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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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보편적으로 보던 책 사이즈와 달리 너무 작아 놀라고,책을 펼쳤을 땐 겉모습과 반대되게 매 장 마다 새겨진 글자크기에 놀랐습니다.

색다른 책을 만난 것 같아 기쁘고, 가볍게 읽을 만한 소설책을 원했던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

가독성이 워낙 좋아 자리에 앉은 지 채 몇 시간도 안되어 다 읽었어요. 그만큼 저자의 필력과 흡입력이 너무 좋았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기묘한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어느 날 부녀가 지내던 아파트에서 큰 화염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고, 아버지가 창밖으로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조사를 하지만, 속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당분간 미제로 남고 맙니다. 분명 방화가 일어났으나 발화의 시작점은 찾을 수 없고 자연발화라는 말도 안 되는 추리까지 하게 만드는 사건으로 말이죠.

두 번째 장에서는 특색 없는 무채색 슬랙스와 카디건 차림의 평범한 아주머니인 시미라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문신을 하기 위해 찾은 문신가게지만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는 그녀.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문신술사는 가볍게 차나 한잔 하고 가라며 그녀를 가게 안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세 번째 장에서는 시미에게 문신가게와 문신술사를 소개해준 화인이란 인물이 등장합니다. 직장에서 만난 그녀는 목 뒤쪽 도마뱀 문신을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문신에 왠지 모를 궁금증이 생겼지만 시미는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죠.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 화인이 먼저 자신의 몸에 새긴 붉은 도마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문신술사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명함을 시미에게 건냅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문신가게 안, 문신을 새기기 전 두려움과 궁금증에 샘플 도안이 아닌 직접 새긴 작품의 사진을 물어보는 시미에게,

"남겨두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요."

"언제가 됐든 사라지니까요."

라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문신술사.


그리고 다음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사고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첫 장과 같이 의문점만 한가득한 미제사건들이 대거 등장합니다.이 때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데, 문신술사에게서 문신시술을 받은 사람들이 각 사건마다 있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 때 문신으로 새긴 그림들이 실제로 등장해 힘을 발휘한다는 겁니다.

마법같기도, 판타지같기도 한 이야기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던 사람, 사귄적도 없는 남자의 자살 예고 문자에 그의 안부를 살피러 왔다가 그에게 덮쳐져 옷장에 묶인 채로 갇힌 여인, 사장에게 늘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던 사람, 이들 모두가 피해자였고 그들이 무섭고 힘든 상황에서 몸에 새긴 문신은 힘을 발휘해 자신을 위협하는 인물에게 복수했습니다.


책의 마지막 쯔음, 문신을 고민하던 시미가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길 것을 결정했을 때 문신술사는 주인공 시미에게 묻습니다.

시미 씨가 원하는 걸 말해주세요. 무엇이 시미 씨를 돌봐주었으면 좋겠는지.

이 문단에서 만약 소설처럼 '문신'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면, 나를 돌봐줄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모양을 새길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요즘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N번방 사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N번방피해자들이 가장 무섭고 절박했을 때, 이 소설과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 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무게는 가벼웠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

#심장에수놓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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