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2가지 충격 실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이지윤 옮김 / 갤리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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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형법 전문 변호사라고 한다. 뒷표지에 있는 추천의 말은 '정의라는 미명하에 사람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선과 악의 개념이 얼마나 미숙한지 분명히 밝히고 있다.', '12가지 운명을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로 함께 엮어 500페이지짜리 소설보다 감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나는 둘 다 동의할 수가 없다.

일단은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책의 표지에는 '12가지 충격 실화'라고 쓰여 있는데, '12가지 충격'까지는 맞지만 100% 실화인지 의문이 든다. 물론 범행 수단, 판결 등 큰 가지는 사실이겠지만 너무... 살을 많이 붙인 느낌이 들었다. 필력은 좋다.

마지막 한 개를 제외하고, 변호사의 입장에서 보고 느낀 듯한 문체가 아니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이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고 어쩔 때는 자극적이다. 손으로 욕구를 풀어주었다느니, 나흘 만에 잠자리를 함께 했다느니 이런 사건이 해당 인물의 심리 묘사에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같이 서술된다. 이 책이 '실화'라는 타이틀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차라리 덜 신경쓰였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남궁인 에세이도 몇 년 전에 읽어보다가 자극적으로 묘사해서 케이스를 소비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도중에 내려놓았었는데 그 때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좀 자극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숨기고 쉬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묘사를 통해서 정말 하고자 하는 말(ex. 이러한 법이 존재하는 게 정말 옳은가?)이 힘을 얻는다면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정작 본론은 별로 없고 묘사의 비중만 큰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내가 이 책에 기대했던 건 현재 어떤 조항이 있고 그 조항이 어떻게 악용되었는지를 설명한 다음에 이러한 법이 과연 옳은지 의문을 던져주는 전개였다. 그런데 사건 얘기만 실컷 하고 나서(그마저도 당사자가 연루된 사건보다도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어땠고 상경해서 무슨 일을 얼마동안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반을 차지한다) 마지막 페이지 아랫부분에 그 에피소드에서 적용된 법 조항이 정말 작게 한두 줄 쓰여 있다.

   

 

생각하고 싶어서 읽는 책이 아니라 그냥 시간 때우기용이라면 괜찮은 책이다. 몰입도 잘 되고 금방 읽힌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거랑은 많이 달라서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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