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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혐오의
일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여성혐오, 남성혐오, 난민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 ‘ㅇㅇ혐오’로 촉발된 사건,사고들이 전세계적으로 끊이지 않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혐오를 나타냈던 예전과 달리 요즘엔 타인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대놓고 드러낸다. 이런 세태를 우려 스럽게 봐야 하는 이유는 이 혐오의 감정이 사회적으로 설계되고 공모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개인의 취향에 따른 거부감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집단을
표적으로 삼아 ‘다름’을 배제하고 배척할 만한 ‘거리’로 둔갑시켜 무자비한 증오를 쏟아낸다. 혐오는 그렇게 “사람은 누구나 특유한 개인사와 경험, 특징을 지닌 인간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확산된다.
<혐오사회>는 15년 넘게 세계 분쟁현장을 누벼온 독일 언론인인 저자가
혐오의 메커니즘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혐오라는 ‘사회적
공모’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증오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방향으로 유도된 것이라고 말한다. 증오를 느끼려면 우선 증오의 대상이 실존적으로 중요하며 괴물 같은 존재로 여겨져야 한다. 설령 집도 없고 갈 데 없는 가엾은 신세라 해도 엄청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껏 증오할 수 있는 증오의 정당성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증오와 멸시를 당하는 이들이 오히려 사회에 피해나 위협을 가한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다. 저자는 책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 ‘보이지 않는 인간’을 다룬다. 똑같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같은 사람이나 어떤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자화된 동성애자‘들’, 여성‘들’, 무슬림‘들’ 등이다. 이들은 개인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되지만, 집단화했을 땐 “외국인으로, 범죄자로, 야만인으로” 사회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여겨진다.
증오의 패턴 중 하나는 의도적으로
현실을 협소화하는 시각이다. 난민의 예를 들어보자. 그 어떤
언론,출판물도 난민 개개인의 숙련된 기술, 감정적 특성과
관련한 언급이나 정보는 전혀 없다. 모든 잘못은 이슬람에 있고, 언제나
무슬림들의 이주가 문제이며, 모든 난민은 선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소지를 타고 난 집단임을 혐오스럽게
묘사한다. 철저히 여과된 시선은 모든 무슬림, 모든
이주자가 각자 개개인으로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존엄을 가진 인간이고, 그들이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인간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이들 중 ‘가짜 난민’이 저지른 모든 형태의 범죄는 당연히 밝혀져야 하며 범인의 이력까지 모조리 분석해야 한다. 즉, 개개인을 악마적 존재로 죄악시할 게 아니라 그들이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비판하고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가운데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많은 수로서, 복수로서 이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강조한다. “스스로를 단색의 통일체로 이해한다면 다양성이나 개인성은
소멸하며, 한 사회 내의 복수성은 개인이나 집단에게서 자유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를 보장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상상력을 강조한다. 상상력을 펼칠 여지가 축소되면 감정을 이입할 여지도 줄어든다. 사람들이 타인에게 그렇게 쉽게 상처 입힐 수 있는 건 타인의 존재를 전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몹시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여지를 넓혀주는 진실 말하기가 중요하다. 현실을 협소하게 파악하는 인식의 틀을 해체해야 한다. 누구는 배제하고 누구는 포함시키는 암호와 신호도 전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