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돈
김열규.곽진석 지음 / 이숲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학창시절 서강대 김열규 명예교수의 강의를 한 학기동안 수강했던 적이 있다. 디지털 서사론이라는 강의였는데, 한참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김열규 교수는 한국학의 권위자로 문학과 미학, 신화와 역사를 두루 섭렵하신 분이다. 꼬장꼬장하시고 깐깐하신 성격은 유들유들한 나와는 맞지 않았지만, 한 학기 동안의 수업은 꽤 인상적이었다. 무엇이 불만이었는지 수업시간 내내 교수님의 의견에 반대표를 던지고, 딴죽을 걸었던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셨고, 예상 외로 꽤 좋은 성적을 주셨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항상 김 교수님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전 김열규 교수는 ‘노년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내셨다. 김 교수님은 교단에서 내려와 은퇴하신 후에 오히려 더 왕성하게 활동을 하시는 것 같다. 몇몇 언론의 인터뷰에서 보는 교수님의 모습은 강의 하실 때보다 더욱더 정정해 보이신다. 정말 그 글처럼 ‘노년의 즐거움’을 발견하신 까닭일까?

그러던 중 새로운 책이 한 권 더 나왔다고 한다. 제목은 <한국인의 돈>이다. 끊임없이 한국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셨던 김열규 교수의 화두로서는 딱 맞지 않을까? 이번 책에는 김 교수님의 제자이신 곽진석 부경대학교수도 함께 하셨다. 한국학에 정통하신 김열규 교수와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곽진석 교수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다. 책의 내용 곳곳에 숨겨져 있는 해학과 풍자는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야릇한 미소를 품게 만든다.

“짜고 맵다. 독하고도 구리다. 모질고도 얄궂다. 간사하고도 교활하다. 요상하기는 천 년 묵은 백여우고 독살스럽기는 만년 묵은 도깨비다. 사람의 마음이며 소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라면 가고, 멈추라면 내닫는 고약한 심술퉁이다.”  -본문 中-


미워하기도 그렇고, 마냥 좇아가기만 하기도 그런 돈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요즘 세상은 정말 돈에 살고 죽고, 돈에 웃고 우는 세상이다. 부익부 빈익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칙이 그대로 드러나는 세상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있어서 돈이 승자이고, 우위에 있는 존재일 것이다. 갈수록 물질 중심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세상이다. 때문에 돈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탐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돈>은 그런 의미에서 가치가 높은 책이다.

<한국인의 돈>에서는 고대의 화폐에서부터 오늘날의 화폐까지 화폐의 역사를 살펴본다. 또한 역사를 통해 돈이 우리 선조들의 삶과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또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살펴보고 있다. 그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우리의 민담과 역사적인 사실을 비롯해 동서양의 각종 민담, 심지어는 언론까지 살펴 돈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또한 기술의 사회가 가져올 위험을 경고하면서 ‘기술적 수단이 목적이 되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는 비극적인 상황을 지적한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한 저자들은 ‘돈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버는’ 오늘날의 삶에서 인간은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란 말이 있다. 더 이상 물질에 주인 자리를 내줘서는 안 될 시대가 왔다. 하지만 누구나 돈을 증오하고, 미워하면서도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모순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돈에 대한 철학을 다시 한번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돈은 결코 업신여기거나 꺼려해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돈이란 쓰는 사람에 따라 돈은 폐(幣)가 되기도 하고 폐(弊)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