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여자의 침대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김별아의 ‘미실’은 여러모로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소설이다.
우선 ‘과연 이런 소설도 상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충격을 전해주었다.
사실, 나에게 ‘미실’은 그리 탐탁지 않은 소설이었다.
물론 김별아 작가가 들으면 콧방귀도 뀌지 않을 그런 말이겠지만,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1억원이라는 엄청난 고료의 세계문학상이라는 존재를 알게 해 준 작품이다.
사회 부적응인지 이상하리만치 비비 꼬여있던 그 시절,
도대체 ‘미실’이 1억이나 받을만한 작품인지 불만이 넘쳐났다.
젠장. 나 같은 가난한 국문학도에게 1억중에 천만 원이라도 투자해줬더라면
간단하게 프랑스라도 다녀와서 여행기 하나 쌈빡하게 적어 줄텐데...
아니면 가까운 일본이라도...젠장.
그러던 중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으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떡해서든 다시 한번 '세계문학상'의 권위를 씹어보려는 목적으로
속는 셈치고 ‘아내를 결혼했다’를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이란! 그때의 어리석음이란...
남들이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당시 나에게는 엄청난 임펙트를 주었던 소설임에 틀림없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나-아내-그놈
축구와 연애의 오묘한 공통분모를 찾아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박현욱의 능력은 정말로 탁월했다,
때문에 박현욱의 첫 소설집인 ‘그 여자의 침대’는 박현욱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등단작인 ‘동정없는 세상’그리고 두 번째 소설인 ‘새는’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책은 영화로 만들어진 ‘아내가 결혼했다’의 여운이 가실 무렵에 나온 책이다.
책에 실려 있는 8편의 단편소설들은 개성넘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박현욱의 소설답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은 인물들 사이에서 얽히고 얽히는 관계는 정말로 흥미진진하다.
표제작인 '그 여자의 침대'는 퀸사이즈 침대와 더블 사이즈 침대를 놓고 벌이는
두 사람의 갈등이 그들의 관계와 함께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어긋나고 불안한 관계들이지만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건들이
오히려 보다 완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박현욱만의 독특한 향기를 전해준다.
최근의 소설을 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만(감각적인 이미지만 가득하지 이야기가 전혀 없는)들이
이 책을 통해 말끔히 해소되는 경험을 맛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박현욱이 낸 장편소설, ‘동정 없는 세상’, ‘새는’ ‘아내가 결혼했다’는 모두 판권이 팔려
영화로 제작했거나 제작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나는 ‘아내가 결혼했다’를 극장에서 보고 매우 만족했다.
나머지 두 작품, 그리고 그의 단편들도 언젠가는 극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만나보길 기대한다.
그 전에 기회가 돼서 책으로 만난다면 더욱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