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 - 직접 만나서 들은 여성 과학자들의 생생하고 특별한 도전 이야기
막달레나 허기타이 지음, 한국여성과총 교육홍보출판위원회 옮김 / 해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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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책에서 밀드러드 콘은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에 가는 것을 고려했지만 주저하고 있던 유명한 물리학자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의 아내는 남편에게 아인슈타인의 조언을 들어 보라고 설득했답니다. 그래서 그는 아인슈타인에게 갔고,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대요. "나는 과학자가 먼저고 유대인은 그다음입니다."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과학자가 먼저고,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면 여성 과학자가 두 번째입니다." (169p.)

처음 제목을 보고 예상했던 바와 다르게, 책은 전반적으로 인터뷰 형식이 아니었다. 작가가 책에 서술한 과학자들과 실제로 대화해보지도 않고 썼다는 건 아니고, 일단 해당 인물에 대한 성장 배경이나 전공, 연구 내용에 대해 저자가 서술한 다음 해당 인물의 발언을 필요에 따라 인용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세 장으로 나누어 1장은 부부가 함께 활동했던 과학자, 2장은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 과학자, 3장은 고위직에 오른 여성 과학자를 다룬다.

각 인물의 연구에 대해 굉장히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고 양이 방대하다. 페이지 수가 600쪽에 가깝다. 밀드러드 콘의 말처럼 이 책은 과학자로서의 성과와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에 대해서 공평하게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독자가 인문계나 사회과학 계열이라면 진입장벽이 높을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자연계열이라고 해서 모든 내용이 이해가 됐다는 건 아니다^^ 분야가 다양한데도 너무 상세하고 전문적으로 설명되어 있어서 '헝가리어를 전공한 사람이 이 책을 번역하려면 굉장히 애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여성과총(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교육홍보출판위원회에서 옮겼다고 한다. 옮긴이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과반수가 의과대학교수였다.

저자가 여성 과학자들을 인터뷰한 시점은 1999년쯤에서부터 2013년까지 긴 시간에 걸쳐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책에서 '물 새는 파이프라인(leaky pipeline)'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학문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매 단계에 여성의 비율이 감소하는 사실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한다. 책에서는 몇 십년 전 유럽의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는 여성의 비율이 2~30%였던 때가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석사, 박사, 교수로 올라가면 어떨까? 나는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국내 통계 자료를 굳이굳이 찾아보았다. 학사 통계는 찾을 수 없었지만, 2016~2018년 자연계열 신규 석사 취득자는 여성이 56.1%였다. 같은 기간으로 봤을 때 신규 박사 취득자는 49.1%. 이공계 대학 소속 교원 직급별 승진 현황을 봤을 때는 2015~2017년에 조교수/부교수/정교수로 승진한 사람들 중 여성의 비율이 17.7%였다. 물론 작년에 박사를 취득한 사람이 올해에 바로 교수 승진 통계에 포함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건 안다. 그렇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는 건 사실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물 새는 파이프라인, 유리천장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책의 끄트머리에 옮긴이와 저자의 인터뷰에서, 저자가 모든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무엇이 가장 어려웠냐고 물어보았을 때, 모두가 예외 없이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한다. 연구와 가정생활을 양립하는 것이었다.(결혼한 사람에 한해서겠지만) 몇 십 년 전 활동했던 과학자들의 대답인데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게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

저자가 젊은 여성들에게 무슨 조언을 해 주고 싶냐고 물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포함해 모든 편견에 맞서야 한다고 대답한 사람도 있었고, 연구하는 삶이 정말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교육이나 언론, 사업 등 다른 길도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한 사람도 있었다. 저자는 여러 상황을 솔직하게 다루었으니 부담 없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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