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각법 -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의 물음표 사용법
정철 지음, 김파카 그림 / 블랙피쉬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철을 처음 접한 것은 꽤나 오래전 영풍문고의 신간 안내 좌대였다. 무심코 집어 들어 첫 페이지를 넘겨본 후, 자리에 서서 수십 페이지는 읽어 내려갔을 게다. 아마도 <불법 사전>이라는 묘한 제목의 책이었으리라.


깔끔하고 재치가 넘쳐나는 존버 이외수의 글 같았고, 피식 헛웃음이 튀어나오는 것은 전유성도 닮았었다. 배고픈 철학자의 입에서 나오는 깊이와 울림이 넘쳤다. 신선 (神仙)처럼 내뱉는, 그의 말은 신선 (新鮮) 했다. 팔딱팔딱 꼬리를 흔들며 움직이는 글이었다.




그 후 그의 책을 오타쿠처럼 읽으며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책이 서재에 나란히 꽂혀 있다. 무려 13권이. 이제 또 한 권이 추가되었다. <사람의 생각법>이라는 이름의 책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의 물음표 사용법'이라는 아주 긴 부제의 책이다.


지금까지의 글과는 조금 달랐다. 낯설었다. 조금은 정철답지 않았다. 그의 글의 가장 큰 특징은 짧고 간결하다는 것이다. 묻고는 바로 답을 건네는 즉문즉답의 글이었다. 질문은 어려웠지만, 답은 알딸깔센했다. 그러나 이번 글은 그 반대였다. 질문도 답도 쉽지 않았다.


이번 글은 단편 소설에 가깝다. 아니, 장편 (掌篇) 소설이다 (사실 그의 첫 번째 작품은 소설이었다. 그는 대학교 시절 소설로 대학 문학상을 받았었다). 그의 호흡은 조금은 더 길어지고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말을 건넨다.


유튜브처럼 조그마한 카메라를 들고 세상의 풍경들을 관찰한다. Moving Essay이다. 그러곤 계속 무언가를 던진다. 짱돌도 저히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를 밀고 굴리기도 한다. 그 돌들은 굉음을 내며 굴러떨어져 조각나며 수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마치 유대인의 교육법이라는 '하브라타'의 정철 버전을 보는 듯하다. 목차를 펴면 모든 글에는 물음표로 끝난다. 물음표는 묘하게도 귀를 닮았다. 궁금해서 묻는 것이고, 묻고는 듣겠다는 언약이다.


가장 치명적인 질문은 바로 "왜?"이다. 이 질문 앞에 서면 누구나 작아지고 적어진다. 기존의 믿음과 가치를 뒤집어엎는 단 한 글자 앞에서는 말이다. 모든 것을 전도 (顚倒) 하고 뒤집어엎는 도전 (挑戰)의 말이기 때문이다.


정철은 '관찰자'에서 '해설자'로 '주해자' 로 변신한다. 너무나 많은 일인 다역의 역할을 해낸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재료 삼아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글쟁이들 특히 시인들이 사물을 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풍경이란 글의 재료이자 사유의 시작이다. 그것이 바로 상상력의 시원 (始原)이다.


이번 글 또한, 굳이 인공 지능 시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가 계속 써 왔던 - <나는 개새끼입니다> 단 한 권을 제외하고는, 사실 이 책도 한 사람에 대한 책이었지만- '사람'에 대한 것이다. 사람다움, 사람처럼, 사랍답게 살기, 생각하는 사람 되기, 변함없는 주제에 여전히 천착한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사람답게 살자는, 사람으로 살자는, 소박하지만, 가장 어려운 주제를 놓지 않는다.

다음은 어떤 내용의 책일까. 분명한 건 사람 냄새 물씬나는 책일 것이라는 것. 이번에는 소설ㅡㄹ 기대해보아도 될까.



기억하고 싶어 밑줄을 그은 문장들을 다시 되새김해 본다.


나의 유효기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일까.

기저귀를 차는 순간부터 수의를 입는 순간까지일까. 언제까지일지는 나도 모르지만 언제부터인지는 알 것 같다. 누군가의 품에서 벗어나 나로 설 때부터. 나로 살 때부터 38쪽


뻔하지 않은 답은 어떻게 구할까. 상상을 하는 거다. 상상하는 방법은 다시 질문이다. 뾰족한 질문으로 머리를 콕콕 자극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며 꽤 싱싱한 답을 건질 수가 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서 질문 다섯 개만 끄집어 내면 글 하나를 뚝딱 써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43쪽


오늘 내가 누리는 모든 편리와 권리는 나 아닌 누군가의 도전과 희생이 내게 선물한 것 50쪽


당연한 모든 것은 당연하지 않다. 하늘 아래 당연한 게 있다면 그건,

당연한 모든 것은 당연하지 않다는 문장뿐이다. 59쪽


나는 ''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순도 높은 일체감 같은 걸 느낀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그깟말 하나가 묘한 위로가 된다는. 61쪽


포기하고 싶다는 건 거의 다 왔다는 신호다 77쪽


설마가 멸망하는 날 인류도 함께 멸망한다 127쪽


전설을 만드는 건 외로움이었다고 168쪽


새에게 잡혀먹히지 않는 벌레는 공부벌레뿐이다 178쪽


거울 속의 내가 거울 밖의 나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도 주인으로 살았니?"

"질문 고마워. 내일 또 물어 줘" 188쪽


남자는 들먹들먹 어깨로 운다슬퍼서 울거나 아파서 울 땐 어깨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억울해서 울 땐 누구나 어깨로 운다. 남자에겐 한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 말을 재주는 한 사람 "누가 뭐래도 나는 너를 믿어" 나에겐 한 사람이 없더라도 내가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어 둘 수는 있지 않을까. 누가 뭐래도 나는 너를 믿어. 이 한 마디가 나의 입에서 나와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게 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눈으로 울어도 좋고 입으로 울어도 좋고 코로 울어도 좋은데, 어두운 골목에 홀로 서서 어깨로 우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213쪽


세상에서 자장 따뜻한 말은 무엇입니까? 집에 가자.

그다음 따뜻한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 집에 가자 22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