 주셨던 엄마입니다. 지금도 엄마는 매일 밤 새벽 두세시까지 기도를 쌓고 계십니다.
귀한 시집을 통해 자식으로서의 나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엄마의 그 세월을 자식을 둘 낳아 십 수년을 기르고 보니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많이도 쇠약해지신 엄마이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커다란 울타리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자식과 또 자식의 세대가 오더라도 그 울타리가 여전히 서있을 수 있도록
나도 그 울타리 한편을 감당하는 작은 버팀목이 되고 싶습니다.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허락된 시간에 좀더 많은 사랑을 담은 마음을 나누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