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통해 유명한 마이클 센델의 또다른 베스트셀러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 안에서는 현재 사회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며 자본과 도덕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난 이 책을 처음 접하였을 때 비슷한 이야기가 나열식으로 되어있다고 들었고, 자본주의에 대해서 나온다고 하여 아무래도 사회나 경제에 관심이 많지 않은 나에겐 흥미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세장을 넘기기 전까진 말이다. 그런데 읽는 순간 의외로 내가 평범하게 접하던 사회 속 이야기, 새치기나 백화점에서 내가 느끼는 심리등 내 흥미를 유발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앞쪽 내용이 내 흥미를 더 많이 유발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난 먼저 앞쪽 내용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거엔 절대 돈으로 매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 가격으로 환산되어 지고 있다. 바로 물질 만능주의의 폐해인 것 같다. 예를 들면 방금까지 내가 계속 언급했던 새치기. 새치기가 과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일까? 살 수 있다. 롯데월드를 가면 매직패스라는 티켓이 있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다들 알 것이다. 이것은 기계에 돈을 미리 더 내고 판매 시간에 맞춰서 사둔 후 나중에 줄을 서지 않고 곧바로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잘 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3시간을 그 놀이기구 하나를 타기위해 기다렸던 수많은 승객들은 겨우 돈 몇푼 더내고 타이밍 조금더 잘 맞춘 그사람에게 앞자리를 넘겨줘야하니 통곡할 따름이다. 하지만 또 잘 못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2시간 기다린 그사람도 그 시스템에 맞춰서 매직패스를 사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만약 기다리는 사람은 돈이 부족해서 그 시스템에 따를 수 없다면? 이 시스템이야 약간의 돈을 더 내는 것이기 때문에 빈부격차의 문제가 발생하진 않을 수 있지만 만약 돈을 많이 내고 이득을 보는 다른 시스템의 경우라면 어떨까? 여기서 돈 있는 사람들은 아무렇치 않게 자신의 이익을 취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소외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물질 만능주의, 황금 만능주의를 야기하게 된다. 모든 것은 돈으로 해결 될거야 라는 생각은 정말 윤리적으로 봤을 때 옳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직업을 택해서 돈을 많이 벌면 되잖아.'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만약 자신이 진짜 원하는 직업을 택해서 그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못버는 직업이라면? 과연 돈을 많이 버는 직업만이 행복한 것은 아닐텐데 그사람들이 잘못 선택하는 것일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직업마다 받는 돈의 양은 차이가 생긴다. 사실 그 돈의 차이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따라 버는 돈의 양의 차이가 나는건 어쩔 수 없다. 적어도 그 차이는 감수하더라도 사회에서 돈으로 사람들이 차별받도록 이렇게 제도를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과연 공평한가 에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사회 공평문제도 문제지만 윤리문제도 아주 심각하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나는 대리모에 돈을 매길 수 있다는 것에도 놀라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정해져 있는 대리모, 대리모는 문제가 아주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그렇다 쳐도 다른나라에선 불법이 아니라 돈을 내고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는곳이 아주 많다고 한다. 그런데 대리모를 통해 낳은 아이는 대체 누구의 아이인가? 그 대리모는 엄마가 아닌가? 수정체의 주인만이 엄마인걸까? 그 아이의 정체성은 결국 이렇게 혼란을 야기한다. 나는 적어도 생명문제 만큼은 금전적인 문제가 개입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그아이는 결국 엄마를 산것이다. 그것도 돈으로 말이다. 나는 돈의 무서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돈으로 무언가를 사고 파는것은 이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 꼭 돈으로 가치를 매기지 않고도, 아니 매겨선 안될 이런 문제에서는 돈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사회에서는 이렇게 금전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들이 잔뜩 있다. 우리는 이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가 그 가치를 매겨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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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리고 아들... 가장 가깝고도 가장 살벌한 사이 바로 부자 지간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가 잘 몰랐던 왕과 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나니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이지만 동시에 서로 싸워야하는 앙숙같은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아들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넘어서야 하는 벽, 바로 그이름 아버지.. 그 이야기가 지금 펼쳐지게 된다.

 나는 이 책 속 여러 왕들의 이야기 중에 태종의 이야기가 굉장히 눈에 밟혔다. 여기서는 태종과 태조, 그리고 태종과 양녕대군의 이야기가 모두 등장하는데 태종은 아들로써도, 아버지로써도 정말 열심히 살았지만 제일 불행하게 산 것 같아서 참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는 그저 아버지께 인정받고 더 칭찬받고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기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아버지인 태조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태조가 죽을 때까지 미움만 받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런 아들의 심리를 잘 아기에 자신의 아들 양녕대군은 좀 더 이해하려 했으나 자꾸 자신과 다르게 어긋나기만 하는 아들을 보는 태종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해보자.

 먼저 태종과 그의 아버지인 태조와의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사실 그는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아버지와 함께 길을 걷고 싶어서 그에게 방해되는 요소를 없애고자 정몽주를 죽였을 뿐이었는데 그것이 악몽처럼 미움받게 된 계기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결국 공신으로 인정받지도 못했을 뿐더러 남들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고 왕위 계승조차 빼앗기게 될 상황인데 과연 난을 일으키지 않고 배길수 있었을까? 나였더라도 억울해서 형제들을 죽이진 않더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심정으로 뭐라도 했을 것 같다. 난 전적으로 태종이 공감되기 때문에 더욱더 그의 감정이 이해가 간다. 태조는 그 이후로 태종을 더 멀리 했지만 그런 비극을 낳은 것도 다 태조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태조는 궁궐을 떠나서 함흥차사라는 말을 만들어 낼 정도로 고집스럽게 태종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는데 어쩜 아버지가 이렇게 매정할 수가 있는건지 이것도 다 시대상 때문일까.. 그들이 과연 왕과 왕자가 아닌 그저 21세기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이었다면 태종 이방원은 진짜로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똑똑한 아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집 아빠와 동생도 서로 사랑하지만 늘 으르렁 대서 그들이 21세기 평범한 가정에서 살았더라도 싸웠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비극은 안만들어졌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가슴아픈 이야기 인것 같다. 태종은 아들복이라도 있었더라면..물론 세종대왕이 그를 그나마 행복하게 해주었다만.. 그래도 그가 그렇게 노력을 쏟아붇고 봐주고 잘 지내려고 했던 양녕대군이 태종의 기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태종의 여생은 행복했을텐데... 그 이야기 속으로 한번더 들어가 보자..

 양녕대군은 태종의 첫째 아들로 태종은 세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자신처럼 왕자의 난을 만들고 싶지 않아 첫째아들을 당연스럽게 왕세자로 삼았고 정말 왕자의 자질이 있다고 믿고 최대한 지원해주며 노력했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양녕대군은 자꾸만 태종의 눈밖에 나는 짓만 하는데.. 그래도 태종은 자신의 아픈 경험을 생각하며 양녕대군을 감싸고 보호해주려는게 눈에 보였다. 정말 나였다면 진짜 아버지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을텐데 어째서 그렇게 자유로운 건지 태종이 정말 속썩는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세종대왕님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양녕대군과 태종은 정말 최고의 앙숙인 것 같다. 이둘은...아마 21세기로 넘어와도 서로 으르렁 대며 싸우는 부자가 되었을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이 라이벌이란 말은 딱여기서 들어맞는 것 같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사실 시대나 신분이 달랐다면 그들의 처지도 좀 달라졌을까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시간이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와 아들의 처지는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하다. 그들이 어땠을진 알 수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아들과 아버지는 결국 서로를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 바로 그것이다. 서로 사랑하기에 더 싸우고 더 기대하고 그런 것이겠지. 이 책을 읽으며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않는 흥미로운 생각을 많이 하게 된것같다. 참으로 값진 시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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