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다 보면 저자가 지은 글들은 여러 모습과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느 글에서는 맛과 솜씨와 멋이 느껴지고, 한없는 깊이도, 경계 없는 넓이도, 그윽하고 짙은 향기도, 지극한 아름다움도 느껴진다. 이로 인해 작가들은 어쩌면 독자들에게 글에 대한 경외심과 아울러, 글쓰기에 대한 좌절과 절망과 모멸감까지 부여하기도 한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글쓰기의 한계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소위 시중에는 자칭 타칭 방귀 좀 뀐다는 글쟁이들이 많지만, 이 모든 특징을 갖춘 글쟁이들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깊이만 있거나, 넓이만 있거나, 맛만 있거나, 멋만 있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마도 김찬호는 이 모든 특성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글쟁이 중 하나일 것이다.
항상 그의 관심은 (사회학자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사람'을 향해있고, 그것도 제대로 된 '사람'과 그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 현미경과 망원경을 가져다 댄다. 그의 책을 10여권 읽어 본 나로서는, 이제는 그가 하는 '말'들이 식상할 수도 있다. 그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멈춤, (자기) 성찰, 통찰, 반성, 깨어있음, 돌봄, 이웃, 연대, 연민, 바라봄, 돌아봄 등이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그가 새 책을 출간할 때마다 업그레이드 되어 힘을 더한다. 그가 택한 주제들은 깊고 묵직한 반향을 던져주기도 한다. '생애의 발견'이, '모멸감'이 그러했고, '유머니즘'과 '대면 비대면 외면'이 그러했다. 시대가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시의적절하게 어루만지고 감싸 안는다.
그는 언어 연금술사이다. 사회학 교수가 여느 글쟁이 보다 잘 쓰고 어휘를 잘 선택한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반드시 그곳에 위치해야 할 그 단어들이다. 대체 불능한 단어를 골라 쓴다. 여느 산문집보다 글솜씨가 빼어나다. 칼럼이 아닌 에세이를 읽고 있는 듯하다.
그는 진정 현대판 간서치 (看書痴) 이다. 다독은 물론 다양한 매체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한다. 어쩜 그는 지식과 지혜를 저금하는 성실한 예금주이다. 시, 에세이, 심리학, 사회학, 논문, TV, 영화, 신문 등 그의 관심의 레이더의 주파수는 강하고 넓다. 그러니 그의 글의 깊이와 넓이는 깊고 넓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잘 버무린다. 글맛과 글멋을 벼리고 빚어낸다. 목소리는 크지 않고 읊조리지만 그 울림은 크고 폐부를 찌른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