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곧 외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로움과 타인의존재는 관련성이 없지 않다. 관계가 형성되면 나는 타인과 섞이고동시에 확장된다. 외로움은 무균, 증류수 같은 결정(潔淨)적이고 결정(結晶)적인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 관계는 그 단단함과 순결성을서서히 무너뜨린다.
사랑한다는 것은 약점이다. 사랑이 내 몸에 거주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연결되고 싶은 욕망은 지옥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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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인생도 피해 경험이 없는 경우는 없으며 동시에 평생 피해자인 사람도 없다. 피해는 상황이지 정체성이나 지칭이 될 수 없다. 타자화는 나를 기준으로 타인을 정의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내용의 호오가 본질이 아니다. 어머니 숭배와 ‘창녀‘ 혐오는모두 남성 사회의 판타지다. 섹슈얼리티를 기준으로 여성을 이분하여 시민권 박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남성은 ‘아버지와 남창‘, ‘곰과 여우‘로 구분되지 않는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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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간은 무의미 속에서도 살지 못한다. 다만, 탐욕스러운 데다 멍청하기까지 한 호모 사피엔스의 우월감이 만고(萬苦)의 근원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지구의 유일한 인식자(knower)라는각은 스스로 만든 망상이다. 백번 양보해서 ‘생각하는 동물‘이면뭐하나. 문제는 무엇을 생각하느냐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찰나를 사는 먼지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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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경험을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배려한다. 그래서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는 분열된다. 또 분열되어야만 한다. 모든말하기, 글쓰기가 협상인 이유다. 원래 이 자아분열 개념은 나치학살의 생존자들이 자기 경험을 믿어주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자아를 조정하는 고통에서 발전했다. 지금은 모든 담론 행위에 공통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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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개인의 마음 상태가 아니라 구조적 권력 관계다.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피해자의 분노는 관리나 통제의대상이 아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타인에 대한 헤아림, 깊이 있는 지성의 영역에 놓여져야 한다. 나는 용서와 평화를 당연시하는 사회에 두려움을 느낀다. 2차 폭력의 주된 작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아이의 죽음보다 더 잔인한 사건은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용서와 치유라는 당위다. 사람들, 심지어 남편조차 피해자가 조용히 하기를 원한다. 가해자와 사회는 자신이 져야 할 짐을피해자의 어깨에 옮겨 놓고, 불가능을 감상한다. 평화가 할 일은그 짐을 제자리로 옮기는 고된 노력이지, 평화 자체를 섬기는 것이아니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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