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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ㅣ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평점 :

놀라운 책이다. 읽는 내내 작가님의 깊고 넓은 지식에 감동했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탄복했다. 유럽과 아시아 역사의 판을 갈아엎었다. 이 책이 갈아엎은 판을 다시 채울 새 퍼즐 조각들이다.
<유라시아 견문>은 원광대학교 이병한 교수가 쓴 유라시아 견문록이다. 그는 역사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3년간 유라시아로 떠났다. 그가 공부하고, 직접 느끼고 온 유라시아의 결과물이 바로 이 시리즈다. 1년간의 견문을 차례로 한 권씩 묶었다. <유라시아 견문3>가 이 시리즈의 대미다.
‘유라시아’라는 말이 낯설었다. 한국사를 필두로 확장해봤자 동아시아, 더 넓혀도 아시아까지다. 그 외 세계를 보는 역사는 ‘세계사’, ‘유럽사’로 나눠 생각했다. 굳이 ‘유라시아’의 역사를 깊게 생각해본 적 없다. ‘유라시아’를 강조하는 이도 거의 못 봤다. 유럽과 아시아를 한 데 묶어 생각해보자면, 아시아는 수동적이고 유럽은 아시아 진출에 열광했다. 그래서 유럽의 역사나 문화가 아시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라시아 견문>을 읽고, 그 틀에 금이 갔다.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를 하나로 잇는다. 유럽만 우월한 게 아니었다. 그저 유럽과 아시아는 바로 옆에 붙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다. 대한민국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의 관점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를 재정립해본다.
세계체제 갱신은 세계사 재인식과 동시적으로 수행될 것이다. 서구 중심주의를 중국 중심주의로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유럽적 가치에 동아시아의 전통을 맞세우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구미적 근대성이나 아시아적 가치론이나, 자족적이고 자폐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서구를 배타하지도, 흠모하지도 않는다. 근대를 폄하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사물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뿐이다. 유럽을 유라시아의 서단으로 지방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름을 바르게 불러주는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 근대와 전근대의 분단체제를 허물고 유라시아적 맥락으로 동서고금을 재인식하는 것이다. 유럽의 자만도, 아시아의 불만도 해소하는 대동세계의 방편이다.
<유라시아 견문1 > (29p)
다시 <유라시아 견문3>로 가보자. 서쪽의 2진법은 동쪽의 ‘음과 양’에서 고안해냈다고 한다. 동쪽의 선비들은 서쪽의 과학에 매혹됐고, 서방의 문인들은 동양의 ‘인문주의’에 찬탄했다. 이래서 ‘유라시아’다.
서방의 문인들이 찬탄해 마지않은 것은 동방의 인문주의였다. 기독교에 의탁하지 않고도 고도의 문명국가를 이룬 나라가 있었다. 유럽의 몇 배에 달하는 영토와 인구를 효율적으로 다스리는 이념과 제도를 훌륭하게 구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물질적으로도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기까지 했다.
<유라시아 견문3> 93p
<유라시아 견문 3>를 여는 ‘리스본’부터 세계사를 보는 관점을 뒤집는다. 유럽의 변방에서, 인도양를 곁에 둔 유라시아 뱃길의 시작점으로 말이다. 리스본은 유럽의 끝이 아니라, 유라시아 뱃길의 시작이었다.
<유라시아 견문 3>에서 작가는 1년간 30개 이상의 도시를 견문한다. 유라시아의 거점들이다. 그 도시나 국가의 역사는 물론, 현재까지 들여본다. 역사뿐 아니라 정치, 문화까지 들춰낸다. <유라시아 견문 3>만해도 670쪽에 달한다. 방대하다. 수많은 국가들에 얽힌 역사와 현재 정치와 사회현상까지 담았으니, 쉬운 책은 아니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까, 감히 상상도 안 된다.
그래도 작가님의 필력이 장난 아니시다. 어려운 내용인데, 책이 제법 빨리 넘어간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도시 이야기도 읽힌다. 꽤 웃긴 분이기도 했다. 글에 반했다. 작가님 팬이 돼버렸다. (심지어 잘생기셨어..!)
유럽과 아시아를 관통하는 역사,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선, 성실한 발걸음, 담백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글, 이보다 완벽한 유라시아 견문을 없을 것 같다. 꼭 두고두고 다시 읽을 책, <유라시아 견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