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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의 거짓말 - 여성은 정말 한 달에 한 번 바보가 되는가
로빈 스타인 델루카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10월
평점 :
대학교 4학년 때, 보건통계 과목을 수강하며 생리전증후군과 커피 섭취량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인용했던 논문에, 월경전증후군은 '학교나 직장에서의 불편이나 업무상의 능률저하, 여성의 사회참여나 활동에 큰 장애요소(1987)이자 일부 여성들의 심각한 건강문제로 야기되며 여성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사회 경제적인 손실을 가져오는 질병(1997)'이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이러한 학술 자료들은 지금까지 '많은 여성이 한 달에 일주일 이상 감정적이고 무능한 존재가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데에 일조했다. 물론 저 문장들이 쓰여진 이후로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과연 지금은 그 때와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겠지만 호르몬 신화는 여성이 비이성적이라는 고정관념을 조장한다. 그 결과 우리는 무시를 당한다. 호르몬 신화는 여성이 겪는 정상적인 생물학적 변화 과정이 일종의 질병이므로 치료를 요한다는 발상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과도하고 값비싼, 때로 해롭기까지 한 '치료'를 초래한다.
이 책은 크게 생리전증후군/임신/산후우울증/완경에 관한 오해와 그로 인해 여성이 실제로 받아온 피해를 다루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성이 호르몬으로 인해 비이성적이고 무능해지는 시기'라는 오해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러한 통념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잘못되었다(조사 방법, 조사 대상 선정, 대조군의 유무, 결과의 해석 등 여러 방면에서)는 근거를 제시하는 데에 굉장히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참고문헌 미주 분량만 40쪽에 달한다.
특히 내게 기억에 남는 내용은 학습의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아스피린을 이용한 연구를 예로 들었던 부분이다. 생리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학습한 여성은 생리 주기와 관련하여 불편한 신체 증상을 호소할 가능성이 더 크고, 생리전증후군이 있다고 '믿는' 여성은 자신이 실제로 생리전증후군을 겪는다고 '잘못 이야기할' 가능성도 높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시행했던 조사에서 생리전증후군의 인지 정도와 생리전증후군의 유무 사이에는 통계적 유의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었기에, 그 동안 나 자신도 생리전증후군을 겪고 있으며 생리가 전반적인 컨디션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의심하게 되었다.
자신의 건강을 두고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려면 여성에게는 정확한 정보와 확고한 과학적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호르몬 신화가 우리에게 행사한 지배력을 극복해야 한다.
저자는 생식 주기에 따른 신체적/정서적 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해치는 불필요한 호르몬 치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분노와 감정 변화에 있어서 호르몬을 면죄부로 이용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생리전증후군을 포함해 이러한 면죄부가 제공하는 혜택은 단기적인데다 크나큰 대가 또한 따르기 때문에, '호르몬 때문이야'라고 말하기보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 감정과 입장을 표명하자. 화내도 되고, 싸워도 된다.
나는 책에서 다루는 생리전증후군/임신/산후우울증/완경 중에서 한 가지만 경험해봤기 때문에 생리전증후군에 집중해서 서평을 썼지만, 책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네가지가 비슷하다. 그래서 연령대에 상관없이 여성들이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한다. 모든 사람이 사회적인 학습과 강요를 구별하고 의심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조금 더 빨리 변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