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 이문재 산문집, 개정판
이문재 지음 / 호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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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고 있는 일들이 많이 몰려 과부하를 느낄 정도였다.
제대로 정리되는 일은 없고 내 책상 위에 하나둘씩 쌓여가는 일거리들을 보면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음 속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읽을 만한 공간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고,
전기장판 깔아놓은 따끈한 방에서 뒹굴며 밤새도록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
현실로 돌아오면 또다시 수많은 기획안과 원고와 씨름을 해야만 했다.

 

이문재의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여러 가지 화두를 던져준 책이다.

그는 책에서 바쁜 것은 오히려 게으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도 바쁘게 살아왔고, 이제는 그 자신도 ‘일중독자’에서 ‘산책자’로 망명해왔기에
당당히 바쁜 것이 오히려 게으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나는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때문에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는지
눈을 감고 가만히 내 주변을 돌아보면 욕심과 자만에 의한 것임을 쉽게 깨닫는다.
그걸 이문재의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삶의 작은 여유를 잃게 되면 게으르게 되고 바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문재 시인의 글은 많이 봐온 것 같았지만 실상 이 책은 그의 첫 산문집이다.

움베르트 에코가 자신은 대중매체에 쓰는 칼럼은 일기라고 한 말처럼

이 책 역시 이문재 시인의 일기 같은 50여 편의 칼럼을 모은 책이다.

 

책을 살펴보면 재미와 감동을 주는 내용이 많다.

자신의 딸과 함께 건강마라톤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몸으로 기억하길 바라는 내용.

선배로서의 김훈에 대한 추억, 휴대전화와 디카에 대한 이야기...산책과 슬로푸드에 대한 이야기...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선에 놓여있다.
하지만 그는 아날로그가 좋다, 디지털이 좋다 나누지는 않는다.

단지 일상에서 만나는 아날로그의 따뜻함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물론 개인의 삶은 개인의 몫이다.
바쁘게 살아가든, 느리게 살아가든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속에서도 작은 여유는 잃지말자.
걸어가다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 한 송이도 못 볼 만큼의 여유는 잃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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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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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풍자와 해학의 민족이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마당놀이나 탈춤을 통해
양반들의 허상과 허위를 실랄하게 꼬집어 왔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학’을 보면 저자 빌 브라이슨이 혹시
한국인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신의 모국 ‘미국’을 시원하게 까고 있다,

 

최근 서점에 가보면 판매대에는 여행서적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연예인 화보사진 모음도 여행서적이랍시고 판매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저마다 그 책에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곳이라며
그 여행지를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있으니,
What a wonderful world 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은 조금 다르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오래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미국을 꼽고 있다.
이런 반전에 우선 기가 막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미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럴 것이다.
아니면 아직도 허황된 ‘아메리칸 드림’에 사로잡힌 것일 수도 있다.
한 손에는 뉴욕타임즈를 들고 한 손에는 스타벅스의 커피를 든채
뉴욕의 한복판을 걷는 걸 꿈꾸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다.

 

미국이 그렇게 좋은가? 그게 그렇게 멋진 일인가?
미국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인가?
아니, 미국은 오히려 ‘불편한 진실’을 숨기고 있는 나라다.

 

빌 브라이슨은 ‘발칙한 미국학’을 통해 이러한 미국의 허점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하지만 책을 보는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게 하는 매력이 있다.
어떻게 보면 빌 브라이슨을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차있는 사람으로도 볼 수 있다.
그가 내내 쏟아 내고 있는 불평들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들에 오히려 초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그가 풀어내고 있는 유머러스한 불평들은 단지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불평이 쏟아지고 있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머릿속에는 미국사회의 단편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유머러스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사회의 모습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점은 아닐 것이다.
개발과 민영화에 따른 후폭퐁. 언젠가 우리 사회에도 닥쳐올 재앙의 모습이다.
아니, 일부는 그렇게 되고도 있다.
빌 브라이슨, 그가 먼 나라 미국에서 던져온 불평과 불만들은
오늘날 우리도 풀어나갈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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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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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기적을 꿈꾼다.


로또에 당첨되거나(물론 실현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먼 친척이 자신의 이름으로 엄청난 유산을 남기는 꿈.
또는 평소 흠모하던 그녀가 사랑을 고백해 오거나
연예인이나 엄청난 유명인사가 되는 걸 꿈꾸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기적을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 기적은 작은 만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간과하곤 한다.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은 이런 기적은 우리 인생에서 찾아오는
작지만 위대한 만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만남으로 ‘슬픈 우리의 생’이 엄청난 기쁨으로 변화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연쇄살인마에게 딸을 잃은 매킨지에게 어느 날 쪽지가 온다.

 

매킨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파파

 

주인공 매킨지는 이 작은 쪽지로 인해 자신의 삶이 기적처럼 바뀌었을 줄 알았을까?
누군가의 장난으로만 생각했던 매킨지에게
파파가 만자고 했던 오두막은 죽은 자신의 딸이 입고 있던 드레스가 발견된
트라우마의 장소였다.
하지만 매킨지는 이를 극복하고 이 오두막에서 파파(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결국 변화한 사람으로 오두막을 나서게 된다.

 

이 책에서 표현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흥미롭다.
하나님은 덩치가 큰 흑인 여성, 예수님은 아랍에서 온 노동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성령님은 아시아의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하나님과 기독교를 운운하고 있는 종교서적이 아니다.


우선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종교적인 문제를 제쳐 두자.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상처와 상실감으로 ‘오두막’을 짓고 있다.
사업실패, 실연, 실망, 낙심.
우리는 이러한 상처들과 마주치기를 꺼려한다.

딸을 잃은 장소였던 오두막 역시 매킨지에게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오두막에서 자신의 상처와 상실감을 온전히 만나는 것.
이 책에서는 이것이 종교적인 믿음으로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 말하고 있다.


오롯이 그 상처와 대면하는 것. 오두막에서 만난 그 상처들로 인해
역설적으로 우리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이 책을 읽고 조그만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당신을 향한 쪽지를 나도 보내본다.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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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침대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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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의 ‘미실’은 여러모로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소설이다.
우선 ‘과연 이런 소설도 상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충격을 전해주었다.
사실, 나에게 ‘미실’은 그리 탐탁지 않은 소설이었다.
물론 김별아 작가가 들으면 콧방귀도 뀌지 않을 그런 말이겠지만,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1억원이라는 엄청난 고료의 세계문학상이라는 존재를 알게 해 준 작품이다.

 

사회 부적응인지 이상하리만치 비비 꼬여있던 그 시절,
도대체 ‘미실’이 1억이나 받을만한 작품인지 불만이 넘쳐났다.

 

젠장. 나 같은 가난한 국문학도에게 1억중에 천만 원이라도 투자해줬더라면
간단하게 프랑스라도 다녀와서 여행기 하나 쌈빡하게 적어 줄텐데...
아니면 가까운 일본이라도...젠장.


 

그러던 중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으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떡해서든 다시 한번 '세계문학상'의 권위를 씹어보려는 목적으로

속는 셈치고 ‘아내를 결혼했다’를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이란! 그때의 어리석음이란...
 
남들이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당시 나에게는 엄청난 임펙트를 주었던 소설임에 틀림없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나-아내-그놈
축구와 연애의 오묘한 공통분모를 찾아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박현욱의 능력은 정말로 탁월했다,

때문에 박현욱의 첫 소설집인 ‘그 여자의 침대’는 박현욱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등단작인 ‘동정없는 세상’그리고 두 번째 소설인 ‘새는’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책은 영화로 만들어진 ‘아내가 결혼했다’의 여운이 가실 무렵에 나온 책이다.
책에 실려 있는 8편의 단편소설들은 개성넘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박현욱의 소설답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은 인물들 사이에서 얽히고 얽히는 관계는 정말로 흥미진진하다.
표제작인 '그 여자의 침대'는 퀸사이즈 침대와 더블 사이즈 침대를 놓고 벌이는

두 사람의 갈등이 그들의 관계와 함께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어긋나고 불안한 관계들이지만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건들이

오히려 보다 완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박현욱만의 독특한 향기를 전해준다.
최근의 소설을 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만(감각적인 이미지만 가득하지 이야기가 전혀 없는)들이

이 책을 통해 말끔히 해소되는 경험을 맛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박현욱이 낸 장편소설, ‘동정 없는 세상’, ‘새는’ ‘아내가 결혼했다’는 모두 판권이 팔려
영화로 제작했거나 제작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나는 ‘아내가 결혼했다’를 극장에서 보고 매우 만족했다.

나머지 두 작품, 그리고 그의 단편들도 언젠가는 극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만나보길 기대한다.


그 전에 기회가 돼서 책으로 만난다면 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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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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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녀석과 술을 마시다 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로 빠진다.

한때 정치 이야기로 밤을 새면서 다퉜던 적도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노무현이 잘 못했느니 이명박이 서울 시장 시절 서울을 망쳐놨다느니, 목이 쉴 정도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나와 보수적인 내 친구 K는 정치 얘기만 나오면 늘 티격태격이다.

친구는 ‘건강한 보수’를 부르짖고, 나야 뭐 ‘서민에게는 복지를 부자에게는 세금을’을 외치지만 정치 얘기가 그렇듯이 늘 결론은 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둘이 의기투합할 기회가 생겼는데, 어느날 한 후배 녀석이 우리의 술자리에 끼게 된 것이다.

그 후배가 하는 말이 자신은 뉴라이트의 교과서 수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다.

그날 내 친구 K와 나는 그 후배 녀석의 정신을 초토화 시켰다.

서라운드 입체 돌비사운드로 울려퍼지는 친구K와 나의 거센 비난에 그 후배는 울먹이면서 “선배 잘못했어요.”를 외쳤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는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를 하면서 후배를 윽박질렀던 것 같다.

 

2MB정부 들어서 부쩍 속도전이라는 말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민생안정이라는 허울아래 개발도 정책도 눈 가리고 아웅으로 통과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교과서 수정문제는 학계와 교육계의 오랜 연구와 토론 끝에 이뤄져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변신한 ‘뉴라이트 신자’들에 의해 기존의 교과서들이 난도질당하고 있다.

 

나와 친구 K도 속도전으로 후배를 눌러 윽박질렀지만 내 생각만큼은 속도전으로 찬성과 반대를 나누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지인들과의 논쟁에서 논리적으로 밀리지 않을까하는 순진한 발상에서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을 찾게 되었다.

 

‘뉴라이트 비판’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뉴라이트 단체’의 마구잡이식 교과서 수정뿐만 아니라

MB정권 전체에 대해 냉정하게 비판을 하고 있는 책이다.

이제는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된 뉴라이트 단체들에 대한 허구에 대해 논리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정치와 교과서,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져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어렵지는 않는다. 저자인 김기협이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뉴라이트란 무엇인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의 교과서 수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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