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밤을 가로질러 - 밤, 잠, 꿈, 욕망, 어둠에 대하여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어둠은 전체로서, 또한 밤으로서 매일 사람들을 품는다. 사람들은 어둠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밤을 통해 비로소 생겨나며 그런 다음에 밤을 통과해야 한다. 한편으로 밤에 익숙해지고 밤의 실종을 방관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밤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


  나는 밤을 여러 가지 의미로 좋아한다. 나는 일찍 일어나는 것 보다 늦게 자는 게 쉽고, 무슨 일을 하던지 밤에 능률이 올라간다. 밤은 공부를 하기에도, 놀기에도 좋다. 그리고 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건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인이 그럴 것이다. 낮에는 해야 할 일이 있지만, 밤은 내 삶을 산다. Work-Life Balance의 Life에 해당하는 시간은 밤이다!

 저자는 지구과학적인 밤, 물리적인 어둠에서 시작해 인간의 밤과 어둠(악), 과학의 밤, 심지어 도덕의 밤까지 매끄럽게 다루고 있다.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어둠'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가 '어둡다'고 느끼는 '검은색 감각'은 빛의 부재인가? 아니면 검은 빛 그 자체인가? 우주가 무한하고, 무한한 우주에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빛나고 있다면 왜 밤하늘은 밝게 빛나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에 이끌려 다니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다시 밤, 어둠, 무의식 그 자체를 보게 한다. 이 책의 1장을 읽은 날, 매일 당연하게 돌아오는 어두운 밤이 새삼 특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요컨대 검은색은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내가 추측하기에 모든 사람은 이 사실을 느낀다. 아마도 그래서 검은색이 우리에게 이토록 매혹적일 것이다.

 그리고 6장(자연과학의 밤 측면)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교에서 과학사를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합리적 사고와 이성만으로는 과학이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모든 것을 가진 후에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말한 솔로몬이 떠올랐다. 과학의 두 측면인 "톱니바퀴들처럼 맞물린 논증들과 강한 확실성을 갖춘 결과들을 내놓는" 낮 과학과, 단지 어렴풋한 직감, 어스름한 예감으로" 머물다가 순간적이고 우연한 통찰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밤 과학을 설명하고 밤 과학의 업적과 중요성을 알려준다.

생각의 논리적 측면을 발달시키는 것과 더불어 영혼의 몽상적이며 매혹적인

밤 측면과 거기에 딸린 온갖 감정들을 수용하고 다루는 것을 포괄적인 인간 교육과

교양의 한 부분으로 삼는 방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런 교육을 통해서

인류는 자신에게 맡겨진 것과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더 책임감 있게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이 썼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넓은 지식과, 시적이면서도 논리적인 문체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한 때 감정적인 것은 성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내게, 내면의 중요성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일깨워 주었다. 조만간 한 번 더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 차별과 혐오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나카노 노부코 지음, 김해용 옮김, 오찬호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당연시되어온 수많은 차별과 혐오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시대이다. 지역 간, 세대 간, 성별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나 또한 많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왔을 것이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을 골랐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일본어 제목을 번역해보니(ヒトはいじめをやめられない) '사람은 이지메를 그만둘 수 없다' 라는 뜻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예상했던 집단 간 차별/혐오/갈등이 아닌 '집단 내 괴롭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작가는 집단 괴롭힘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프리라이더(free rider, 무임승차자)를 간파하는 기능을 '배신자 색출 모듈', 제재 행동은 '생크션(sanction)'이라고 하는데, 생크션은 집단을 이루면 반드시 나타납니다. 동료를 지키고 사회성을 유지하려는 '향사회성(向社會性)'의 표출이기 때문이죠.(29-30p.)

 누구나 집단 괴롭힘은 나쁜 행위이며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집단에 속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향사회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집단에서 일탈한 사람은 배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죠. 그래서 사이좋은 집단일수록 집단 괴롭힘이 쉽게 발생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41p.)

 

 그 후, 집단 괴롭힘을 인간의 의지로 그만둘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동료의식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 (부족할수록) 불안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 집단 괴롭힘을 통해 쾌락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그 이유가 된다. 

 3장에서는 여러 형태의 집단 괴롭힘을 뇌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이 부분부터 나에게는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집단 괴롭힘은 신체적 특징뿐 아니라 인품이나 성격처럼 내면적인 면에서도 피해자 유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더라도 집단의 화합을 와해할 만한 언동을 일삼는 사람, 진지하고 옳은 발언이지만 모두가 즐거워하는 분위기에 본의 아니게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흔히 말하는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사람이죠. (74p.)
 특히 학교처럼 장기간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곳에서는 사이가 좋은 친구나 교사까지도 집단 괴롭힘을 대할 때, 앞서 말한 것처럼 당하는 사람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위험합니다. (75p.)

 

 맞는 말이다. 당하는 사람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작가가 위험하다고 얘기한 그 현상(피해자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본인에게서 나타난다. 앞뒤가 안 맞을 뿐 아니라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는 발언이다. 이와 비슷한 발언이 4장에서도 이어진다. 4장의 부제는 '차별과 혐오로부터 를 지키는 법'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가능한 한 질투심을 품지 않도록 유사성과 획득 가능성을 낮추는 것입니다. 유사성을 낮추는 방법 중 하나는 외모나 말투 등에서 젊음과 여성스러움이 덜 느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죠. 애교 섞인 목소리는 나이 어린 티를 낸다고 생각해 동성에게 반감을 사기 쉽습니다. (124p.)

 

 물론 4장의 대부분이 질투와 개인의 변화에 대한 내용인 것은 아니다. 어른/어린이/교육현장 각각에서 집단 괴롭힘에 대처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어른의 경우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외모나 말투, 대화 방법을 바꾸고, 어린이의 집단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급 내에 집단이 형성되지 않게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거나 아예 집에서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것을 제안한다. 또한 집단 괴롭힘은 사각지대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학교 내에 CCTV를 설치하고, 여성 상담사는 초등학생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을 제압할 수 없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강인해 보이는 사람이 학교를 순찰하도록 하자고 이야기한다......(166p.)


 마지막으로, 작가가 일본인이라는 사실로 인해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했지만 일본의 제국주의가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대목이 있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의무 교육은 전쟁 전에는 강한 군대의 밑거름이 되었고, 패전 후에는 고도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생략)… 이런 문화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최대한 남의 시선을 끌지 않고 눈치를 보며 살다가 누군가 튀는 행동을 하면 다 같이 공격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생략)…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의견을 말하는 걸 선호합니다. 학교나 사회에서 타인과 다른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의견을 중복해서 말하면 바보 취급을 당합니다. 그런 특성과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 군은 약체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거나 혼자만 살아남으려는 병사가 많아 지휘 계통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하나로 똘똘 뭉쳐 싸우는 건 힘들었겠죠. (146-148p.)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바로 뒤에 구체적이지 않지만 집단 괴롭힘을 없애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서술한 것처럼 모두가 비슷해야 하고 동료의식이 강해서 집단 괴롭힘이 생기는 거라면, 각자의 개성을 살려 균일성이 낮은 집단을 만들면 개인의 목표도 다르고 누가 무임승차를 했는지도 드러나지 않아 제재 행동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애당초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집단을 위해 누가 희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동조 압력도 없어집니다. 한 사람만 다르면 집단 괴롭힘이 생기지만 모두가 다르면 집단 괴롭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148-149p.)

 

 하지만 이 결론을 위해 이탈리아를 예로 든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개성을 살려 모두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한 방법에 좀 더 많은 부분을 할애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초반의 학술적인 설명은 흥미로웠지만, 군데군데 멈칫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더불어 4장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의 대부분이 가해자의 변화가 아니라, 제3자 또는 피해자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제목에서 기대한 바와 너무 달랐기 때문일까.

 사회학자 오찬호의 해제에, '차별의 성향을 뇌 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사람의 비열한 모습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면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 아닌가. 자칫 "원래 사람은 그런 존재이니 어쩔 수 없어"라는 냉소를 조장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는, 차별이 싫으면 단결을 강요 말라는 저 문장("단결이 차별을 만든다")을 읽으며 사라졌다.' 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가 걱정했던 대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책으로 기억될 것 같아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