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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이치은 지음 / 알렙 / 2018년 9월
평점 :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이치은
알렙
이치은 작가의 단편을 엮은 소설책이다.
보르헤스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논쟁' 이전에, '보르헤스'에 대해 알아야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다. 사실 ‘보르헤스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논쟁’은 보르헤스에 대해 잘 몰라도 괜찮았다. 책은 시간과 기억으로 꿰어낸 단편소설 10편이 담겼다.
작가는 시간과 기억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독자에게 물음을 던졌다. 161페이지 짧은 분량이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소설 속 시간과 기억이 어떤 의미일까. 읽던 책을 덮고 생각에 빠지게 했다.
제일 인상깊게 읽은 단편은 ‘전당포’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당)
택시기사 문 씨는 안면을 튼 손님을 ‘하우스’에 데려다주다, 우연히 도박에 빠졌다. 처음엔 잠깐 구경만 할 생각이었다. 새벽에 돌아갈 때 자신을 태워다주면 하루치 일당을 주겠다는 손님 말에 도박에 발을 들이게 됐다. 도박의 말로는 생각한대로다. 그는 4개월 만에 6년 동안 택시로 번 돈을 몽땅 잃었다. 혈당 수치가 높아 장기매매도 실패했다. 몸도 팔 수 없는 처지다. 그러던 중 ‘시간을 팔지 않겠냐’는 제안을 들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장기매매도 실패한 그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시간을 판다는 전당포로 향했다. 남은 수명을 파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시간보다는 기억을 맡긴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저희가 맡아두는 건 기억이에요. 우리는 잠시 고객님의 기억을 맡아두죠."
“저희가 고객님의 기억을 가져가면 원래는 고객님의 시간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하기는 힘들어지거든요. 간단히 말해 기억이 없으면, 시간도 없어지는 거죠.”
그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써냈거, 가장 값어치가 높은 행복한 기억을 전당포에 맡겼다. 이제 그의 행복한 기억 하나가 사라졌다. 기억이 사라져서, 어떤 행복한 기억인지도 모른다. 빌린 돈을 갚으면 행복했던 기억을 다시 가져올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는 돈을 갚았다. 잘 모르고 지내던 친 외할머니에게서 유산을 받아서다. 전당포로 가서 행복한 기억을 다시 찾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전당포 직원이 뜻밖에 제안을 해온다.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억을 사 가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자기 걸로 만드는 거예요, 비슷한 금액으로. 아니 첫 거래니까 10퍼센트 디스카운트 해드리죠.”
그는 무슨 선택을 했을까..
나라면 무슨 선택을 할까. 나는 내 행복을 되찾을 거다. 행복한 기억은 내 삶의 일부분이었을 때 진짜 행복이 될테니깐.
만약에 비슷한 금액이 아니라, 훨씬 비싼 값의 행복한 기억이라면? 나는 내 행복을 되찾겠다고 단언할 수 없을 거다. 내가 누리지 못한 더 커다란 행복이 무엇일까 궁금할 거 같다.
그런데 잠깐.
행복의 크기를 잴 수 있을까. 잃어버린 행복한 기억은 내 기억이라 할 수 있을까.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소설 읽는 시간보다 소화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거 같다.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억을 사 가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자기 걸로 만드는 거예요, 비슷한 금액으로. 아니 첫 거래니까 10퍼센트 디스카운트 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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