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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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동물이다. 제 안에 다른 동물들을 담고 있으면서 또 다른 동물들, 기슭에 와서 목을 축이는 퓨마와 물수리 같은 또 다른 동물들의 생존을 돕는다. 요컨대 강은 인간보다 오래 살았고 댐과 오염과 수로의 건설을 견뎌내고 어떻게든 계속 흘러간다.'(p. 359)



우리 시대 최고의 자연 작가라는 찬사를 받은 배리 로페즈는 1945년 뉴욕주 포트체스터에서 태어나 2020년 75세의 나이에 암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80개여 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배리 로페즈 사후에 출간된 마지막 에세이 모음집이다. 어린 시절의 담담한 회고와 남극의 빙하와 북구의 산기슭을 오가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과 중국의 산봉우리를 걸으며 길어올린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글은 자연과 장소, 인간과 풍경에 대한 정직하고 탐구적인 질문을 던진다.


p. 17
'주의'라는 단어는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주로 쓰일 때가 많고, 이때 기울인다는 건 '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당신은 주의를 내어주고, 그 과정에서 기쁨과 앎으로 돌려받는다. 배리는 배움을 경건하고 가슴 떨리는 사명으로 묘사했다.


리베카 솔닛의 서문처럼 그가 지닌 인간과 장소를 대하는 특별한 태도가 돋보인다. 인간과 대지가 연결되어 있음을 의식하고 일평생 자신을 사로잡았던 주제에 천착해 글을 써왔다는 것을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소제목 '강'으로 묶인 5편의 에세이가 인상적이었다.


p. 359
강에서는 한밤중 바닥에서 난데없이 달가닥달가락 자갈의 움직임이 들리고, 빗줄기가 수면을 두들겨대는 소리가 들리며, 내리는 눈을 조용히 수용하는 묵묵함이 들린다.


페이지를 넘기고 있노라면 끝없이 이어지는 강의 물줄기와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담백하고 아름다운 표현에 밑줄을 그으며 나의 어린 시절을 겹쳐본다. 집 근처 실개천에서 잡은 올챙이, 유난히 새빨갛던 하굣길 노을, 할머니 집 마당에 놓인 빗물 담는 커다란 고무 대야, 빨랫줄에 널린 색색의 양말 같은 장면. 이런 기억은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아름다움의 조각들이다.

문득 입이 쓰게 느껴진다. 집과 회사를 반복하는 생활 속에 아름다움이 있을까, 작가가 예찬하는 자연의 광활함을 살면서 볼 날이 있을까. 숲과 평원, 사막과 얼음 위를 걷던 그의 시간들은 천금보다 값진 경험일 것이다.

치열하게 사는 만큼, 치열하게 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한 요즘이다. 흘려보내는 시간 속에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반짝반짝 찬란하기를 기대하며.


p. 76
아침이면 우리 지붕마루에 앉아 공기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던 새들을 보며 나는 이해했다. 이들은 빛이 있어 행복하구나. 새들에게는 날개 밑으로 보이는 땅바닥이 밤새 달려졌다고 낙심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무엇을 마주치든 그것이 그들의 비행에서 활기와 아름다움을 앗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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