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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능력주의 - 한국인이 기꺼이 참거나 죽어도 못 참는 것에 대하여
박권일 지음 / 이데아 / 2021년 9월
평점 :
박권일님의 한국의 능력주의를 읽었다.
초판1쇄를 사두고 하던 공부에 밀려 이제야 읽었다.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 얼마나 공감하느냐 자문했을 때, 책에서 나오는 '교양주의'와 얼마나 비슷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에 대한 이슈가 나올 때마다 뭔가 불편했던 지점이 있었는데 저자는 그 문제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아카데믹하게 다루면서 정리를 해줬다. 거칠게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문제는 공정이 아니야, 불공평이 문제란 말이야!'
정도가 되겠다.
우리나라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발달했으나, 효과적 민주주의의 발전은 지체되고 있고, 이는 엘리트의 고결성이 낮은 부분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엘리트의 탓으로만 돌리기도 애매한 것이, 저자는 그람시를 호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지배-피지배 관계도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지배자의 지배가 유지되려면 강제력만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동의는 피지배자가 순전히 기만당했음을 뜻하지 않으며, 일정한 물질적 충족 위에서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를 능동적으로 체화한 결과다. 능력주의도 마찬가지다. 능력주의를 내면화한 대중은 지배 집단의 능력주의 선동에 일방적으로 세뇌당하거나 속아 넘어간 게 아니다. 대중은 주체적으로 능력주의를 받아들였고 스스로가 능력주의의 피해자인 동시에 수혜자, 또 가해자가 됐다. (220쪽)
우리가 이런 사태에 동의하고 있지 않냐고... 개별적으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니, 나 개인적으로도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이건 아니야'라고 큰 소리로 발언하지는 않고 있으니까... 말이다. 편승은 쉽지만 앞서 달리는 것은 나도 저어하니까...
'그렇다면, 그 불공평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저자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능력주의의 대안을 제시하려면 능력주의의 개념적 한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 특히 능력주의가 당연시하는 전제들, 이미 상식이 되어 불변의 자연적 조건처럼 보이는 사실들을 모두 의심해야 한다. 그 상식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 비로소 대안은 현실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능력주의의 대안을 찾는다는 것은 불평등을 판단하는 더 정의롭고 효과적인 원칙을 마련해 정당하지 않은 불평등을 실제로 해소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능력주의의 대안은 곧 불평등의 대안’이며,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크고 작은 특권들을 해소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요컨대 능력주의 대안의 주된 기조, 큰 방향은 특권의 해소여야 한다.
이를 정치의 언어로 번역하면 권력의 분점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과 법원의 전횡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초헌법적 사면권을 포함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축소하며, 특정 계급의 이익을 주로 대의하는 의회 권력의 대표성 왜곡을 교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대기업에 대한 각종 특혜를 폐지하고 중소기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며, 플랫폼 노동과 비정규직 노동 등 방치되어온 노동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등의 광범위한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하나하나 실현해가는 과정이 바로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효과적 민주주의로의 이행, 다시 말해 실질적 민주화다. (251쪽)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 원론적이라 약간 실망스럽다.
하지만, 이런 것에서 '정답'을 찾겠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너무 게으르고, 약자적이다.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야지, 따라갈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공리주의, 평등주의, 자유지상주의 세 가지 중에 단 하나만 정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더 많은 옵션이 있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조건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만을 나도 따라할 수 밖에 없다.
각론은 하나씩 만나면서 만드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