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잡영 - 이황, 토계마을에서 시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장세후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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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이사를 꽤 많이도 다녔다.
부모님께서는 기억에도 없는 내 꼬맹이 시절,
없는 형편 탓에 이곳저곳 옮겨 다녔다고들 하신다.
기억나는 우리 집만 해도 10곳이 넘는다.
잦은 이사 탓에 추억은 잔뜩 있는데, 그걸 함께 나눌 친구가 적다. 우정의 깊이도 얕다.
그래서 내 꿈은 오래토록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가지는 것이다.

나는 도시를 지독시리 싫어한다.
엎치락뒤치락 경주하듯 달려가는 자동차들,
콩나물시루 마냥 사람들로 가득한 출근길
자동차 매연, 담배연기 가득한 도시는 나와는 맞지 않다.
오죽하면 폐쇄 공포증까지 있어 지하철이나 버스,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만 가면
어김없이 식은땀이 흥건하다.
부산이라는 곳에서도 이런데 서울이라면 오죽할까.
아, 나는 인간의 꼬리뼈 마냥, 도시라는 유기체에서 퇴화된 기관이 아닐까?

그저 정처 없이 쏘다니는 것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라면
아무 곳에 털썩 주저앉아 책 읽는 거 좋아하고,
마냥 느리게 걷는 것을 좋아하니
어릴 적 살던 거제도 구석진 동네가 살기에 딱 좋을 것 같다.
그게 나와 퇴계 선생의 유일한 공통점이라고나 할까?

그도 속세의 번잡함이 싫다고 떠났다.
아침저녁으로 자연을 벗 삼고 있노라면 자연히 흥이 올라오지 않았을까?
고향인 토계에는 처리해야 할 공문서도 없었을 것이고,
힘겨루기를 하는 정치인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퇴계 이황선생이 자연 속에서 저절로 흥이 오르니까 한시를 읊게 되었을 것이다.
값비싼 소주나 미주도 필요없을 것이다.
탁주나 농주 한 잔이면 절로 흥이 올랐을 것이다.
그런 주옥같은 한시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퇴계잡영’이다.
이 책을 읽고 있자면 ‘입신양명’을 목표로 했던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번잡한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안분지족을 누리려 했던
퇴계 선생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또한 이 책을 엮기 위해서 이장우, 장세후 교수가 엄청난 노력을 했고,
퇴계 선생의 마음을 잘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것이 눈에 보인다.
바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는
한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볼 만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작은 시간의 여유를 만들지 못해 우리는 병들어 간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런 선인들의 만남을 통해 삶의 여유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퇴계 선생의 ‘퇴계잡영’을 한번 권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아쉬웠던 점
시간을 거슬러 퇴계 선생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남는다.
별색2도로 인쇄된 이 책의 별색이 너무나도 별스러워서,
눈에 거슬린다는 점. 별색이 붉은 색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눈에 많은 피로를 주었고,
디자인 적인 면에서 단조로운 감이 들었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동업자 정신을 가지고서라도 이런 것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중간 중간 본드가 넘쳤는지 책 넘김이 자연스럽지 않은 페이지도 있었다.

그리고 한시의 내용을 한글로 주욱 풀어쓴 부분이었는데,
(빨간색 글씨로 쓰여 있는 강렬한(!)부분)
동화작가가 썼다고 하는데 참으로 사족같이 느껴졌다.
차라리 한시에 대한 배경이라든지,
그 당시 시대상황을 재미있게 풀어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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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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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이 시대는 절망의 시대다.
청년들은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하고 88만원 월급에 눈물 흘리고 있고,
장년들은 아이들 사교육비에 대학등록금에 등골이 휘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언제 일터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시대는 상위 1%만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이다.
민주주의도, 복지도...오로지 1%만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야말로 절망의 시대, 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절망을 희망으로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든 우리에게 힘이 된다.
‘오체불만족’의 오토다케 히로타나의 이야기는
장애라는 벽마저도 뛰어넘은 불굴의 의지를 일깨워주고,
지선아 사랑해의 이지선 씨는 그녀의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절망적인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희망과 용기를 일깨워준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그녀는 대한민국 미술계의 천재이자 괴짜이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죽도록 그림을 그려보자 하는 마음에 미술학원에 등록했고,
거짓말 같이 홍익대 미술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파리 비엔날레 한국대표로도 뽑히기도 했다.
처음본 남자에게 청혼을 해 결혼하기도 하고,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던 그녀.
화가이자 작가, 그리고 동화작가로도 활동했고,
문화 관련 방송 MC도 맡았다가 이제는 암이라는 죽음의 병을 앞에두고 한권의 책을 냈다.
"이 책은 나의 전기다! 이제까지 낸 책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다.
그렇다 이 책 '점선뎐'은 화가이자, 작가, 동화작가였던 김점선의 일대기가 담긴 전기다.



우리 시대의 화가 김점선
'점선뎐'에는 그녀의 파란만장, 엽기만발했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가난했던 그녀의 삶도 녹아있고, 끝없는 열정도 있고, 그녀의 그리움과 외로움도 담겨 있다.
우리는 그런 그녀의 삶을 보면서 희망을 느낀다.
어릴때부터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녀는
학교에선 선생님과 싸웠고, 가정에선 부모와 싸웠고,
화가가 되어서는 대한민국 화단과 대립했고, 혼자 있을 때는 자신과 싸우며 온 인생을 격렬하게 살아왔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잔다르크를 떠올렸고, 체게바라를 떠올렸다.
김점선, 그녀는 자기 삶의 혁명가이다.
이제는 종유석처럼 몸속에서 솟아난 암덩어리와 싸우면서 우리에게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가르쳐주고 있다.

'암은 스스로 돋아난 종유석. 그래서 나는 내 암조차도 사랑한다.
내 삶의 궤적이다. 피곤할 때 풀지 않은 피로가 쌓인 석회석이고,
굶고 또 굶으면서 손상된 내 내장 속에 천천히 새겨진 암벽화다.'

 

그녀의 죽음
그녀의 죽음은 이 책이 나오기 전 알았다.
회사에서 원고를 쓰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적이며 자료를 찾고 있던 중
'화가 김점선 별세'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TV를 통해 그녀의 직설화법을 만나볼 순 없게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작품을 통해, 책을 통해 이 시대의 우리와 소통을 하려한다.
"각자의 삶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그녀의 결핍도, 그녀의 외로움도 그리움도 그녀를 잠식하진 못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삶과 투쟁하면서 자신을 오롯이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들었다.
삶과의 투쟁, 지금 절망의 시대에 우리에게 그녀가 던져준 화두가 아닐까?

 

젊은이들이여 아티스트가 되자.
하지만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투쟁하자!
왠지 체 게바라의 말이 연상되는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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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 선생님들의 이유 있는 도서관 여행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서울모임 지음 / 우리교육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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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때만 해도 나는 도서관을 좋아했다.
나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특이한 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떻게 해서든 집에서는 벗어나고 싶었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고, 가능하다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를 찾았다.
그땐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던 때였다.
모교는 토요일이 돼야 외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월화수목금요일은 꼬박 학교에서만 생활했다.
그야말로 속세를 떠난 스님 신세였다.
TV도 보기 힘들었다. 그저 저녁을 일찍 먹고 잠깐 선생님 몰래 보는 정도였다.
그때는 DMB도, 넷북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학교에 꾸며진 도서관은 내게 천국이었다.
시립도서관 수준의 장서 보유량에 구석에 박혀서 책을 읽을 만한 공간,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그땐 공부는 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만 잔뜩 읽었다.
심지어는 한참 수능을 준비해야 할 고3때도 책만 붙들고 있었다.
내내 책을 붙들고 있었던 보람이 있었는지

모의고사를 치면 언어영역만큼은 만점을 받거나 한두 개 틀리는 수준이었으니 ‘문학소년’ ‘언어영역의 귀재’이런 황송한 별명도 붙었다.
그런데 수탐1이나 수탐2는 젬병이었으니 언어영역이 나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에 대학은 국문과에 진학할 결심을 했고, 요즘도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서관’이란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때부터 나는 도서관이 싫었다.
“대학에 진학해서 내가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한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어폐가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도서관은 공부를 하는 자습실이 아니라 책을 읽고 빌리는 곳이다.
물론 도서관에 책을 대출하러는 자주 갔다.
대학 도서관에서 ‘장정일’을 알게 되었고, ‘기형도’를 알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이곳에서 읽었고,
두꺼운 ‘마르크스 평전’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나는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진 않았다.
모두들 전공시험공부와 취업공부를 위해 도서관에서 ‘열공’하고 있을 때
나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도서관’이 싫었다.


우리 학교의 도서관은 자유롭게 책을 찾고, 읽고,
때로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기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도서관 문이 열리기 전부터 줄을 서 있고,
자리마다 놓여 있는 주인 없는 책이나 가방 때문에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을 공간도 없었다.
그리고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이 맡아 놓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자리주인’이 나타나면 쫓겨나듯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이 싫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서울의 도서관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유럽의 도서관을 다녀와서 책을 냈다.
제목은 ‘유럽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다.
이 선생님들은 유럽의 도서관을 통해서 유럽의 문화와 교육을 읽고 왔다.
그리고 이곳의 도서관을 통해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가늠해보고 있다.
자주 찾아가는 이웃의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이 책은
‘책은 좋아하지만 도서관은 끔찍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이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온 유럽의 도서관은 읽는 내내 너무나도 부러웠다.
하지만 부러우면 지는 거다.
결국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도서관을 가꿔나가면 되는 것이다.

 

최근에 읽은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에 ‘우리 아이들이 공교육의 인질’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아이들은 자꾸만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고, 자꾸만 변하는 교육정책에 아이들은 교육부의 실험쥐가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교권이 추락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교육은 이뤄지진 않고 있다.
하지만 학부모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다른 대안은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아이들은 공교육의 인질이 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희망을 찾고자 한다.
우리나라 각지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재고되고 있고, 덕분에 많은 변화가 있다.
어린이 도서관이 속속 지어지고 있고, 내가 살고 있는 부산만 해도 주변에서 쉽게 공립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문화는 도서관으로 스며들고 도서관은 다시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문화가 풍부한 나라가 강국, 선진국이 되는 시대다.
결국 도서관은 우리의 희망이라는 말이다.
‘취업공부’의 열기로 가득한 우리나라의 도서관을 끔찍이 싫어하는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도서관이 우리나라에도 생기길 기대해 본다.

 

 

 

영국 켄싱턴 중앙도서관은 지역사회 동사무소 역할까지 하고,
런던 시내에 있는 차링크로스 도서관은 주로 이용하는 중국인들을 돕고 있었다.
중국 이주민을 위하여 중국어로 된 소설과 잡지뿐 아니라 영어 공부를 돕는 책, 상인들을 위한 자료도 아주 많았다.
프랑스의 도서관들도 이용자를 철저히 배려했다. 누가 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구비한 책이나 시설, 운영 방식이 달랐다.

어린이도서관인 ‘즐거운 시간 도서관’은 어린이가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2주에 한 번씩 많은 예술가들과 사서교사들이 힘을 합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p.20)

 

 

도서관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관심과 지원은 그대로 우리 문화를 탄탄하게 뿌리내리게 하고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여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빛나게 할 것이다. 유럽 도서관 여행은 그 길 위에 내딛은 작은 걸음에 불과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풍부한 내용으로 그 길을 함께 걷고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모두를 위한 문화와 교육을 향해서. (p.27)

 

 

도서관을 만들고 발전시킨 사람들은, 권력과 지위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꿈을 이루려면 교육이 필요하며

무료로 책을 빌려 주는 도서관이야말로 그런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도서관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적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이끌어 주는 관계임을 가르치는 교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p.41)

 

 

미래에는 국가의 부가 문화에서 창출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런 시대가 되었고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문화 강국은 순식간에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과감한 투자와

일상에서 공기처럼 스며들게 하는 치밀하고 꼼꼼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문화를 일구는 힘은 책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그래서 도서관에 대한 투자는 아무리 넘쳐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p.93)

 

 

독일의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암기시키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길러주는 데 심혈을 쏟는 것은

‘돌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임을 일찍이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그들은 그 어느 것보다 ‘도서관’과 ‘책’을 주목하여 10~15분 거리마다 도서관을 짓고 학교도서관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발견하는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리라.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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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힘 1 -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이규태 지음 / 신원문화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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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 말이 가장 어울리는 민족이 바로 ‘배달겨레’인 우리 민족이 아닐까 싶다.
2002년을 붉게 물들였던 거리응원,
손에 촛불을 들고 평범한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국민의 힘,
그리고 쇠고기 파동을 겪으며 촛불로 막아냈던 국민의 힘.
의미가 좋든 안 좋든 뭉쳐서 힘을 낸 우리 국민의 저력은 대단하다.

 

이규태의 <한국인의 힘(1,2)>는 절망에 가득한 이 시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한국인만의 저력을 말하고 있는 책으로
조선일보에 이규태 선생이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만든 책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살펴보는 것을 통해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극복의 의지가 될 수 있을 것이며
하나의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또한 한국의 문화와 사회를 통찰하는 이규태 선생의 시각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뛰어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규태 선생이 말하고자 한 한국인의 정신력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난 여기서 몇 가지 문제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로 이 책은 한국인을 한국인만의 우월주의에 쉽게 빠지도록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단일 민족이 아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인만의, 한국인만을 위한’이라는 말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근원적인 문제가 바로 다른 민족에 대해 다르다고 여기는 태도이다.
거기다 우리 민족은 ‘다른 것을 틀렸다’고 본다.

 

둘째로 한국의 집단주의는 문제가 많다.
지역과 지역간의 갈등, 정당과 정당과의 갈등, 사회 계층간의 갈등이 빚어지는 원인은
이러한 집단주의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매년 있는 현대자동차의 파업을 보자.
그들은 노사가 함께 고통분담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매년 연봉을 인상하며 파업을 요구하고 있고,
이와 함께 그들이 만드는 자동차의 가격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의 집단주의로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소비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예를 보자.
각 정당의 이익에만 급급해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오늘날의 정당이고, 국회다.
국민들을 위하는 척,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이들의 집단주의로 피해를 입는 것은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의미는 다소 다르지만 황우석 사태와 D-War논란도
한국인의 집단주의라는 맥락에서 곰곰이 따져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물론 한국인은 뭉칠 때 강해진다.

그것은 어느 민족이든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그 힘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는 없는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없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하는 것이 오늘날의 숙제가 아닐까 싶다.

또한 이규태의 <한국인의 힘>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다시 논의되고, 사회속에서 끈임없이 의미를 재생산해 나갈 때,
그것이 세계속의 한국으로 나서는 힘이 될 것이고, 세계로 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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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슬기 맑힘이다 사이의 사무침 1
구연상 지음 / 채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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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나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그래도 지구는 돈다’

내가 아는 철학의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은 철학에 무지한 사람들은
철학을 단순히 듣기 좋은 아포리즘, 좋은 글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로는 ‘뜬 구름 잡는 소리’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은 그런 범주를 넘어
우리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학문임에 틀림이 없다.
철학은 인문학, 수학, 과학, 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는 학문이다.

구연상의 <철학은 슬기 맑힘이다>는 철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를
‘철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점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철학이라는 용어가 일본어를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철학은 다소 정체를 알 수 없는 학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인 구연상은 철학을 ‘슬기 맑힘’이라는 용어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여러분 가운데는 분명 ‘철학’이라는 말 대신 ‘슬기 맑힘’이라는 새로운 번역어를 사용하는 게 좀 못마땅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는 “번역어는 무슨 번역어, 말도 안 돼!”라고 분노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분노는 사람을 죽이는 기분입니다. 적어도 우리의 창조성을 마르게 하지요. 화가 나실 때는 속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외쳐보십시오. 그러면 성 났던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끔 마음이 넓어집니다.
-28p.

이 책은 저자인 구연상이 철학 강의를 한 것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꽤 신선하다.
철학서적을 비롯한 인문 사회학 서적이 다소 어려운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 책은 구어체로 쉽게 풀어쓰고 있어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하지만 내용 중 새롭게 정의되는 용어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도표나 도식화 시켜서 간단하게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철학을 ‘슬기 맑힘’으로 정의를 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1부,
2부에서는 개인(個人)을 ‘못나누미’라는 우리 말로 풀어쓰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뭔가 뒷 내용이 더 나와야 하진 않을까하는 허전함이 남지만,
‘슬기 맑힘’을 통해 ‘못나누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덧.
최근 학계에서는 그동안 일본식으로 정의되었던 용어들을
순 우리말로 대신해 쓰는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다.
독자들로서는 다소 어색한 작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들은 꾸준히 이뤄지고 또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때문에 도서출판 채륜이 해 오고 있는 일련의 작업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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