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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먹어라 - 미친 듯이 웃긴 인도 요리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현수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2월
평점 :
난 인도 음식은 난, 커리, 탄두리 치킨밖에 모른다. 그래서 책 소개에 이런저런 음식이 나열되어 있는데 거기서는 별 감흥이 없었다.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작가가 피곤에 찌든 불평쟁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내가 여행기를 잘 안 읽는 이유는 굉장히 이질적이고 괴리감 느껴지는 긍정의 기운 때문이다... 특히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여행을 가는 스타일이 절대 절대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은 좀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선택은 맞는 선택이었다. 내가 읽어본 여행기중에 제일 불평이 많고 걱정도 많은 사람이 쓴 여행기다. 솔직히 같이 여행가고 싶은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 너무 재밌다. 필력도 너무 좋고 번역도 너무 찰지게 됐다. 내가 서평 제목을 저렇게 지은 이유도 이 책의 문체 때문이다. 정말 딱 저런 느낌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내가 읽은 책 중에 그나마 망ㅁ에 와닿았던 것은 ㅋ릐스토퍼 해밀턴의 중년(Middle Age)이었다. 내용이 어찌나 절망적이고 음울한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엔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32p.)
"내가 우리 집 20마일 반경의 살균 손소독제를 몽땅 사들이는 동안 리센은 인도아대륙에서 보낼 석 달의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아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며 유용한 제안들을 던져봣지만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까였다."(37p.)
"여기 와 있으면 이 많은 사람이 조용히 숭배하는 모습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중 대부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일생에 한 번뿐인 순례를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 틈에서 짜부가 돼버렸다."(83p.)
취향에 따라 글이 가볍다고 느낄 수도 있으려나...? 나는 생각지 못하게 훅훅 들어오는 문장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작가를 눈여겨 본 적은 있어도 번역가를 눈여겨 본 적은 없었는데, 이 책은 번역가가 정말 큰 몫을 한 것 같다. 영어로 읽으면 또 어떤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문장이 된 건 번역가의 공도 클 거라고 생각한다. 옮긴이는 자기만의 방, 피어 래빗의 정원, 아이는 책임감을 어떻게 배우나, 미라클 모닝 등을 번역한 김현수 씨라고 한다.
재미있지만 아쉬운 점을 굳이 찾자면, 어쩔 수 없겠지만 결론이 약간은 진부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비판적인 무신론자가 요가를 배우고 나서 명상을 통한 초월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앞부분과 뒷부분만 떼놓고 보면 다른 책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뭐 여행갔다와서 '이 나라는 쓰레기같으니 설사병에 걸리고 싶지 않으면 가지 마세요'라는 결론을 낼 순 없을테니... 이해는 한다.
'인도를 여행하며 각 지역의 흥미로운 레시피를 발굴하고, 음식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다음 그들의 삶, 조국, 역사에 빛나는 통찰력을 버무려 넣은 책, 그러니까 일종의 음식 사회 인류학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는데, 정말 인도의 역사나 종교에 관한 내용도 심심치않게 들어가 있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내용은 없어도 됐을 것 같다. 무굴 제국, 힌두교 이런 내용은 전혀 모르기도 하고 이 작가는 음식 얘기를 하거나 극단적으로 궁시렁궁시렁거릴 때가 제일 재미있다. 한, 중, 일의 음식과 문화를 비교 탐험하는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는데 그것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