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책에서 주장하는 일관적인 메시지는 '관점'이다. 질문의 과녁을 바꾸자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다시 돌아보고,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에 주목하라고 채근한다.
그이기에 가능한 질문이자 화두이다. 한국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경계인으로서 한국과 서양의 도시를 이야기한다. 그의 사고의 흐름은 여행에서도 출발한다.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자신의 원래 모습을 남처럼 타자화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너무 익숙해서 잘 안다고 믿는 의식에 대해 태클을 건다. 절대성에 대해 회의하고 상대성에 대해 논한다.
한국의 도시는 '인간은 선하고 믿을만하다'는 것과 실상은 도덕과 윤리에 짓눌려 교육되고 선도되어야 하는 하등 국민을 만들었다고 한다. 반면 서양의 경우는 시스템적으로 하등 국민이 되는 것을 막는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질서를 '지킬 수밖에 없도록'유도하기 위해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도시 전략을 수립했다고 말한다. 시스템이 동서양 도시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단한 관찰가이다. 신호등의 위치에서, 오페라극장과 영화관 그리고 세종 문화회관과 국회의사당 구조에서 동서양 사고의 차이를 설명한다. 묘지가 소재한 장소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것과 죽음에 대한 의식을 이야기한다. 풍수와 남향 선호의 한국 아파트에서 물질화된 그리고 폐쇄된 아파트 문화를 꼬집는다. 온돌 문화의 우수성이 아닌, 모순적 온돌 문화 (침대를 사용하는 한국인)를 꼬집는다. 노래방으로 상징되는 사적 공동체 문화, 밀폐된 집단 선호 의식을 읽어낸다. 마을이 사라졌음이 도시인의 외로움의 원인이라는 학자들의 말에 일침을 가한다. 마을이라는 것이 우리끼리의 배타적인 공간이라고.
공간 심리학으로 사회 원심력과 구심력을 이야기한다. 공간의 소유권과 주도권과 관리권을 말한다. 공간에 대한 감정과 애착심과의 차이를 풀어낸다. 관리에 용이한 (관리자의 관점에서 출발한) 공간 배치와 사용자의 관점에서의 공간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느껴지고 보이는 공간을 이야기한다.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은 항상 거시적인 그리고 멋들어지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한다. 읽고 나면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게 힘든 건데"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임우진의 경우는 아주 독특하다. 섣불리 솔루션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도시라는 것은 함부로 부수고 새로 건설할 수는 없기에. 하물며 재건축도 불가능한 것이기에.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Nudge 한다. 그중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도시의 사막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힌트를 제시한다.
프랑스 시골 마을 디에볼샤임에서 독일군과 연합군에 의해 설치됐던 지뢰 제거 작업을 하면서, 주임신부였던 웬들링은 지뢰가 하나씩 제거될 때마다 그 장소에 꽃을 하나씩 심자고 신도들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자신이 손수 심은 꽃이 전쟁의 아픈 기억을 잊게 해 주는 직접적인 경험 한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행동이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꽃이 지뢰를 대신하게 한 것이다. 이를 이용하여 프랑스는 콩쿠르라는 도시의 아름다운 꽃 가꾸기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우리처럼 경쟁에 민감하고, 부동산 가격에 민감한 국민이면 꽃을 가꾸는 아름다운 도시 등급을 부여하면 아파트 가격 상승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만드는 주춧돌이 되지 않을까?
유현준 교수는 이제 용맹정진해야겠다. 여기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