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공룡 콩콩동시 15
박영식 지음, 황유진 그림 / 소야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은 거짓말을 잘 못한다.  

문자사용에 서투르기 때문에 생각을 오래 담아두지 못하고, 경험이 많지 않아서 즉시 떠오르는 생각을 옛경험과 연관시키지 못한채 생각을 있는 그대로 뱉어낸다. 
그래서 이성으로 판단하지 않고 생각이 곧바로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는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생각과 행동에 간극이 없는 <호메로스적 인간> 에 가깝다.  
그래서 아이들의 눈으로 본 세상은 이해타산이 없고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다. 

아이들은 주위 환경에 있는 사물을 보고 상상적 우화를 만들어낸다. 
 안타깝게도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접하는게 스마트폰, TV, PC 같은 전자기기들이다.

 그런 기기들은 엄청난 정보를 쏟아내 판단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상상할 기회를 없애고 작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켜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지식은 많아졌지만 상상력, 창의력, 배려심이 부족하고 쓸데없는 지식들로 가득찬 헛똑똑이가 되었다.  

박영식 시인의 《바다로 간 공룡》은 디지털 중독에 걸린 아이들에게 디지털 디톡스 주사 한 방을 처방하는 동시들로 가득차있다. 
이 시집의 소재들은 바다, 숲, 동물, 식물, 소나기 같은 자연친화적인 것들이고 스마트폰, 공부, 시험, 학교, 학원같은 요즘 아이들이 항상 접하는 소재와 환경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버리고 잊게 만들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미니멀 라이프> 를 만들어 준다. 

자연을 접할 기회가 없어진 아이들이 자연을 접했을때 일어남직한 동심의 상상력과 성인이 된 시인이 아이로 돌아가서 그때의 자신에게 들려주고픈 순수한 내면이 교차되어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 공간에는 자연, 향토적 정서, 가족들의 유대감, 유적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공간의 동물, 식물은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인간과 대등하게 행동하며 공존하는 능동적 존재다.


비 오는 날> 에서 거미줄은 우주로부터 오는 일기예보 신호를 잡는 레이다망이 되고 달팽이는 더듬이를 바짝 세우며 공습경보를 전하고 청개구리는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오는 물난리를 대비하는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언뜻 보면 동물들간에 개연성이 없어 보이지만 생태계의 작은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큰 위기를 넘기는 모습에서 인간사회에서도 아무리 왜소하고 보잘것 없어 보여도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는 교훈을 남긴다. 
그러면서 요즘 학교마다 만연해있는 왕따문화가 없어지길 원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거인의 자장면> 은 흥미로운 상상으로 가득한 시다. 깜깜한 밤하늘에 떠있는 반달은 노란 단무지 색깔과 비슷하다. 
단무지하면 생각나는게 자장면 아닌가! 
아이는 지금 눈에 보이는 재료로 머릿속에서 자장면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까만 밤하늘을 끓여 장장을 만들고 전깃줄로 면발을 뽑고 전봇대는 젓가락으로 사용한다. 
물리적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주천체와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 이차원 평면에 놓이는 순간, 아이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자장면을 만드는 재료들로 둔갑한다.
 자장면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에 눈에 보이는 도처에는 자장면 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 재료들이 즐비하다. 


산골분교> 는 시험보고 경쟁하는 학교가 아니라 자연학습장을 연상케 하는 작은 분교가 등장한다. 
교문 앞에는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매의 눈으로 관찰하는 학생주임이 아니라 물까치가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맑은 목소리로 아침인사를 한다. 
70, 80년대 시절 각 교실마다 있었던 추억의 악기 풍금은 솔바람의 조율로 정겨운 소리를 낸다.
 줄무늬가 빽빽한 유선노트대신 나뭇잎 책장을 넘기며 초록바람과 신나는 자연공부를 한다. 
다람쥐가 나뭇가지를 붙잡고 쫑긋쫑긋 몸을 세우는 모습은 학창시절 다른 반 아이들이 복도를 지나면서 창문을 까치발하며 교실안을 살짝 들여다 보는 것처럼 귀엽다. 
이런 자연친화적인 학습공간은 요즘 점점 폐교가 늘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아득한 추억을 선물한다
 

할머니의 재봉틀> 은 누구나 어린 시절 갖고있는 할머니에 대한 향수를 떠오르게 한다. 
손주들에겐 무조건 퍼주시기만 하던 할머니는 대개 손주들이 나중에 성인이 됐을때 그 시절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구시대적인 매개체가 있다. 
그중 하나가 검은색 고물 재봉틀이다. 
지금의 세련되고 성능좋은 재봉틀과는 비교도 안되게 칠도 벗겨지고 빽빽 소리를 내서 기름칠을 해야 되지만 추운 겨울 손주들에게 따뜻한 옷한벌 지어 주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손자는 재봉틀이 옷감을 두줄로 박음질하는 장면을 보며 기차길이 만들어 지는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죽음은 대부분의 손주들이 겪어야할 슬픈 통과의례다. 
손주는 할머니 그리운 마음을 재봉틀에 담아 여전히 할머니의 손에 의해 기차길을 만들고 싶은 고물 재봉틀을 거실 한구석에 두며 버리지 못한다.  

가족들간의 따뜻한 유대감을 사물로 형상화한 시중에 또 <가로수 아저씨> 가 있다. 
가로수가 일년 365일 꿋꿋하게 한 자리를 지키며 서있는 모습은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고, 달밤에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둥근 달은 환한 등을 내다건것 같다. 
아이에게 가로수는 엄마를 향한 아이의 마음을 형상화시켜 보여주는 매개체다. 
아이는 밤늦게 시장에서 돌아오는 엄마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문밖에 서서 엄마가 먼발치에서 걸어오는 모습을 확인하고자 한다. 
드디어 엄마가 보이자 아이의 입가엔 둥그런 달처럼 환한 미소가 감돈다. 
엄마는 언제 봐도 반갑고 친근한 존재다. 
자기를 기다리며 대문 밖에 서있는 아이를 본 순간 시장에서 종일 일했던 고단한 하루는 아이의 미소와 함께 감사하는 날이 된다. 


송편> 은 지금은 없어진 명절문화를 회상하고 있다.
요즘은 송편을 사서 먹지만 40~50 년전 시골에선 추석때마다 가족이 둘러앉아 쌀가루로 송편을 빚으며 소원을 빌고 시루 위에 솔잎을 깔아 아궁이로 구워냈다. 
시인은 백자 모양의 송편이 아궁이에서 구워지면서 하얀 반달 모양이 되는걸 보고 달이 웃는것 같다고 생각했다. 
요즘 애들은 할수 없는 경험이기에 '성숙을 겸비한 영원한 어린아이'가 된 시인은 송편빚기에 임할 때의 진지함을 되찾으려 하면서 성숙된 자아를 다지고 있다  

박영식 시인의 특징중 하나가 반구대 암각화, 토기, 백자, 청자 등 문화재에 관심이 많다는 거다. 


민속박물관 견학> 에서는 사라진 옛문화를 현재로 소환해내 살아있는 모습으로 재현하여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물레, 흰 사기등잔, 참종이 문.... 
요즘 세상에선 비효율적 가치가 되어 사라진 물건들이 역사가 되어 재탄생할때 단순하고 하찮아 보이는 이것들이 당시엔 최상의 물건이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오리모양토기> 에서 천년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오리모양토기들이 발굴되어 문화재 감식원들의 검사를 받고 박물관에 보관되듯 내가 지금 쓰던 물건도 잘 간직하면 천년뒤 살아있는 역사가 될수 있다. 골동품닮은 선생님의 말씀처럼....  

가족들의 외모와 성격을 조금씩 물려받아 탄생한 <백자 달항아리>는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귀여워 사람들의 손때묻지 않게 먼 하늘에 박아두고 영원히 볼수있게 해놓았다. 

<고려청자>는 독야청청한 고려인의 마음을 노래했다. 솔가지와 학은 맑은 심성으로 오래 살고픈 소망을 나타내고 우주와 산은 변하지 않는 인고의 가치를 대변한다. 동동 뜬 흰구름은 천년전 물소리를 동반자처럼 데리고 다니며 고려인은 이 물소리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림일기 형식으로 된 <반구대 암각화> 는 울산에 있는 석기시대의 유적으로 동물, 사람의 모습을 바위 위에 새겨놓은 것이다. 
시인은 그 유적을 보고 그당시 원시인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하루를 그려보았다. 
남자들은 숫돌을 갈아 사냥무기를 만들어 요즘 현대인들 회사에 출근하듯 아침마다 움막집을 빠져나와 산으로, 바다로 사냥을 나간다. 
해질 무렵 퇴근한 남자들은 어깨와 손엔 칡범, 뿔사슴, 멧돼지, 참고래가 들려있다. 
그들은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용서받기 위해 산신령, 바다용왕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동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바위벽에 그들의 모습을 새겨 놓는다.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조각들에는 그래서인지 사냥의 풍요를 비는 원시인들의 마음과 주술과 제의를 받고 부활한 동물들의 쩌렁쩌렁한 기상이 산과 동해바다를 뒤덮는다.

이처럼 자연, 유물, 사랑같이 변하지 않는 가치들로 행복을 추구할때 우리마음은 지금 당장 행복을 느낄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머리가 커질수록 미래의 안락함을 위하여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려 하고 돈, 명예, 물질, 사람들의 인정같이 가변적인 것들을 추구하며 살게 된다.

그러다보면 순간순간의 소확행을 누리다가도 그때는 의식을 못하다가 그것을 되돌아 볼 때에만 갑자기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다.

《바다로 간 공룡》은 아이들에게 변하지 않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 순간의 행복을 느끼도록 도와줄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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